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정직한 언론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정직한 언론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24-02-19 16:01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이승선 교수
이승선 교수
스무해 전. 한 언론은 폭설피해 현장을 방문한 국무총리가 '양주파티'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총리실의 항의를 받은 언론은 세시간 만에 기사를 삭제했다. 정정보도도 했다. 식탁에 올랐던 것은 양주가 아니라 지역특산주인 복분자였다. 현장에 가지 않았던 기자가, 일주일 뒤에 누군가로부터 제보받은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보도한 결과였다. 당시 총리는 1억원의 명예훼손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1천만원의 손해배상을 판결한 원심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원심과 대법원은 해당 보도가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 현저히 상당성을 잃었다고 판단했다. 단순히 제보자의 말만 믿을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며칠 전 두 언론이 이른바 '○○노조 술판' 기사에 대해 정정보도했다. 지난 달 말 서울중앙지법이 두 언론의 정정보도와 위자료 지급을 판결했다. 2022년 6월 여러 언론이 "○○ 노조가 본사를 점거하고 대낮부터 술판을 벌였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흐릿하게 찍힌 농성장 사진도 게재되었다. 노조가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 조정 등을 신청했다. 여러 언론이 기사를 정정했다. 이번에 정정보도 판결을 선고받은 언론은 언중위의 정정보도 조정을 거부해 재판으로 이어졌었다. 독자가 제공했다는 애초 기사 사진에도 커피 캔이나 음료병, 종이컵, 과자 등이 있었을 뿐, 술을 마시고 있다는 흔적은 뚜렷하지 않았다.

'노조 술판' 보도를 둘러싼 언중위 조정과정에서 일부 언론은 "기사를 삭제할 수는 있어도 정정보도를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언론분쟁 조정과정에서 왕왕 나타나는 현상이다. 명백하게 잘못된 보도의 피해자가 정정보도, 손해배상 청구를 할 경우 언론은 정정보도나 손해배상을 하는 대신 아예 '기사 삭제' 방안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기사의 흔적을 없애버릴지언정, 독자들에게 정직하고 정확하게 정정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언론이 제공한 허위 뉴스 정보를 섭취한 독자는 정정한 보도로 치유되지 않고 버려져도 그만인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3년에 실시한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전년에 비해 종이신문과 잡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매체에서 뉴스 이용률이 하락했다. TV뉴스와 포털 뉴스 이용률이 크게 하락했는데, 특히 20대와 30대의 이용률 하락이 심했다. 언론과 언론인의 영향력이 낮아지고, 뉴스에 대한 신뢰도 하락 역시 모든 연령대에서 고르게 나타났다. 하나 눈여겨 볼 지점이 있다. 모든 언론의 신뢰도가 하락한 것은 아니다. 한국 언론의 역할 수행 중, 가장 부정적 평가가 높았던 것은 언론이 '사회적 약자 대변'이나 '정부, 공인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MBC에 대한 평가가 이전과 달라진 점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MBC가 이른바 '바리든-날리면' 보도 후 대통령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갖가지 심의제재를 받고 있으며, 정치권력자나 권력 주위를 배회하는 사람들에 의해 명예훼손죄로 고소·고발당해 왔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지역MBC도 취재보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원은 대구시가 수개월 이어져 온 대구MBC의 취재보도를 거부하고 방해하면 안 된다고 결정했다. 최근 원주시는 시장의 인사정책을 비판한 원주MBC에 대해 1억원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경과는 더 지켜볼 일이지만, 다수의 일반 국민도 이러한 내용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2023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수용자 조사에서 MBC의 신뢰도와 영향력은 예년 조사에 비해 거의 갑절이나 커졌다.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 부문 22.0%,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 21.4%였다. 2021년 조사에서 MBC는 이 부문 각각 12.4%, 11.5%를 얻었었다. 언론수용자 조사의 경우 조사대상자가 매번 5000여 명에 이르므로, MBC에 대한 조사결과를 혹여라도 시민들의 이념적 편향의 문제로 폄하하거나 공격할 사안은 아니다. 2023년에 실시된 디지털 뉴스 리포트, 시사IN, 시사저널 일반인과 전문가 조사에서도 MBC는 언론 매체 중 가장 높은 신뢰를 얻었다. 이전과 달라진 시민,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MBC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이유는 여럿이겠지만, 시민들은 무엇보다 MBC가 정치권력과 정치인, 공인, 공적사안에 대한 감시와 비판 등 언론본연의 책무를 이행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의 뉴스 이용률이 하락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한편으로 시민들은 언론이 정치권력과 공적인물, 기업을 감시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야 한다는 언론관을 내심 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제아무리 디지털, AI 환경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진실을 보도하는 정직한 언론, 정확한 언론, 용기 있는 언론이 살아 남는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15장-별봉, 세상의 중심을 꿈꾸다
  2. 통합 앞둔 충남대 중복학과 이견, 교수회 "약속 파기" vs 본부 "학과 자율 특성화"
  3. 안전공업 참사 73일 만에 또… 충청권 산업현장 안전 경고음
  4. 또 한화에어로 대전사업장 사망사고… 2018·2019년에도 8명 숨졌다
  5. [기고] 법화경 리더십과 한국 핵무장의 시대정신
  1. 김기웅 서천군수 후보 배우자, 검찰 고발
  2. 초록우산 대전세종지역본부, 이수진요가로부터 후원금 전달 받아
  3. 박수현 "집권여당 핫라인 통해 현안 해결" vs 김태흠 "도민, 민주당 독주 허락하지 않을 것"
  4. 중국대학생 대상 한국어말하기대회 성황리에 개최
  5. 대전YWCA, 여성친화도시 조성 위한 시민참여단 2차 역량강화교육

헤드라인 뉴스


6·3지선에 달린 충청 백년대계, 560만 충청인의 손으로 정한다

6·3지선에 달린 충청 백년대계, 560만 충청인의 손으로 정한다

'552명.' 6월 3일 치러지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선출하는 충청의 지역 일꾼 숫자다. 지방행정 전반을 책임지는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이를 견제·감시하는 광역·기초의원, 교육행정을 총괄하는 교육감까지, 새로운 '충청시대'를 열어갈 우리 동네의 참된 일꾼을 560만 충청인의 손으로 뽑는다. 그동안 지방자치는 발전해 왔지만, 이론과 현실의 괴리는 컸다. 거대한 중앙 정부의 틀 속에서 충청권 4개 시·도 광역정부와 지역별 기초지자체의 자율성과 권한은 제자리에 머물렀고, 지역민들의 실질적인 참여 또한 제한적이었다. 지방자치 산실..

통합 앞둔 충남대 중복학과 이견, 교수회 "약속 파기" vs 본부 "학과 자율 특성화"
통합 앞둔 충남대 중복학과 이견, 교수회 "약속 파기" vs 본부 "학과 자율 특성화"

충남대와 공주대의 통합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충남대 내부에서 중복학과 유지 여부를 두고 이견이 나오고 있다. 교수회는 통합 논의 과정에서 제시됐던 '중복학과 현행 유지' 약속 이행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대학본부는 학과 자율에 따라 통합 또는 특성화를 선택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충남대 교수회는 1일 입장문을 내고 "대학 발전을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대학 통합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며 "통합 추진 과정에서 구성원들에게 설명한 내용을 대학본부가 책임 있게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수회는 충남대와 공주대가..

또 한화에어로 대전사업장 사망사고… 2018·2019년에도 8명 숨졌다
또 한화에어로 대전사업장 사망사고… 2018·2019년에도 8명 숨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 폭발과 화재로 인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과거 반복됐던 한화 방산사업장 폭발 사고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1일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대전 유성구 외삼동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5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지만, 해당 사업장은 과거에도 로켓 추진체 관련 공정에서 대형 인명피해가 난 곳이다. 한화 대전사업장에서는 2018년 5월에도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51동 충전공실에서 로켓 추진 용기에 고체연료를 충전하던 중..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꼭 투표하세요’ ‘꼭 투표하세요’

  • 대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장 폭발사고…5명 사망·2명 부상 대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장 폭발사고…5명 사망·2명 부상

  • 지방선거 전 마지막 주말…대전시장 후보들 ‘뜨거운 호소’ 지방선거 전 마지막 주말…대전시장 후보들 ‘뜨거운 호소’

  • 사전투표함 보관장소 ‘이상무’ 사전투표함 보관장소 ‘이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