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모순적 갈등과 정적 화면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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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모순적 갈등과 정적 화면의 역설

  • 승인 2025-04-03 16:53
  • 신문게재 2025-04-04 8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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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승부' 포스터.
두 사내가 바둑판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습니다. 말도 거의 없고, 움직임도 없이 몇 시간을 그렇게 번갈아 돌만 놓습니다. 그러니 상황만 놓고 보면 전혀 영화적이지 않습니다. 무비라는 말처럼 영화는 기본적으로 동적인 상황을 다룹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지루하지 않습니다. 심리적 긴장과 팽팽한 기운이 화면 밖으로 넘쳐납니다.

영화는 친밀함과 연속적 관계성을 전제로 하는 스승과 제자를 승부라는 극한의 대립 상황에 배치합니다. 게다가 조훈현과 이창호라는 전설적 실존 인물을 극화한 것이라 핍진한 모순과 갈등 양상이 강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극한의 모순적 갈등 상황과 정적인 화면의 역설이 바로 이 영화가 지닌 힘의 근원입니다. 균열의 극치라 할 만합니다.



균열은 봉합을 깨고 진실을 보여줍니다. 이 두 사내 중 한 명이라도 바둑을 몰랐던들, 혹은 사제 관계가 아니었던들 균열이나 갈등이 이토록 대단하지는 않았을 터입니다. 승부의 세계는 사제 간이라도 이기고 지는 냉정한 결과 앞에 서게 합니다. 여기에 제자가 스승을 이기는 일은 피차 극복해야 할 문제가 태산 같습니다. 청출어람 같은 말로 이를 수 없는 지경입니다. 이 영화의 미덕이 바로 이 지점에서 발견됩니다. 실화라는 소재주의나 전설적 기사들의 무용담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존재와 인생의 본질에 대한 성찰로 나아갑니다.

제자는 스승의 바둑을 닮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회의하고, 스승은 자신의 바둑을 뛰어넘은 제자 앞에 절망합니다. 그러나 이 둘은 결국 문제를 극복하고 성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기고 지는 것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대면하여 이겨내는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두 장면. 스승의 바둑을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하며 옥상 한 귀퉁이에서 짜장면을 먹는 이창호에게 남기철 9단이 말합니다. 배우려 하지 말고 이기려고 해 보라고. 제자에게 타이틀을 빼앗기고 빗속에서 좌절하는 스승에게 또 같은 남기철 9단이 말합니다. 견디다가 이기는 것이다. 참다 보면 기회가 온다고 말입니다. 서봉수라는 또 다른 고수를 극화한 인물입니다. 스승과 제자 모두에게 적수였던 인물이 두 사람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미묘한 인생사를 보게 합니다. 그는 이런 깨달음을 어디서 얻었을까요? 승리보다는 패배를 통해서가 아닐까요? 결국 다른 이가 아니라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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