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칼럼] 26. 사흘만 볼 수 있다면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염홍철 칼럼] 26.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 승인 2023-07-06 12:00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염홍철칼럼
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지난주에는 지인들과 가벼운 산행을 했는데 어느 분이 "허리 아픈 것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라고 얘기를 하기에 저는 '손가락 하나를 다쳐봐요? 얼마나 불편한데요'라고 했습니다. 모두들 인체의 기능 중 작은 부분 하나라도 '병'에 걸리면 고통스럽다는데 공감을 했지요.

그런데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3중의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가 바로 헬렌 켈러입니다. 19개월 만에 열병을 앓고 난 후 시력과 청력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3중의 장애를 갖게 된 것이지요. 그런 그녀가 하버드 부속 레드클리프 대학을 졸업하고 전 세계 장애인들을 위한 사업에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헬렌 켈러의 인간 스토리는 세상에 많이 알려졌지요.

헬렌 켈러가 쓴 23장으로 된 자서전은 그녀가 대학 3학년 때 완성되어 단행본으로 출판한 바 있습니다. 그녀는 자서전을 쓰면서 "그저 어두운 감옥, 그 그늘 아래 있는 것만 같을 뿐이다. 그러므로 살아온 이야기를 늘어놓아 자칫 독자를 지루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 여기서는 에피소드만을 소개할 생각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자서전보다도 헬렌 켈러가 53세에 쓴 수필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이 수필은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인데 시력과 청력을 잃고 살아온 긴 세월 동안 그녀가 간절히 보고 싶고 하고 싶어 했던 일을 상상하며 기쁨에 들떠, 생각들을 조목조목 묘사한 글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이 에세이를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한 바 있습니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에는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겠다고 했습니다. 다정함과 친절함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준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당연히 앤 설리번이 포함되어 있으나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오직 손끝으로 얼굴의 윤곽을 더듬어 가며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친구들의 눈빛이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표정의 미묘한 변화, 근육의 떨림, 손의 흔들림 등을 관찰하여 사람의 본성을 파악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쓰고 있습니다.

둘째 날은 여명과 함께 일어나 밤이 낮으로 변하는 황홀한 기적을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낮에는 박물관도 가고 미술관도 갈 것입니다. 예술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탐구하면서, 멀쩡한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일갈했지요.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예술 세계는 어두운 밤과 같다고 말하더군요. "아름다움의 가치는 경시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셋째 날에는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거리를 보겠다고 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살펴보고 싶은 것이지요. 뉴욕의 환상적인 고층 건물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광경인가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로 서둘러 올라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도시의 사람들을 직접 보기 위해 먼저 분주한 교차로에 서서 그 사람들을 쳐다보며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습니다. 내 눈은 사소한 것 하나도 가벼이 지나치지 않고 눈에 들어온 것 하나하나를 어루만지고 끌어안고자 애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에게 허락된 사흘은 지나갔습니다.

헬렌 켈러로부터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은 한둘이 아니나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라는 그녀의 말을 되뇌며 부끄러운 생각이 드네요.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영화·드라마' 촬영 명소로 간다
  2. 아산시 어의정로 교차점 광장 준공
  3. 교육행정 몰리고 시설직은 주춤…교육청 공채 경쟁률 '온도차'
  4. [대전 전통산업 특화거리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①대전 전통산업과 특화거리의 탄생과 번영…그리고 존폐의 기로
  5. 창업기업 74곳에 최대 4억원 '대전 창업기업 들썩'
  1. K리그 휴식기, 대전 서포터즈는 '청소' 중?… "승리의 기운을 줍습니다"
  2. 폐현수막의 변신은 ‘무죄’
  3. 두 자녀 태우고 만취운전 30대 사고까지…여름철 엄격 단속 필요
  4. 우송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 ‘실무능력 UP’
  5. 천문연구원, 희귀 왜소신성 발견…공전주기 짧아 중요 연구대상

헤드라인 뉴스


대전 보건소 인력부족에 `허덕`…전국 광역시 중 가장 적어

대전 보건소 인력부족에 '허덕'…전국 광역시 중 가장 적어

대전시민의 당뇨와 비만의 만성질환 관리부터 감염병 예방과 임산부·아동 건강을 살피는 보건소가 인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인구 1만 명당 보건소에 근무하는 인력을 비교한 결과 대전은 부산의 절반 수준이고, 대구와 광주, 울산, 인천보다 적어 시민 건강을 담당하는 보건소 인력 배치가 가장 적은 광역시로 파악됐다. 22일 지역 의료계에 따르면 대전의 5개 보건소에 근무하며 시민의 공공보건 의료를 뒷받침하는 인력이 광역시 중에서 가장 적은 상황이다. 2024년 말 지역보건의료기관총람 기준으로 대전 5개 보건소 근무 인원은 총 540명으로..

두 자녀 태우고 만취운전 30대 사고까지…여름철 엄격 단속 필요
두 자녀 태우고 만취운전 30대 사고까지…여름철 엄격 단속 필요

대전에서 어린 자녀 2명을 태우고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낸 3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음주운전 사고 증가가 우려되면서 단속 강화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22일 대전서부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과 음주운전 혐의로 30대 여성 A 씨를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A 씨는 21일 오후 8시 40분께 대전 서구 변동의 한 오거리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하다 사고를 낸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는 신호를 위반해 좌회전하던 중 맞은편 도로에서 우회전하던 승용차와 택시를 잇따라 들이받은..

[기획시리즈] ①대전 전통산업과 특화거리의 탄생과 번영…그리고 존폐의 기로
[기획시리즈] ①대전 전통산업과 특화거리의 탄생과 번영…그리고 존폐의 기로

대전 중구 중촌동 맞춤패션거리와 정동 인쇄거리, 원동 한복거리 등 과거 대전을 상징하던 유서 깊은 산업 자산들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자구책 마련을 위해 붙여진 특화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급격한 산업 구조 변화와 유통 시스템 현대화 속에서 경쟁력을 잃어간 채 존폐의 기로에 서면서다. '생산의 효율화'란 거대한 산업 발전 흐름이 오늘날 현대 사회의 모든 가치를 장악하고 있지만, 지역의 고유한 숨결과 정체성이 담긴 전통산업의 흔적이 미래세대에 적절히 계승돼야 마땅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낡은 산업의 미래를 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폐현수막의 변신은 ‘무죄’ 폐현수막의 변신은 ‘무죄’

  • 우송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 ‘실무능력 UP’ 우송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 ‘실무능력 UP’

  • 민선 9기 대전시장직 인수위 기자회견 민선 9기 대전시장직 인수위 기자회견

  • 하지(夏至)맞은 주말농장 ‘구슬땀’ 하지(夏至)맞은 주말농장 ‘구슬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