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할 때 일이다. 거래처 사장이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발상과 시각이 자유분방, 남다른 사고력을 보여줬다. 사물 또는 매사 허투루 보지 않는다. 뛰어난 관찰 능력으로, 특이 사항이나 차이점을 쉽게 발견한다. 발견하면 지나치지 않고 진지하게 살피고 궁리한다. 어느 날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누가 옆에서 자기 생각을 받아 적어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수시로 좋은 생각이 수없이 떠오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잊게 되니 안타깝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니, 그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누구나 새로운 생각이 찾아오지만 붙들어 두지 못하고 날려 보낸다. 대부분 그것을 인식조차 못한다. 때문에 창의적 사고가 정리되지 못하고 그대로 사장된다. 심지어, 20세기 심리학에서는 창의성이 무의식의 영역에 있다고 보지 않던가?
창의성 개발을 위해 확산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하여, 꿈을 정리해 보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다. 생각같이 쉽지 않았다. 비몽사몽간이니 그대로 잠자는 경우가 많았고, 의식한다 해도 자다가 일어나 필기구를 챙겨 기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하다. 아주 생생하여 두어 차례 기록한 경우가 있을 뿐이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고 문득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다. 잡아두기 위해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자. 휴대전화를 늘 들고 다니지 않는가? 녹음하면 된다. 해보니 안성맞춤이다. 녹음된 것을 정리하며, 신선함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창작활동에 자신감이 붙었다.
대가는 천부적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곧잘 회자된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노력하면 누구나 최고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에디슨이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하지 않았던가? 과대망상일지 모르지만 영감(靈感)이 천재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을까? 다양한 의견을 종합해보면, 영감은 창조적인 열정의 상태에서 오는 초자연적인 감각, 신에게 계시 받은 것 같은 감정 등으로 정의 된다. 영혼에 대한 감각을 느끼는 마음의 기능이요, 이지적인 사고 과정인 도리 등을 거치지 않고, 직감적으로 인지되는 심리적 상태이기도 하다.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 등 사람이 설명하기 어려운 형태로 얻은 착상, 번쩍임이다. 어떻게 정리되던 창조적 계기가 된다.
창의성 발로의 또 하나는 환경이다. 좀 생뚱맞은 예하나 들어보자.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 ~ 1973, 스페인)는 살아생전 자신의 명성에 걸맞은 영광을 누린 몇 안 되는 화가 중 한 명이다. 부, 명예, 사랑 모두 마음껏 누렸다. 심지어 권력 까지도. 정치적 권력은 아니지만 예술적 권위는 대단했다. 현대미술의 창시자에서 나아가 현대미술 그 자체가 되었다. 수시로 변하기는 하지만, 현재도 100대 고가 작품 중에 15점이 랭크돼 있을 정도다.
피카소는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하다. 많은 사람 중에 잘 알려진 여인만도 7명이나 되며, 하나같이 초상화를 남겼다. 그의 미적 영감이 그 여인들로부터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여자 없이 한시도 살 수 없었던 사람처럼 보인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1만 3,500여 회화작품 중 70%이상에 여성이 등장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우는 여인> 등을 떠올려 보라. 모두 피카소의 여인이 등장한다. <게르니카>에 등장하는 절규하는 여인, <우는 여인>은 5번째 여인 도라 마르(1907 ~ 1997, 프랑스)가 모델이다.
천성적으로 무의식 활동에 탁월한 경우도 있겠으나 영감은 쥐어짜내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영감, 의도적이 아니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영감을 붙잡아 두는 것이 관건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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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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