[교단만필] 해를 닮은 선생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해를 닮은 선생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승인 2023-04-06 08:43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대전목동초) 윤지원
윤지원 대전목동초 교사
해와 바람이 나그네의 겉옷을 벗기기 위해 대결을 하는 이솝 우화가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불수록 나그네는 외투를 더욱 꽁꽁 움켜쥐었고 해가 따사로운 햇살을 비추었을 때 나그네는 스스로 외투를 벗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이 우화가 마음에 와닿는다. 바람 같은 엄격한 훈육만으로는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없으며 아이들 스스로 변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할 수 있는 것은 해와 같은 따뜻한 관심과 애정 어린 칭찬이라는 사실을 날이 갈수록 몸소 깨닫는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내 옆에 와서 재잘재잘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쉬는 시간에도 내 주변에 모여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모두 맞장구 쳐주고 질문을 하며 관심을 보이면 모두가 신이 나서 더 많은 이야기꽃을 피운다.

"핀이 예쁘구나. 새로 샀니?" 내가 한 마디 건네면 주말에 누구랑 함께 어디에 갔으며 무엇을 먹고 어디 어디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술술 말한다.

급식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도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너무 마른 것 아니니? 많이 먹어야겠네"라고 말하면 "운동을 열심히 해서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요. 저는 축구클럽에 들어가고 싶은데 엄마가 안 된대요" 등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아쉬운 시간이다. 이런 일상의 대화가 쌓여갈수록 한 가족 같은 우리만의 끈끈한 친밀감이 생기며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올해 우리 반에는 22명의 작고 귀여운 아홉 살 요정들이 있다. 작은 요정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기 위한 연습을 교실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즐겁게 하고 있다. 스스로 학급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즐겁게 최선을 다한다. 제일 인기가 많은 요정은 우체부 요정과 칠판 요정 그리고 지구 요정이다. 우체부 요정은 다른 반에 심부름 다녀오는 역할을 하고 칠판 요정은 칠판을 지우고 정리하며 지구 요정은 재활용 분리수거를 담당한다. 아이들은 요정 이름까지 자기들끼리 지어가며 열심이다. 할 일이 없는 날은 일이 없어서 서운하다고까지 한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22명의 요정은 칭찬을 먹고 쑥쑥 자라난다. 제 역할을 기쁘게 해 주는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 또한 잊지 않고 한다.

매주마다 작성해서 책상에 붙여 놓는 나의 주간 계획표 아래에는 항상 똑같은 문구가 입력돼 있다. '스스로 ○○하고 다 함께 ○○하는 우리 반은 선생님의 자랑이고 자부심이야. 내가 말을 안 했는데도 알아서 했네. 너무 훌륭하다. 선생님 교직 생활 중 올해가 최고의 해고 최고의 반이야!', '칭찬은 발견이다. 칭찬의 하수는 결과를 보고, 칭찬의 중수는 과정을 보며, 칭찬의 고수는 가능성을 본다'는 문구다. 항상 칭찬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써놓은 문구다. 모두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생각만 하고 말하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매일 읽게 되니 나도 모르게 칭찬하는 힘이 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2월 종업식 전에 아이들에게 '우리 선생님 사용 설명서'를 작성해 주면 다음 제자들에게 전달해 주겠다며 선생님의 좋은 점을 물었더니 '칭찬을 많이 해 주신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다. 아이들의 글을 읽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내 모습에 흐뭇해하며 내년에는 더 많이 칭찬해 줘야겠다는 다짐을 아로새겼다. 어느 따뜻한 봄날에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만나 사계절을 동고동락하고 나면 어느새 칭찬과 믿음으로 쑥쑥 자란 나의 보물 같은 아이들을 다음 학년으로 올려보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애들아, 아까워서 너희들을 어떻게 다음 학년으로 올려보내지?"라고 말하면, 요 예쁜이들은 "내년에도 이렇게 모두 다 함께 올라가면 안 돼요", "내년에도 우리들의 담임 선생님이 돼 주세요"라는 말로 나에게 크나큰 선물을 준다.

이 세상을 소풍 나왔다고 표현한 천상병 시인처럼 오늘 하루도 아이들과 함께 소풍 나온 마냥 신나게 놀며 공부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꽃을 피울 생각으로 행복하게 학교에 간다.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더 많이 칭찬하고 더 많이 믿고 더 많이 기다려줄 수 있는 따뜻한 해를 닮은 선생님이 되길 소망한다. /윤지원 대전목동초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대전 서부경찰서 멈춤봉투 눈길
  2.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3. 대전·충북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총량 축소? 환자들 어디로
  4. 충남도, 국비 12조 확보 위해 지역 국회의원과 힘 모은다
  5. 경영책임자 실형 선고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상소…"형식적 위험요인 평가 등 주의해야"
  1. 충남도의회, 학교 체육시설 개방 기반 마련… 활성화 '청신호'
  2.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3. 대전동부교육지원청, 학교생활기록부 업무 담당자 연수
  4.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5. 충남권 역대급 더운 여름…대전·서산 가장 이른 열대야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전국 4년제 대학 중도탈락자 수가 역대 최대인 10만 명에 달했던 지난해 수도권을 제외하고 충청권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학교를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권에선 목원대와 배재대, 대전대 등 4년제 사립대학생 이탈률이 가장 높아 지역 대학 경쟁력에서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종로학원이 발표한 교육부 '대학알리미'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전국 4년제 대학 223곳(일반대, 교대, 산업대 기준, 폐교는 제외)의 중도탈락자 수는 10만 817명이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인데, 전년인 2023년(10..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출시 3개월여 만에 80만 개가 팔린 꿈돌이 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꿈돌이 컵라면'이 5일 출시된다. 4일 대전시에 따르면 '꿈돌이 컵라면'은 매콤한 스프로 반응이 좋았던 쇠고기맛으로 우선 출시되며 가격은 개당 1900원이다. 제품은 대전역 3층 '꿈돌이와 대전여행', 꿈돌이하우스, 트래블라운지, 신세계백화점 대전홍보관, GS25 등 주요 판매처에서 구매할 수 있다. 출시 기념 이벤트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과학공원 내 꿈돌이하우스 2호점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신제품 시식 ▲꿈돌이 포토존 ▲이벤트 참여..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충남 서산의 한 중학교에서 남성 교사 A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개월간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일부 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올해 학기 초부터 해당 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복된 부적절한 언행과 과도한 신체접촉을 주장하며, 학교에 즉각적인 교사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학교 측은 사건이 접수 된 후, A씨를 학생들과 분리 조치하고, 자체 조사 및 3일 이사회를 개최해 직위해제하고 학생들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으며, 이어 학교장 명의의 사과문을 누리집에 게시했다. 학교 측은 "서산교육지원청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