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어느 진로 상담실의 '아보하'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어느 진로 상담실의 '아보하'

이영미 세종국제고등학교 교사

  • 승인 2025-01-16 09:56
  • 이희택 기자이희택 기자
이영미(증명사진)
이영미 세종국제고 교사. 사진=시교육청 제공.
처음 '아보하'라는 말을 듣고 '아로하?'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보통의 하루'를 줄인 '아보하'였습니다. 아.주.보.통.의.하.루.

'무탈하고 안온한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세태가 반영된 말이라는데, 저는 그저 처음에 소리가 예뻐서 제 마음에 들였더랍니다. 그런데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가 낯선 저에게 어찌된 일인지 '아보하'는 찰지게 달라붙어 잊히지 않았습니다.

기억하려 애쓰지도 않았는데 "왜지?" 싶습니다. 요즘 학교의 일상이 언감생심 '보통의 하루'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일까요? 학년 말 각종 마무리와 생활기록부 기록에 정신없이 바쁘니까요. 그도 아니면 교육에도 '개혁'이니 '혁신'이니 그런 말들이 예사처럼 붙는 세상이기 때문일까요?

'아주 보통의 하루'를 살고 싶어하는 모두는 경쟁에 숨 막히고, 성취는 맛보기 힘들고, 적응은 버겁고! 잠재된 불안이 달콤하게 들리는 말이나마 붙든 것일까요?



아, 생각해보니 '아보하'라는 말을 저도 모르게 기억하는 이유를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제 뇌가 이미 알고 있던 '아로하'라는 단어 옆에 '아보하'를 붙여 놓았다구요.

'아로하'로 착각을 한 것은 일종의 스토리텔링으로 기억을 더욱 강화했구요. 어찌 되었든 '아보하'는 의도치 않게 장기 기억으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무해한 것 같지 않으니 좋은 친구가 되려고 합니다.

저는 학교에서 무해한 진로상담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힘은 별로 없어요~) 진로상담실은 작지만 학생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득이 되는 공간을 지향합니다. 그것이 때로는 진로를 상담하는 곳일 수도, 경쟁에 지친 마음이 쉬어 가는 장소일 수도, 필요한 진학 정보를 얻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모두에게 진로 상담실은 무해한 곳으로 열려 있습니다. 상담실 밖은 경쟁이니 평가니 지치게 만드는 일상이 있는 곳이나, 진로 상담실은 누구라도 이곳에 와서 작은 문을 닫으면 잠시 쉬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로 교사의 '경청(敬聽)'이 주는 힐링이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요!

아주 보통의 어느 날, 한 학생이 문을 열고 쭈뼛쭈뼛 들어옵니다. 진로를 바꿔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성적이 잘 안 나오나 봅니다) 하지만 경험이 많은 교사는 그가 느꼈던 좌절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읽습니다.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지기 싫어하는 마음과 좌절감, 불안도 읽어 줍니다.

저는 차도 따뜻하게 타서 건네줍니다. 진로보다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아 불안하고, 자신의 조급함이 문제였다는 것을 알아챈 모양새입니다. 이 학생에게 성적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마치 절대 반지와 같습니다.(학생을 쥐락펴락하고 있습니다.)

저는 살살 학생의 시계를 늘려 줍니다. 학생은 많은 날들이 있었고, 더 많은 날들이 있을 것임을 알아챕니다. 그 안에는 자신의 기대치를 높인 경험도 있고, 그를 좌절케 한 일도 있습니다. 인생에서 성적은 한 부분임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리고 아픔이 한 장의 스토리가 될 미래의 어느 날도 있습니다. 비로소 숨이 쉬어진 학생은 보이지 않던 것들을 봅니다. 학생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섭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진실한 태도로 자신에게 공감하여 주는 사람을 만나면 용기를 얻고 씩씩함을 되찾습니다. 진로상담실 밖에서 그들의 바쁜 걸음과 생기 있는 눈동자를 볼라치면 공감의 힘을 실감합니다.

인공지능(AI) 시대, 인간보다 사물이나 기술 친화적인 디스커넥트한(분리) 인간형이 유리하다고 해도, 저는 여전히 인간이 주는 공감의 힘을 믿으며 '아주 보통의 하루'를 살고자 합니다. 무해하고 득이 되는 장소 진로상담실, '경청'이 주는 힐링의 공간입니다. 많이 찾아와 주세요!

2025년 대한민국 모든 곳에서 평범한 일상이 가득차길 또한 기원합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호서대' 연극트랙', 국내 최대 구모 연극제서 3관왕
  2. 아산시, 민관협력 활성화 워크숍 개최
  3. 천안법원, 공모해 허위 거래하며 거액 편취한 일당 '징역형'
  4. 충청남도교육청평생교육원, 노인 대상 도서관 체험 수업 진행
  5. 엄소영 천안시의원, 부성1동 행정복지센터 신축 관련 주민 소통 간담회 개최
  1. 상명대, 라오스서 국제개발협력 가치 실천
  2. 한기대 김태용 교수·서울대·생기원 '고효율 촉매기술' 개발
  3. 천안법원, 음주운전으로 승용차 들이받은 50대 남성 징역형
  4. 천안시의회 드론산업 활성화 연구모임, 세계드론연맹과 글로벌 비전 논의하다
  5. 세종시 '러닝 크루' 급성장...SRT가 선두주자 나선다

헤드라인 뉴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충청권 역주행...행정수도 진정성 있나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충청권 역주행...행정수도 진정성 있나

행정수도와 국가균형발전 키워드를 주도해온 더불어민주당이 '해양수산부 이전' 추진 과정에서 강한 반발과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 대선 득표율(49.4%)을 크게 뛰어넘는 60% 대를 넘어서고 있으나 유독 충청권에서만 하락세로 역주행 중이다. 지난 7일 발표된 리얼미터와 여론조사 꽃, 4일 공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충청권은 호남과 인천경기, 서울, 강원, 제주권에 비해 크게 낮은 60%대로 내려앉거나 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2026년 충청권 지방선..

조국혁신당 대전시당, `검찰개혁 끝까지 간다`… 시민토크콘서트 성황
조국혁신당 대전시당, '검찰개혁 끝까지 간다'… 시민토크콘서트 성황

조국혁신당 대전시당이 12일 유성문화원에서 '검찰개혁 시민콘서트'를 열어 당원·시민들과 함께 검찰개혁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향 등을 논의했다. 이날 행사엔 황운하 시당위원장과 차규근·박은정 의원이 패널로 참여하고, 배수진 변호사가 사회를 맡아 진행했다. 이들은 조국혁신당이 발의한 검찰개혁 5법 공소청법, 중대범죄수사청법, 수사절차법, 형사소송법 개정안·검찰독재 정치보복 진상규명과 피해회복을 위한 특별법 등의 내용과 국회 논의 상황, 향후 입법 일정·전망을 설명했다. 차규근 의원은 "수사절차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해 검찰의 무차별..

무더위에 수박 한 통 3만원 훌쩍... 농산물 가격 급등세
무더위에 수박 한 통 3만원 훌쩍... 농산물 가격 급등세

여름 무더위가 평소보다 일찍 찾아오면서 수박이 한 통에 3만원을 넘어서는 등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13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대전 수박 평균 소매 가격은 11일 기준 3만 2700원으로, 한 달 전(2만 1877원)보다 49.47%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 2만 1336원보다 53.26% 오른 수준이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가격 중 최대·최소를 제외한 3년 평균치인 평년 가격인 2만 1021원보다는 55.56% 인상됐다. 대전 수박 소매 가격은 2일까지만 하더라도 2만 4000원대였으나 4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폐업 늘자 쏟아지는 중고용품들 폐업 늘자 쏟아지는 중고용품들

  • 물놀이가 즐거운 아이들 물놀이가 즐거운 아이들

  • ‘몸짱을 위해’ ‘몸짱을 위해’

  • ‘꿈돌이와 전통주가 만났다’…꿈돌이 막걸리 출시 ‘꿈돌이와 전통주가 만났다’…꿈돌이 막걸리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