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미소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수필 톡]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미소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 승인 2025-03-2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이유도 없이 울적하여 아내의 영상이 들어 있는 TJB 시상식 장면 DVD를 틀어놓고 울었다. 감정이 무뎌질 만한 세월이 흘렀는데도 나에겐 소용이 없었다. 얘기가 나온 김에 아내와 함께했던 시절, 2008년 TJB 시상식 예기 좀 해봐야겠다.

제10회 TJB 교육대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충남 대전 권내 근무하는 교사 중에서 사회기여 공적이 현저한 자를 찾아 그 적임자에게 수여하는 상이었다. 초등교육 부문 3명, 중등교육 부문 3명, 유아 및 특수교육 부문 1명. 교육행정 전문분야 1명, 획기적인 공적이 있는 대상자 1명을 선발하여 표창하는 시상식이었다. 수상자 9명은 충남 대전권내 교육청에서 추천된 후보자 37명의 교사 가운데에서 최종 선발된 분들이었다. 영광스럽게도 9명 수상자 가운데에서 내가 대상수상자로 선정됐다.

2008년 12월 8일 시상식 날이었다. 전날 저녁에 방송국 PD한테서 전화가 왔다. 수상소감을 준비하고 정해진 시각에 TJB 대전 방송국으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부부동반이란 시상식 안내문에 따라 우리 부부는 TJB방송국으로 갔다. 마련된 수상자 대기석엔 영광스러운 얼굴들이 한결같이 밝은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수상자 이름표가 좌석마다 붙어 있었다. 내 이름표는 앞좌석 맨 앞에 붙어 있었다.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초등교사부터 시작하여 중등교사, 시상식이 모두 끝났다. 맨 앞좌석에 내 이름표가 붙어 있기에 첫 번째 시상자가 나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중등교사 시상식이 모두 끝났는데도 내 이름은 부르지 않았다. 무엇이 잘 못 된 거 같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초조 불안한 마음이 짓누르는 중에도 시상식은 진행되고 있었다. 드디어 유아 및 특수교육부문 시상, 교육행정 전문분야 시상까지 모두 끝났다. 이어서 진행자 아나운서가 마이크 볼륨을 높여 한 마디 했다.

"지금부터 영예로운 TJB 교육대상, 대상수상자 시상식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제10회 TJB 교육대상중 '영예로운 대상' 수상자는 유성고등학교 남상선 선생님이 되시겠습니다."

우레와 같은 벅수소리에 만감이 교차하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방영되는 자료화면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70년대 초임지 덕산고등학교 제자들을 비롯하여 대전여자고등학교 제자들, 80년대 초반 충남고등학교 제자들이 나와 함께 자리를 하여 덕담을 나누는 영상이었다. 내가'교육대상'을 받는다고 모여든 제자들이 자랑스러웠다. 방송국 취재가 있다니까 누가 연락을 했는지 모르지만 예서제서 몰려온 제자들이었다. 시상식 내내 감동의 눈물을 훔치느라 말 잇기가 어려운 내 자신이었다. 영광스러운 방송국 단상에서 상패를 받았다.

진행자 아나운서가, "부상 500만원 상금과 꽃다발은 사모님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유를 두고 있다 잠시 후에 또 진행자가 하는 말이, "지금부터 대상을 받으신 남상선 선생님을 만나보는 시간으로 하겠습니다. 수상소감을 부탁드려도 될까요?"라고 했다. 주책스러운 이 울보의 눈물이 얼마나 걱정이 됐던지, 곁에 있던 아내가 손수건을 자주 내미는 거였다. 아내가 내민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조금은 훌쩍거리는 소리로 수상소감을 말했다. 기쁘기도 했지만 코피 흘리며 고학했던 그 시절이 날 울리고 있었다.

"제가 오늘 이렇게 좋은 상을 받는 것은 공적이 많고 잘했다기보다는 파란만장한 인생살이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고, 더욱 힘내라고 격려로 주는 상으로 생각됩니다. 보시다시피 제가 150㎝밖에 안 되는 신장으로, 난쟁이라는 야유, 멸시, 조롱을 받아가며 고학을 해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단신 150㎝ 신장의 열세를 만회하려고 안간 힘을 써가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인생은 의지의 투쟁이란 생각으로 갖은 수모 다 참아가며 성실하게 생활했습니다. 교단생활에선 죄를 덜 짓고 살겠다는 신념으로, 사람냄새 풍기며 사는 인간상 육성을 위해 열심히 뛰었습니다. 교사는 나무를 가꾸는 정원사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원사가 나무를 수형 잡힌 아름다운 모형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가지를 쳐주고, 거름도 주며, 통풍도 잘 시키는 것처럼 학생을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교사는 인간 정원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에 학생들을 위해 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9년을 고3 담임 한답시고 학교와 학생밖에 모르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정을 버린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그래서 옆에 서 있는 제 아내 고생을 너무 많이 시켰습니다. 가난한 남자, 7남매 장남한테 시집 와서 갖은 고생 다해가면서도 바가지 한 번 긁지 않고 내조를 잘 해주었기에 오늘 같은 영광스러운 상을 받게 됐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아내에게 느꺼운 감사를 드립니다. 좋은 상을 주신 의미 헛되지 않도록 학생들 열심히 가르치는 열정적인 교사, 작은 거인으로 살겠습니다. 영광스러운 자리가 있기까지 많이 도와주시고 밀어주신 TJB 정보연 이사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과 유성고등학교 홍상순 교장선생님, 전용우 교감선생님,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수상소감 마무리 말을 하다 곁의 아내를 흘낏 쳐다보았다. 아내가 터질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행복한 마음의 표현임에 틀림없었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열매는 달다'를 표정으로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꽃이 아름답지만 터질듯 말 듯한 꽃봉오리는 더 아름다운데, 아내의 행복해하는 미소가 바로 그런 거였다. 평상시 모나리자 미소를 잃지 않고 사는 얼굴에 나타난 그 표정 그 미소는 세상 제일 행복한 미소로 보아도 좋을 것 같았다.

울보의 눈물이 나비 효과를 일으켰는지 방청석 예서제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세상 제일 행복한 미소'

그건 바로 위로가 되는

고생했다는 말 한 마디

격려와 감사의 표현이

합작으로 만든 마력의 산물이었다.



멀고 먼 그 세상에서도

바보의 그 한마디 고이 간직하소서.

남상선
남상선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교도소 실탄 관리부실 논란… 이전 사업까지 우려목소리
  2. 민선9기 대전시 인수위, 이장우표 "일류경제도시' 도마 올린다
  3. 충남대·공주대, 규제 걷어내고 대학혁신 실험대에
  4. 오석진 교육감직 인수위 15일 출범…전문성·실행력 갖춘 진용 꾸리나
  5. [건강] "아프다" 말 못 하는 치매 어르신… '치과' 문 연 노인병원의 도전
  1. 충남대병원, 3년 내 새병원 예타 통과 목표…"머뭇거릴 수 없다"
  2. [기고] 반복되는 한화 폭발사고, 이제는 안전문화로 답해야 한다
  3. 한화에어로, 안전문화혁신위 출범… 반복 사고 우려는 여전
  4. 천안시, 대표 휴식공간 '공원' 새단장…봄꽃·수경시설 확충
  5. [건강]여름철 건강 이상, 단순한 더위 때문일까?

헤드라인 뉴스


대전 바이오특화단지 용두사미되나… 2년째 손놓은 정부

대전 바이오특화단지 용두사미되나… 2년째 손놓은 정부

대전시가 국가첨단전략산업 바이오특화단지로 지정된 지 2년 가까이 지났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후속 조치에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바이오특화단지 청사진 제시는 고사하고 관련 예산 역시 전무, 사업 추진 의지마저 의심케 하고 있다. 권역별 바이오사업 산업 육성으로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정부 당초 계획이 용두사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15일 대전시에 따르면 산업부는 지난 2024년 6월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된 전국 5개 바이오 특화단지에 대한 육성사업을 추..

조치원 軍 통합비행장 차일피일… 주민 소음 피해 보상금만 1억원
조치원 軍 통합비행장 차일피일… 주민 소음 피해 보상금만 1억원

<속보>=세종시가 지난 4년간 조치원 군(軍) 비행장 소음 피해 주민들에게 1억 원에 육박하는 보상금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2025년 완공 예정이던 조치원·연기 비행장 통합 이전사업이 차일피일 미뤄진 상황인데, 보다 속도감 있는 사업 추진을 통해 주민들의 소음 불편을 조속히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세종시가 제공한 군 비행장 소음 피해 보상금 현황을 보면, 시는 최근 4년간 연평균 2400여만 원씩 1억 원에 가까운 보상금(전액 국비)을 해당 주민들에게 지급했다. 구체적으로 2022년엔 107명에게 2662..

박수현 "중앙정부 설득 등 통해 충남·대전 행정통합 추진할 것"
박수현 "중앙정부 설득 등 통해 충남·대전 행정통합 추진할 것"

박수현 충남도지사 당선인의 주요 공약인 충남·대전 행정통합 조속 추진이 사실상 어려워진 가운데, 박수현 당선인이 중앙정부 설득, 방안 마련 등을 통해 추진에 속도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박 당선인은 15일 중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의 1주년 기자회견 행정통합 발언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설명한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행정통합에 속도를 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닌, 종합적인 어려움을 설명한 것"이라며 "민선8기 충남·대전 행정통합 가능성이 열렸을 때 통합이 되지 않은 아쉬움도 내포..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여름철 풍수해 대비 장비 점검 여름철 풍수해 대비 장비 점검

  • 수족구 예방…‘꼼꼼하게 손 씻어요’ 수족구 예방…‘꼼꼼하게 손 씻어요’

  • 접시꽃에 담긴 여름 접시꽃에 담긴 여름

  •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