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상아탑을 넘어, 지역과 함께

  • 오피니언
  • 중도시평

[중도시평] 상아탑을 넘어, 지역과 함께

원구환 한남대 기획조정처장

  • 승인 2025-03-18 10:02
  • 신문게재 2025-03-19 18면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2023082801010014786
원구환 한남대 기획조정처장
코끼리는 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 특정한 장소로 모이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죽은 코끼리들의 어금니인 상아가 쌓여 마치 탑을 이루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하얗고 깨끗한 상아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귀한 보물로 여겨졌다. 코끼리의 몸이 썩어 사라진 후에도 오랜 세월 그대로 남아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으로 불리곤 했다. 이러한 상아의 특성은 학문 세계에서도 비유적으로 사용된다.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아탑은 지식과 학문의 순수성을 상징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학문의 깊이를 더해 가는 대학의 모습이 상아탑의 의미와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과거 대학은 실용적인 학문보다는 순수한 진리 탐구를 목적으로 삼았으며, 사회·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연구와 학문의 자유를 추구해 왔다. 이로 인해 대학은 종종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상아탑에 틀어박혔다'는 표현이 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데 사용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됐다. 대학이 진리를 탐구하는 기관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학문이 사회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할 경우, 대학과 사회 모두 위기를 맞게 된다. 특히 오늘날 대학이 직면한 문제 중 하나는 고등교육의 수요와 공급 불균형이다. 대학 진학 연령대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반면, 대학들은 양적 팽창을 거듭해 왔다. 불균형은 대학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하고 있다.



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 현상이 지속되면서 지방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출생아 수는 2022년부터 25만 명 이하로 감소했으며, 2020년부터는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dead cross)'현상이 발생했다. 인구 구조 변화로 인해 2021년부터 대학 입학 연령대 인구가 입학 정원에 미달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신입생 모집 미달 사태의 90% 이상이 지방에서 발생하고 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는다'는 이른바 '벚꽃 괴담'이 현실화되고 있으며, 수도권 대학 선호 현상도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는 지방에서 교육을 받더라도 정주할 수 있는 환경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방 대학의 위기는 곧 지역 사회의 위기로 이어지며, 나아가 지역 소멸과 국가 경쟁력 약화로까지 확대되는 실정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에는 100여 개의 대학이 있는데, 대부분 정문 없이 지역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대학의 물리적 장벽이 없을 뿐 아니라 지역과 연계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는 보스턴의 올스턴(Allston) 지역과 캠퍼스를 잇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MIT는 'Kendall Square Initiative'를 통해 AI·바이오·로보틱스 기업과 협력해 혁신 지구를 조성하고 있다. 스탠퍼드대학교는 구글, 페이스북, 테슬라 등과 협력하며 연구를 산업화하고 있고, 캠브리지대학교는 'Cambridge Science Park'를 통해 대학과 기업이 협력하는 연구 클러스터를 운영하고 있다. 암스테르담 대학교는 'Science Park Amsterdam'에서 공공 연구소, 스타트업, 글로벌 기업이 함께하는 혁신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핀란드 헬싱키 대학교는 'Helsinki Challenge' 프로그램을 통해 연구자, 학생, 지역 주민이 함께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한국의 대학도 지역과 함께하는 개방형 캠퍼스를 조성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캠퍼스혁신파크 사업이다. 기존의 대학 캠퍼스는 학교 용지(校地)로 한정됐지만, 이제는 대학 내 산업단지를 조성할 수 있게 됐다. 대학, 기업, 지역, 지자체가 협력해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 내 우수 인재가 정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 전국 9개 대학이 캠퍼스혁신파크 사업을 진행 중이며, 한남대학교는 대한민국 최초로 이를 준공했다. 대학이 벽을 허물고, 지역과 함께 미래를 선도하는 것을 기대해 본다./원구환 한남대 기획조정처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롯데백화점 대전점, 성심당 리뉴얼... 백화점 중 최대 규모 베이커리로
  2. "아산시 '곡교천 탕정지구 연계사업' 밑그림 그려졌다"
  3. [라이즈 현안 점검] 대학 수는 적은데 국비는 수십억 차이…지역대 '빈익빈 부익부' 우려
  4. [행복한 대전교육 프로젝트] 대전변동중, 음악으로 함께 어울리는 행복한 예술교육
  5. {현장취재]김기황 원장, 한국효문화진흥원 2025 동계효문화포럼 개최
  1. "함께 걸어온 1년, 함께 만들어갈 내일"
  2. 농식품부 '농촌재능나눔 대상' 16개 부문 시상
  3. 작은 유치원 함께하니, 배움이 더 커졌어요
  4. 충남경찰, 21대 대선 당시 선거사범 158명 적발… 직전 대선보다 119명↑
  5. 충남경제진흥원 '2025 중소기업 육성자금' 기업 만족도 94.5%

헤드라인 뉴스


대법원 세종 이전법 발의했는데, 뒤늦은 대구 이전법 논란

대법원 세종 이전법 발의했는데, 뒤늦은 대구 이전법 논란

대법원을 세종시가 아닌 대구시로 이전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향후 논의 과정이 주목된다. 다만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이 주도한 데다, 11월에 혁신당 대전시당 위원장인 황운하 의원(비례)이 ‘대법원 세종 이전법’을 발의한 터라 논의 과정에 들어가기 전부터 여러 이견으로 대법원 지방 이전 자체가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혁신당 대구시당 위원장인 차규근 의원(비례)은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당 권칠승 의원과 함께 대법원을 대구로 이전하고 대법원의 부속기관도 대법원 소재지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직장맘에게 지급하는 출산 전후 휴가급여 상한액이 내년부터 월 220만원으로 오른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하한액이 출산휴가급여 상한액을 웃도는 역전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다. 고용노동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출산전후휴가 급여 등 상한액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는 출산 전과 후에 9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받을 수 있다. 미숙아 출산은 100일, 쌍둥이는 120일까지 가능하다. 이 기간에 최소 60일(쌍둥이 75일)은 통상임금의 100%를 받는 유급휴가다. 정부는 출산·육아에 따른 소득 감소를 최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자영업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회식 상권은 '노다지'로 불린다. 직장인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는 만큼 상권에 진입하기 전 대상 고객은 몇 명인지, 인근 업종은 어떨지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한다. 레드오션인 자영업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빅데이터 플랫폼 '소상공인 365'를 통해 대전 주요 회식 상권을 분석했다. 10일 소상공인 365에 따르면 해당 빅데이터가 선정한 대전 회식 상권 중 핫플레이스는 대전 서구 월평동 '선사유적지 인근'이다. 회식 핫플레이스 상권이란 30~5..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 풍성한 연말 공연 풍성한 연말 공연

  • ‘졸업 축하해’ ‘졸업 축하해’

  •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