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역사의 기억과 폭로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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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역사의 기억과 폭로된 욕망

영화 '하얼빈'

  • 승인 2025-01-02 16:29
  • 신문게재 2025-01-03 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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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얼빈 포스터.
첫 장면. 끝없이 넓게 얼어붙은 강물 위로 한 사내가 외로이 걸어가는 모습을 카메라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듯이 오래도록 잡아냅니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금이 간 얼음판은 동지들을 잃고 다시 임무의 현장으로 돌아가는 그의 찢어지는 심사를 그려내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왜 그가 다시 돌아가야 하는가를 이렇듯 벗어나지 못할 심리적 외길을 통해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하얼빈. 1909년 10월 26일이란 시간도, 그때 그곳에 있던 인물들도, 그들이 벌인 역사적 사건도 다 지나가고, 도시만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장소는 시간과 사건을 기억하게 하는 지표가 됩니다. 과거의 한 시점으로 돌아가 회상하게 하는 영화 기법인 플래시백의 가장 대표적인 계기도 장소와 관련됩니다. 추억하고 회상하게 하는 장소 하얼빈은 2025년 광복 80주년의 시점에 썩 잘 어울립니다.

역사 영화로서의 <하얼빈>은 그러나 지나치게 심리적 반응을 경계합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순간 카레라는 놀라울 정도로 인물들로부터 멀어집니다. 저격한 안중근도, 저격당한 히토도 우리는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클로즈업 숏이 감정의 과잉과 몰입의 강요를 유발한다는 것은 익히 많이 알려진 것입니다. 그렇다해도 결정적 순간 하늘 높이 올라가 버린 카메라 탓에 우리는 현장으로부터 급속히 이탈하는 허탈함과 공백감을 경험합니다. 심리적 움직임은 순식간에 증발하고 객관적 정황만 남아 안중근은 곧장 다시 역사 속으로 회귀합니다. 플래시백은 물론 그 당시 그 사건 속으로 우리를 데려가 자세히 살피도록 하지만 기억이란 정서와 긴밀히 연결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하얼빈>은 영웅적 인물이 우리들 기억 속에 다시 한 번 되새겨지는 기회를 과도하게 박탈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마지막 장면. 고요한 숲속에 늘어선 나무들 위로 하늘이 오래 보입니다. 카메라가 아래에서 위로 향할 때 피사체는 존경의 대상이 됩니다. 안중근은 지금 하늘에 있습니다. 추모의 경건함이 스크린 가득 넘쳐납니다. 한참 후 말을 탄 동지들이 하나, 둘 숲으로 모입니다. 그리고 길을 떠납니다. 안중근의 순결한 용기는 남은 자의 몫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왜 하필 하얼빈일까? 대륙 정복의 야망을 상징하는 이토와 그가 주도해 만든 철도. 그리고 역사 속에 기억될 일을 하고자 하는 독립운동가들의 욕망이 충돌하는 가운데 하얼빈의 안중근은 일체의 욕망이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죽음으로써 야망의 헛됨을 폭로해 냈습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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