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식민과 제국의 교차로, 대전역이여' 문학 속 대전정거장은?

  • 사회/교육
  • 이슈&화제

'아~ 식민과 제국의 교차로, 대전역이여' 문학 속 대전정거장은?

대전시 대전역사문화 학술대회서 발표
한상철 목원대 교수 '문학 속 대전역' 발표
1950년 9월 15일 대전역 폭격 문학에 담겨

  • 승인 2024-09-15 12:32
  • 수정 2024-09-15 13:10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IMG_9767_edited
한상철 목원대 교수가 대전역 동광장 철도보급창에서 열린 학술대회를 통해 문학 속 대전역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전역한 군인들이 사진 찍는 명소 또는 영화 '부산행'의 무대 정도로 기억하는 대전역이 1904년 개통 직후 문학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어 기록됐을까? 일제강점기 조선이 처한 '식민과 제국의 교차로'를 상징하는 장소이면서 미군 공중폭격과 피란열차를 통해 냉혹한 전쟁의 이면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소재이었다는 게 연구자의 설명이다.

한상철 목원대학교 스톡스대학 기초교양학부 교수는 9월 6일 대전역 동광장 철도보급창에서 열린 '대전역사문화 학술대회'에서 '문학에서 다뤄진 대전역과 삶의 모습'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신동엽 시에 나타난 백제와 혁명의 역사화' 논문을 발표하고, '식민과 제국의 교차로, 역의 문학사-20세기 전반의 대전역을 중심으로'에서 대전역 준공과 관련 문학에 대한 앞선 연구를 수행했다.

한상철 교수는 1904년 러일전쟁의 보급로 확보를 위해 속성으로 건설된 조선 철도망의 신생역 대전정거장이 문학에서 어떻게 다뤄졌는지 주목해 일제강점기 문학에서 대전역은 '식민과 제국의 교차로'이었다고 분석했다. 단편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알려진 작가 염상섭의 '만세전(1924년)'에서 작중 인물 이인화가 도쿄에서 경성으로 기차를 타고 귀환하던 중 1918년 정차한 대전역에서 대전 시내를 바라본 감상이 담겼다.

『만세전』염상섭. 1924.



「자정이나 넘은 뒤에 차는 대전(大田)에 와서 닿았다.(중략) 대합실도 없이 이런 벌판에 세워둘 지경이면 어서 찻간으로 들여보낼 일이지.(중략) 정거장 문밖으로 나서서 눈을 바삭바삭 밟으며 큰길 거리로 나가니까 칠년 전에 일본으로 달아날 제, 오정 때 대전에서 내려서 점심을 사먹던 그 집이 어디인지 방면도 알 수 없이 시가가 변했다. 길 맞은편으로 쭉 늘어선 것은 빈지를 들였으나 모두가 신축한 일본 사람 상점이다. 우동을 파는 구루마가 쩔렁쩔렁 흔드는 요령소리만이 괴괴한 거리에 처량하다.(중량) 찻간 안으로 들어오며 나는 혼자 속으로 외쳤다. '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

2024032901002295700093901
일제강점기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엽서봉투에 경부와 호남선의 대전역 위치와 유성온천이 안내되어 있다.  (사진=대전시립박물관 제공)
한밤의 대전역 정차 장면에서 작중 인물 이인화가 '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라고 묘사함으로써, 발전하면서 타락하는 식민도시 대전의 적나라한 풍경을 목격하고 울분을 '구더기가 끓는 무덤'으로 표현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것이 한 교수의 분석이다.

한상철 교수는 "염상섭이 그려놓은 대전역의 불편하면서도 괴괴한 정경은 백여 년 후 황석영의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에서도 부활한다"라며 "일본인 상점가, 그 안에 뿌리내린 유곽에서 비롯한 식민 도시는 지난 백년 간 한국문학에 등장했던 강점기 시절 대전역의 꼬리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전역이 작중 인물들의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로써 등장하는 특징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논산 출신 엄홍섭의 '세기의 애인'(1939)에서 광주에서 오는 남성과 광주에서 올라온 여성이 대전역에 정차한 기차 한 객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나, 채만식의 '탁류'(1937)에서 대전역에 당도해 유성온천을 찾는 제호와 초봉이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한 교수는 "염홍섭은 주인공들의 첫 만남을 위한 극적 무대로 대전역을 보여주는데, 두 사람의 출발지는 각각 경부선의 대구와 호남선의 광주였지만 분기점이라는 대전역의 특수성은 그들의 만남을 자연스러우면서도 극적으로 느끼게 해준다"고 해석했다.

그는 대전역의 복합적인 의미에 천착한 작가 채만식의 '역로'(1946)를 인용하며 "분단된 조국의 현실에 드리워진 불안한 그림자를 통렬하게 꿰뚫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 교수는 "1946년 작품 '역로'는 서울역에서 출발해 대전역에 이르는 두 인물의 여정을 그렸는데, 작중 인물의 대화를 통해 온전한 독립과 민족국가 건설로 이어지지 못한 한반도의 현실이 묘사됐다"라며 "대전역과 인근 여관촌의 열악한 현실이 생생하게 묘사되고 대전역에 정차한 미군 열차를 담아냄으로써 식민지를 갓 벗어난 한반도가 또 다른 제국주의 냉전 체제의 등장으로 인해 갈라지는 초입을 예리하게 잡아냈다"고 설명했다.

한국전쟁 초기 대전역은 보급과 수송을 위한 전략적 거점으로 활용되면서 1950년 7월 21일과 미군의 공중폭격으로 대전역은 크게 파괴되었고,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된 1950년 9월 15일에는 대전과 경북 안동지역에서 B-29 폭격기 편대가 벌인 대규모 공습은 대전역 인근에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가져왔다.

2023082501002330100090962 (1)
2023년 8월 23일 대전역 주차장 개발 공사장에서 발견된 6·25전쟁 때 추정되는 항공폭탄.  (사진=공군본부 제공)
『시사회』 조선작. 1972.

「다음날 아침 정거장에 대대적인 폭격이 감행된 것이다. 하늘은 시꺼먼 중폭격기의 편대로 뒤덮여 있었다. 그 중폭격기의 편대가 정거장의 상공에 이르는 순간 폭탄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또 한 번, 뒤따르던 편대도 시꺼먼 폭탄을 쏟아놓았다.」

한 교수는 "대전역이 폭격당하던 1950년 여름의 어느 하루를 묘사한 것은 한국전쟁 초기 대전역이 겪어야 했던 폭격의 아픔을 증언하는 텍스트로서도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양기철의 '길은 질퍽어리고'(1951), 김수남 '달바라기'(1980)를 통해 수많은 민간인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거나 삶의 터전을 빼앗긴 현실을 기록했다.

한상철 교수는 "대전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함께 살필 수 있고 문학에서도 그러한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라며 "전쟁의 참회를 겪지 않은 세대에게는 이미지와 구전으로 남아 있을, 침묵의 폐허가 그곳에 있다"고 밝혔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보훈요양원, 국간간호생도 방문 음식 만들기 체험
  2. 충남대병원 작년 53억원 흑자경영…암환자 입원·수술 30% 증가
  3. 세종시 '농아인과 청각·언어 장애인' 소통의 장 열린다
  4. 국민의힘 대전시당, 해수부 부산 이전 반대 궐기대회 개최
  5. 첫 대전시청사, '공회당'의미 재해석
  1. 도심 속 접시꽃 ‘눈길’
  2. 검찰, '동료 남성의원 추행 혐의' 상병헌 의원 징역형 구형
  3. [충남도 민선8기 3년 명암(明暗)] 김태흠 지사 대표 성과 '외자 유치' 사실은?
  4. 대전 국민의힘 "해수부 이전은 행정수도 괴멸"… 반대 궐기대회서 쏟아진 거센 반발
  5. 2025년 판 '행정수도특별법', 21년 만에 국회 문턱 넘을까

헤드라인 뉴스


`소상공인 지원 늘리고, 가계대출 줄이고`…정부 기조에 발 맞추는 은행권

'소상공인 지원 늘리고, 가계대출 줄이고'…정부 기조에 발 맞추는 은행권

은행권이 다음 달 시행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규제를 앞두고 급증하는 가계대출을 억제하고 자체 관리에 나섰다. 다만, 새 정부 기조에 발맞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금융지원은 대폭 확대하는 모습이다. 26일 은행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이날부터 대출 모집법인별 신규 취급 한도를 부여했다. 자율적 가계대출 관리를 목적으로 주택시장 안정화와 연중 안정적인 금융 공급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NH농협은행, 신한은행 등도 현재 대출모집인을 통한 7월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점수를 한도 소진으로 중단한 상태다. SC제..

김상환 헌재소장, 오영준 헌법재판관, 임광현 국세청장 후보 모두 ‘충청’
김상환 헌재소장, 오영준 헌법재판관, 임광현 국세청장 후보 모두 ‘충청’

김상환(66년생) 헌법재판소장 겸 헌법재판관 후보, 오영준(69년생) 헌법재판관 후보, 임광현(69년생) 국세청장 후보 모두 충청 출신이 지명됐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26일 오후 브리핑을 통해 3명에 대한 인선 결과를 발표했다. 우선 대전에서 태어나 보문고(29회)와 서울대를 졸업한 김상환 후보는 사법시험(사법연수원 20기) 합격 후 1994년 부산지법 판사로 임관해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과 연구부장, 제주지법 수석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제1 민사 수석부장, 대법관, 법원행정처장 등 지냈다...

대한제강, 당진에 5400억 투입 국내최대 스마트팜단지 만든다
대한제강, 당진에 5400억 투입 국내최대 스마트팜단지 만든다

충남도가 대한제강, 당진시와 손잡고 대한민국 최대 스마트팜단지 조성에 나선다. 이 스마트팜단지는 특히 인근 제철소 폐열을 냉·난방 에너지로 활용, 입주 농업인들이 에너지 비용을 크게 절감하며 탄소중립까지 실현한다. 김태흠 지사는 26일 도청 상황실에서 오치훈 대한제강 회장, 오성환 당진시장과 '에코-그리드(Eco-Grid) 당진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투자양해각서에 따르면, 대한제강은 2028년까지 당진 석문간척지(석문명 통정리 일원) 내에 119만㎡ 규모 스마트팜단지(이하 석문 스마트팜단지)를 조성한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마철 타이어 점검은 필수입니다’ ‘장마철 타이어 점검은 필수입니다’

  • 국민의힘 대전시당, 해수부 부산 이전 반대 궐기대회 개최 국민의힘 대전시당, 해수부 부산 이전 반대 궐기대회 개최

  • 도심 속 접시꽃 ‘눈길’ 도심 속 접시꽃 ‘눈길’

  • 대전에 생긴 ‘오상욱 거리’ 대전에 생긴 ‘오상욱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