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긴 호흡으로 즐거운 학교 만들기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긴 호흡으로 즐거운 학교 만들기

민혜정 대전자양초 교사

  • 승인 2023-04-27 12:17
  • 신문게재 2023-04-25 18면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사진(대전자양초 교사 민혜정)
민혜정 대전자양초 교사
"아, 학교 가기 싫다."

"가야지, 네가 선생님인데?"

반전의 유머로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기획이겠지만, 어느 제약회사의 광고 문구는 꽤 오랫동안 내 뇌리에 남았다. 아마도 학기 초 담임으로서 고된 학교생활의 속내를 들켜서가 아닐까? 학급 아이들과 처음 마주하는 긴장과 설렘의 시기가 지나고 어느덧 훈풍이 느껴지는 5월이 다가온다. 각종 행사는 물론이고 "띵동띵동" 메신저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학교 업무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었던 3월은 부지불식간에 사라졌다. 예쁜 봄꽃을 만끽하지 못하고 열심히 달린 시간이 왠지 억울해서 자체 보상이라도 하듯 충동적으로 야외 페스티벌 티켓팅을 해버렸다.

그렇게 주말을 틈타 일탈을 꿈꾸며 찾아간 야외 페스티벌. 그런데 주제가 하필 '학교'가 아닌가! 학교를 탈출해 찾아간 곳이 다시 학교라니….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말이 묘하게 어울려 실소가 나왔다. 커다란 교문 안쪽으로 불량식품 부스와 추억의 오락실, 그리고 포토존으로 마련해 놓은 비현실적 분홍색 교실이 보인다. 드레스 코드인 교복과 체육복을 입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저들 중 누군가는 학창 시절에 수업을 따라가기 버거웠거나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사람도 있었을 텐데 여기서는 어째 모두가 즐거워 보이네?' 하는 엉뚱한 호기심이 들었다. 자문자답하자면, 아마도 이제는 학생이 아니라 학교에서 한걸음 떨어져 있기에 추억이 깃든 학교의 모습만 기억하는 게 아닐까?

"선생님, 잘 지내고 계시죠?"

"4학년 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했어요."

2003년 가르쳤던 제자는 어느덧 20대 청년이 되어 같은 학교의 교직원으로 왔었다. 4학년이지만 학급 문집에 한 줄 소감 쓰기를 할 수 없어서 한글을 다시 찬찬히 깨우쳐야 했던 그는 소위 느린 학습자였다. 친구들이 가버린 교실에 남아 보충학습을 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무척이나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느린 학습자들은 담임들의 아픈 손가락이기에, 지금도 방과 후 공부를 할 때 너무나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면 교사로서 자괴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학교를 싫어할까 봐 노파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즐겁고 행복했다는 보충학습 경력직(?) 제자의 문자 한 줄은 신기하게도 큰 위로와 희망이 된다.

우리 학교는 기초학력 선도학교이자 연구학교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학습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교육 회복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급증하면서 학교 현장에도 기초학력 정책을 반영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우리 학교가 있다. 학교 밖에서 보면 별 변화 없이 무료한 곳이 학교지만 사실 학교는 현실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장 변화무쌍한 곳이다. 소규모 학교 특성상 개인의 업무량으로 쉴 틈이 없는데도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기초학력 사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저마다 배움의 속도는 다르지만, 우리 학교의 느린 학습자들은 교사의 관심과 손길을 든든한 디딤돌 삼아 오늘도 조금씩 성장하는 중이다.

오늘도 방과 후에 두 명이 남았다. 책상을 붙여 놓고 옹기종기 앉아서 공부를 시작한다.

"쌤, 사실 축구 하러 못 가서 짜증 났는데요. 이렇게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좋아요"도 아니고 "나쁘지 않아요"인데 물색없이 웃음이 나온다. 일주일에 두 번, 이 짧은 만남으로 기적처럼 교육 격차가 회복될 거라 여기진 않는다. 그러나 배움이 느린 학생들과 긴 호흡을 함께 하는 인고의 시간, 이것이 조금씩 쌓여 훗날 그들이 학교는 즐거운 곳이었다고 믿게 만드는 마법이 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도 우리 학교를 비롯하여 곳곳에서 교육 회복에 애쓰며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고 계실 모든 선생님께 진심으로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국립한밭대 연구자 11명, 세계 상위 2% 과학자 선정
  2. 대전 배추값은 낮아졌지만 속재료는 인상... 김장철 앞 부담 늘어날까
  3. 천안지역 택시 운수종사자 조합, 택시통합·행복콜 폐지 성토...'사회적 합의 우선'
  4. 서산 석림동 아파트 화재로 주민 70여 명 대피, 재산피해 2,449만 원
  5. 청주 원도심 다시 잇는다… 공간·상권·생활에 새 활력 대혁신
  1. "부지 매입비 아끼고 주차난 푼다"…인천시, 공원 지하에 주차장 800면 조성
  2. 대전 태평동5구역 재건축 사업 난항… 시공사 선정 문제에 조합 내부 갈등까지
  3. 허태정號 기조실장 '믿을 맨' 오나 친정체제 강화
  4. 멈춰 선 충남교육공무직 순환전보… 법적 판단이 분수령
  5. 단양온달문화축제, 사라져가는 전통문화 되살렸다…'상여·회다지놀이' 눈길

헤드라인 뉴스


`국가기관 집중` 세종, 2차 공공기관 이전도 촉각

'국가기관 집중' 세종, 2차 공공기관 이전도 촉각

44개 중앙행정기관의 세종 이전이 공식화된 가운데, 4분기 중 발표를 앞둔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가능성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세종시는 수도권 40개 공공기관을 중점적으로 유치 활동을 벌여왔는데, 기존 혁신도시 중심의 이전 검토에서 세종에 대한 안배를 어느 정도 고려할지 여부가 관건으로 꼽힌다. 14일 국무조정실 등에 따르면 정부는 수도권 공공기관 중 지방 이전 대상을 검토 중이며 올 4분기 발표할 계획이다. 앞서 2003년 첫 공공기관 이전에 물꼬를 튼 데 이어 두 번째 이전 계획이다. 1차 기관 이전에선 총 112개 기..

대전산단 등 3곳에 734억 기업투자… 제조·연구시설 확충 추진
대전산단 등 3곳에 734억 기업투자… 제조·연구시설 확충 추진

대전의 산업단지 3곳에 734억 원 규모의 기업 투자가 추진된다. 기존 산업단지 내 생산시설을 증설하거나 신규 산업용지에 제조·연구시설을 구축하는 것으로, 100명 이상의 신규 고용도 이뤄질 전망이다. 대전시는 14일 시청 중회의실에서 ㈜액스비스, ㈜파미, 한솔제지㈜ 등 3개 기업과 총 734억 5000만 원 규모의 투자 및 신규 고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기업별 투자 규모는 액스비스 200억 원, 파미 295억 원, 한솔제지 239억 5000만 원이다. 신규 고용계획은 각각 45명, 39명, 20명으로 모두 104명이다...

이재명 대통령 두 번째 비서실장에 홍성 출신 임광현 국세청장
이재명 대통령 두 번째 비서실장에 홍성 출신 임광현 국세청장

충남 홍성 출신인 임광현(57) 국세청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두 번째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1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풍부한 행정 경험과 정무 감각을 겸비한 경제관료 출신 정치인"이라며 "국회와 정부를 두루 경험한 만큼 국민 목소리를 국정에 더 크게 반영하고 당정청 협력으로 국정 성과에 속도를 낼 적임자"라고 밝혔다. 이어 "민생 회복과 사회 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주문을 실천하며 국민이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을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브리핑에 동석한 임광현 신임 비서실장은 "1995년 공..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유성국화축제 ‘준비 착착’ 유성국화축제 ‘준비 착착’

  • 어르신들의 신중한 한수 어르신들의 신중한 한수

  • 기온 뚝…‘겉옷 챙기세요’ 기온 뚝…‘겉옷 챙기세요’

  • 구직자들로 북적이는 대전 일자리박람회 구직자들로 북적이는 대전 일자리박람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