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상식의 독재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상식의 독재

김홍진 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 승인 2025-01-22 17:01
  • 신문게재 2025-01-23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2024102901002005000080901
김홍진 교수.
여보, 끊을게, 한번만 봐줘! 나를 비롯한 술, 담배, 도박 등에 중독된 남편의 아내나 가족들은 당연한 반응을 보인다. '니가!' 그 한번은 영원의 다른 이름이다.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후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피하지" 않겠다던 대통령의 태도는 언제나 그랬던 아침의 아내 앞 나처럼 표변해버렸다. 좀 과한 표현을 쓰자면 배 째라는 식이다. 그의 거짓말은 마치 자신을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비극의 히로인처럼 포장하는 허언증 인물 성격과 조금도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사이토 이사무는 '사람은 왜 거짓말을 할까?'에서 허언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에 따르면 알코올, 마약, 도박 중독자와 같이 밥 먹듯 거짓말을 일삼는 이들은 "자신의 실패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자존심을 높이고자 한다. 이 허언증 환자들은 시쳇말로 타인의 주목을 갈구하는 관심종자처럼 "자기중심적이고 제멋대로이며 어린아이 같"아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보호해주고 대접"해주기를 갈망한다. 나아가 자신의 처지를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과장해서 비극의 히로인"처럼 자기서사를 꾸며낸다. 불의에 맞서다 좌절한 비극적 영웅으로의 세탁이랄까 포장이랄까.

이 글을 쓰게 한 그날도 아무 일 없었다. 내겐 그저 그런 반복되는 무료하고 권태로운 일상의 평범한 겨울밤일 뿐이었다. 늘 그렇듯 반주 삼아 막걸리 한잔하고 책을 펼쳤다 이내 잠들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동거인은 내 곤한 잠을 깨우고는 난데없이 계엄을 선포했다. 아니, 이 여자가 실성했나! 아닌 밤중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도 유분수지…. 그러나 그 초현실적이고 황당하며 경악스러운 상황은 사실이었다. TV화면엔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 유리창을 깨부수고 의사당으로 난입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비상계엄 명분으로 내세운 건 자동반복강박증처럼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함이라 했다. 그리고 엊그제 새벽 이를 추종하는 일군의 무리가 폭도가 되어 민주공화국의 상징이며 법치의 토대인 법원을 침탈 유린했다. 이건 우리 근대사 야만의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다. 대통령은 부정선거에 의해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의 폭거에 의해 망국의 길로 가고 있다고 굳게 믿는, 편집증 환자에 가까워 보인다. 그리하여 계엄이다. 숭고한 결정이다. 숭고는 황홀과 도취를 부른다. 설명이 필요 없는 게 숭고다. 여기에 이성과 상식이 작동할 자리는 없다.

지난해 여름 '상식의 독재'를 펴낸 논객 한윤형의 말에 따르면, 음모론에는 무엇보다 구멍, 한 치의 빈틈도 없다. 이를테면 그럴듯한 논리적 개연성으로 천의무봉으로 이야기를 짜 맞춘 게 음모론이다. 지상의 우리는 천상의 신처럼 모든 걸 굽어 살필 수 있는 전지적 권능이 없다. 우리가 사실이라 믿는 것에는 필연적으로 여기저기 숭숭 구멍이 뚫려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음모론은 그 빈틈, 바늘구멍조차도 없다. 의심의 믿음을 빠짐없이 상상력으로 채워 넣기 때문이다. 가정된 믿음을 기반으로 거기에 허구를 덧씌워 탄생하는 게 음모론이다.

작금의 현실에서 특정 이념이나 믿음에 과잉 기초한 음모론은 화학물질에 중독되는 것보다 더 유해한 것처럼 보인다. 비화학물질 중독은 공적 시스템을 파괴한다. 작금의 상황이 그러하다. 한윤형이 말하는 '상식의 독재'는 공통의 보편 가치다. 그의 말대로 절대적 중심을 상실한 우리 사회는 하나의 상식이 지배하던 세계에서 파편 분화하여 투쟁하는 왜곡된 상식들이 난무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지경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식의 복원, 상식의 독재다.

김홍진 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동물원 '늑구' 생포 직전 포위망 달아나… "건강·은신구역 확인, 포획 가능성↑"
  2. 기자 눈에도 보였던 늑구 포획 실패한 이유는?
  3. '늑구'가 비춘 그림자…대륙사슴·하늘다람쥐 우리곁 멸종위기는 '진행중'
  4. 내달 통합 찬반 투표 앞두고 충남대-공주대 긴장 고조… 학생들 "의견수렴 부족"
  5. 제1회 부여국제히스토리영화제 개봉박두
  1. 안전공업 화재수신기 직접 껐다는 직원 진술 나와… 대화동공장 인화성 위험물 허가보다 2배 보관
  2. 5차 특구육성 종합계획서 빠진 공동관리아파트 활용… 추진 탄력 아쉬움
  3. '대전 도심 첫 폐교' 성천초 학교복합시설 공모 선정
  4. 이재명 정부 과학기술 정책 일단은 '긍정'… 앞으로 더 많은 변화 필요
  5. '공기·물·태양광으로 비료 만든다' 대전기업 그린팜, 아프라카 농업에 희망 선사

헤드라인 뉴스


與 충남지사 경선 박수현 승리…국힘 김태흠과 빅뱅

與 충남지사 경선 박수현 승리…국힘 김태흠과 빅뱅

6·3 지방선거 더불어민주당 충남지사 경선에서 재선 박수현 의원(공주부여청양)이 15일 승리했다. 민주당 중앙당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이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후보별 득표율은 당규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이로써 본선에 진출한 박 의원은 국민의힘 후보로 확정된 김태흠 현 지사와 맞붙게 됐다. 박 의원의 본선행은 높은 인지도와 과감한 승부수, 자치분권 등 정책 행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그는 1차 경선에서 민선 7기 충남시정을 이끈 양승조 전 지사와 3선 기초단체장 출신인 나소열 전 서천군수와 겨뤄 양 전 지사와 함께 결..

대전 중구 문창2동 우편취급국 인근 MZ세대 `핫플레이스`로 주목
대전 중구 문창2동 우편취급국 인근 MZ세대 '핫플레이스'로 주목

대전 주요 상권이 MZ세대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태어난 MZ세대들은 가치 소비와 경험 소비, SNS를 통한 정보 공유에 관심이 많은 세대를 뜻한다. 대전 주요 골목이 이들에게 선택받으며 상권의 신흥강자로 떠오른다. MZ세대 발길이 닿는다는 건 이들이 30·40대가 됐을 때 추억의 장소이자 단골 식당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큰 만큼 시장에선 노른자로 불린다. 15일 소상공인 365 빅데이터가 추려낸 대전 MZ세대 핫플레이스는 '대전 문창2동 우편취급국' 인근이다. 중구 문창동에 위치한 해당..

"내가 농기센터 직원인데"…농자재 업체, 공무원 사칭 피해 속출
"내가 농기센터 직원인데"…농자재 업체, 공무원 사칭 피해 속출

<속보>=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공무원 사칭 사기가 세종지역 농자재·농기계 업체들을 덮치면서 비상이 걸렸다. 세종시농업기술센터 소속 공무원을 사칭해 납품을 유도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데, 실제 수천만 원대의 피해로 이어진 경우도 확인돼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15일 센터 등에 따르면 최근 1개월 사이 센터 소속 공무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지역 종묘·농약사와 농기계 대리점 등 업주에게 접근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으며 이날 기준 최소 5건이 확인됐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조치원읍에서 농자재를 판매하고 있는 A 씨는 지난 7..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씨 없는 포도 ‘델라웨어’…전국 첫 출하 씨 없는 포도 ‘델라웨어’…전국 첫 출하

  • ‘자원순환 실천 함께해요’ ‘자원순환 실천 함께해요’

  • 세월호 참사 12주기,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12주기, ‘잊지 않겠습니다’

  • 대전오월드 인근에서 목격된 ‘늑구’ 포획에 나선 경찰들 대전오월드 인근에서 목격된 ‘늑구’ 포획에 나선 경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