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여행] 45-증평 교동식당 보리밥 별미 중에 별미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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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여행] 45-증평 교동식당 보리밥 별미 중에 별미일세!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 승인 2024-08-26 17:25
  • 신문게재 2024-08-27 10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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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좌구산 출렁다리. (사진= 김영복 연구가)
이번 맛있는 여행은 충청북도의 한가운데에 있는 증평군(曾坪郡)으로 향했다.

증평은 서울에서 자가용으로 여유롭게 2시간 정도 달리면 닿는, 수도권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자가용 외에도 열차로는 2시간 13분,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경유철도는 2시간 19분, 버스로는 2시간 45분 정도 걸린다.

증평군은 북쪽에 해발고도 598m의 두타산(頭陀山)이 동서로 길게 솟아 있으며, 보강천의 지류인 삼기천, 청안천이 발원하는 좌구산(座龜山)을 위시하여 사방에 해발고도 300m 이내의 산이 여럿 있고, 물 맑은 보강천이 북서부를 가로지르며, 그 연안에는 소규모의 평야가 분포하는 곳이다.



좌구산(座龜山 해발657m)이란 이름은 산의 모양이 거북이가 앉아 남쪽을 바라보는 형상이라고 하여 붙여졌다고 하는데, '좌귀산(坐龜山)'이라고도 읽는다. 또한, 한자 표기를 달리해 '좌구산(坐狗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조선 광해군 때 이곳에 은거해 인조반정을 모의하던 김치(金緻1577~1625)가 좌구산에서 개가 세 번 크게 짖어대는 소리에 깨어 몸을 피함으로써 훗날 인조반정을 성공시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증평은 이 좌구산(座龜山)을 중심으로 볼거리가 많다.

한옥휴양관 등을 갖춘 율리휴양촌과 태양의 흑점 등을 관찰할 수 있는 좌구산천문대가 정상에 있고, 명상구름다리와 줄타기·썰매장·숲속모험시설 등의 레포츠 시설을 갖춘 좌구산휴양림, 산허리에 산악자전거용 도로로 조성한 좌구산 MTB 코스 등이 있다. 이밖에 증평장뜰시장에 있는 증평대장간은 화덕에 불을 피워 쇠를 달구고 담금질하는 전통 방식으로 제작하는 곳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그러나 아무리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다 해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맛있는 음식이 없으면 그 지역에 대한 이미지는 좋게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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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 교동 식당. (사진= 김영복 연구가)
증평의 맛 집하면 뭐니 뭐니 해도 충북 증평군 증평읍에 위치한 보리밥으로 유명한 '교동식당'이다.

테이블 8개 정도의 작은 식당이지만 증평에서는 으뜸 맛집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집이다.

된장찌개와 청국장 중 선택이 가능한 보리밥의 반찬은 7가지로 채반에 고등어구이와 함께 나온다.

인삼의 고장답게 보리밥 위에 올려 진 인삼 한 뿌리는 인삼 특유의 향과 함께 약간 쌉쌀한 맛이 보리밥의 식욕을 더욱 돋게 하는 것 같다.

보리밥은 쌀이 약간 섞였다고 하지만 꽁보리밥에 가깝다. 50년~60년대를 산 꽁보리밥은 여든을 앞둔 필자로서는 지난날의 추억이 파노라마(panorama)처럼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일제36년의 수탈의 역사를 지나 해방된 지 불과 5년 후 일어 난 한국전쟁으로 강토는 피폐해져 보릿고개라는 춘궁기(春窮期)를 겪어야 했다.

지난해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음력 4~5월), 농가생활에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운 이 시기를 우리는 보릿고개라 불렀다.

오죽하면 "사월 없는 곳에 가서 살면 배는 안 곯는다."는 속담이 생길 정도 였다.

우리 세대가 살던 60~70년대의 가난보다 돈이 넘쳐나는 지금의 가난은 더 비참하다.

지금은 보릿고개와 같은 배고픔의 가난이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가난이 사람을 더욱 초라하게 한다.

어쨌든 보릿고개는 일제강점기에서는 두말할 나위 없고 8 ·15광복 후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연례행사처럼 찾아들던 농촌의 빈곤상(貧困相)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당시에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 "보릿고개에 죽는다."는 속담이 유행처럼 번질 정도였다.

이 시기를 춘궁기(春窮期), 또는 맥령기(麥嶺期)라고도 했다.

이 시기 시대상을 잘 나타내는 구전민요가 있는데, 예천(醴泉) 지방에서 채집된 노래를 보면 "엄마 엄마 날 길러서/촌시집 주지 마소/꽁보리밥 된장찌개/먹기 싫어 내 못살겠네/시아버지 맨든 물레/직곡 직곡 소래나고/꽃치 마라 손에 쥐고/물레틀을 비고 자네/ ···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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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 교동식당 보리밥. (사진= 김영복 연구가)
꽁보리밥 삶은 보리에 물을 부어 끓이다가 거품이 오르면 불을 줄여 뜸을 들이는 과정을 두 번 반복하여 익힌 밥이다.

이를 곱삶이라고도 하는데, 보리쌀로만 밥을 지을 때는 잘 안 되어 두 번 삶기 때문에 꽁보리밥을 곱삶이라고 한다.

필자의 집은 아버지가 벼농사를 짓고 어머니가 하숙집을 하셨기 때문에 꽁보리밥 보다. 주로 보리와 쌀을 섞어 밥을 지었다.

보리밥을 먼저 담고 그 위에 쌀밥을 담거나 아예 밑에 접시 따위를 깔고 그 위에 밥을 담아서 겉으로만 많아 보이게 하는 밥을 뚜껑밥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 집은 보리밥과 쌀밥을 아예 섞어 밥을 푸셨다.

당시 보리밥 짓는 과정을 보면 보리를 솥에 넣고 삶았다고 해서 밥 짓는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삶은 보리는 소쿠리에 담아서 부엌 천장에 걸어두고, 거기서 밥 지을 양만큼만 퍼서 솥에 넣고는 다시 물을 붓고 안친다. 이때 쌀을 넣고 밥을 짓는데, 뜸이 들 때 어머니는 애호박이나 고구마, 감자 등을 넣고 밥을 해 밥을 푸기 전에 애호박, 감자 등으로 다시 양념을 해 반찬을 만드신다.

어릴 적 짓궂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밉상스럽다고 해야 하나 어머니가 보리밥 삶은 소쿠리를 부엌에 매달아 놓으면 학교에 갔다 와 심심풀이 삼아 부엌을 들랑거리며 삶은 보리밥을 한오큼 씩 입에 넣다가 어머니에게 혼이 난 적이 가끔 있다.

그 이 후 어머니는 학교 갔다 오면 먹으라고 항상 고구마를 삶아 놓으신다.

특히 60~70년대 우리 집은 우리 6남매와 하숙생6~7명으로 밥 때가 되면 잔치 집 같은 분위기였다.

특히 보리밥에 물을 말아 열무김치와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여름 별식은 어린 학생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보리밥은 가난의 상징이다. 세종(世宗) 때 우승경(禹承慶)의 아내 원(袁)씨는 가난으로 끼니를 이어가기 어려워 비록 풋나물과 보리밥으로 아침저녁으로 상식(上食)을 폐하지 아니하니, 쌀 10석을 주었다고 나온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조선의 정치가이자,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의 시조시인으로 유명한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는 말년에 해남에 낙향하여 주로 보리밥으로 연명한 것 같다.

효종(孝宗) 즉위년(1649) 9월, 해남(海南)에 있을 때 지은 소(疏)에 의하면 '하루에 먹는 것이 쪄서 익힌 보리밥 몇 홉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비록 샘물에 보리밥을 말아 먹어도 선비의 살림살이도 가난하지 않다는 선비의 청렴한 기개가 엿 보이는 시라 할 것이다.

조선후기 주기론을 펼친 성리학의 6대가의 한 사람인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 1711~1788)는 "보리 양식으로 근근이 지내다가 6월 이후로는 환맥(還麥 환곡(還穀)의 삼남 )으로 견디고 있다. 그런데 대미(大米탈곡(脫穀)한 점)는 귀하기가 금(金)과 같아서 노인 내외에게 올리는 것도 계속 이을 가망이 없다. 나도 한두 번 순맥반(純麥飯 꽁보리밥)을 먹어 보니 잘 먹을 수 있겠기에 보리를 섞어서 올리게 하였는데, 내간(內間)이 끝내 어렵게 여기고는 말을 듣지 않는다. 하지만 먹을 것이 없어지면 또 어떻게 하겠느냐. 조도(早稻 올벼)는 아직 익지 않았지만, 20일 뒤에는 베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먹을 수 없는 사정은 보리보다도 더한데, 결국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녹문집(鹿門集)』라고 당시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기록한 것이다.순조(純祖) 때 충청도 천안군(天安郡)에 여역(疫 장티푸스)이 치성하여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이 전염병이 퍼져 서울의 여항에도 점점 앓아 누운 사람이 생겼다. 이날, 와언(訛言)이 마구 퍼져서 '반드시 오늘 보리밥을 먹어야 병을 면할 수 있다.' 하였는데, 온 도성이 소란스럽게 보리쌀을 구입하였으므로 보리쌀 값이 뛰어올라 겉보리 값이 백미(白米 쌀) 값과 같았다. 혹 구입하지 못한 사람은 또 대부분 백토(白土)로 문밖과 벽위에 손바닥을 그렸다."라고 나온다.『순조실록(純祖實錄)』1577년 1월 29일

조선후기 문신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毋曰麥硬(모왈맥경)보리밥을 단단하여 맛없다 마라

前村未炊(전촌미취) 앞마을에는 밥을 짓지 못하는 집도 있다."라면서

"自今麥飯喫三時(자금맥반끽삼시)이제부터 보리밥을 세 때 총총 먹겠네"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葉團包麥飯呑(와엽단퍼맥반탄)상추쌈에 보리밥을 둘둘 싸서 삼키고, 合同椒醬與根(합동초장여총근)고추장에 파뿌리를 곁들여서 먹는다."며 '보리밥상추쌈'을 시(詩)로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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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 교동식당 청국장. (사진= 김영복 연구가)
일본어로는 보리를 '무기메시'라 부른다. 일본에서도 1960년대까지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밥이란 인식이 있었다.

과거 일본에서는 묵은 보리로 만든 밥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쿠사이메시'(臭い飯, 냄새나는 밥)란 별칭을 붙이기도 했고, 일본의 교도소에서 자주 '쿠사이메시'를 제공하였기 때문에 교도소의 밥을 한국의 콩밥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보리는 쌀, 밀, 콩, 옥수수와 함께 세계 5대 식량 작물에 속하며, 오랫동안 주식으로 이용되어왔다. 보리에는 겉보리[皮麥]와 쌀보리[裸麥], 늘보리, 찰보리 등이 있으며, 이삭에 달린 씨알의 줄 수에 따라서, 여섯 줄 보리와 두줄보리로 나누어진다. 성숙한 뒤에 외영과 내영이 종자에 밀착되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을 겉보리[皮麥]라고 하고, 영이 잘 떨어지는 것을 쌀보리[裸麥]라고 한다. 또 여섯 줄 보리의 이삭 횡단면의 모양에 따라서, 육모보리와 네모보리(늘보리)로 나누어진다.

쌀에 섞어서 쉽게 밥을 지을 수 있도록 가공한 것에 납작보리[壓麥]와 할맥(割麥)이 있다. 할맥은 가공 도중에 길이로 2등분한 것으로 납작보리보다 작으며 빛깔도 희다.

최근에는 보리가 건강식이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요즘은 보리밥 외에도 보리떡, 보리빵 등을 만드는데 사용될 뿐만 아니라 맥주용, 사료용으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보리밥은 특히 비타민 B1이나 B2가 쌀밥보다 많아 각기병 예방에 좋고, 섬유질이 많아 변비에도 효과적이다. 단백질 등 전반적인 영양가가 쌀밥보다 우수하다.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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