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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대통령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 주말을 맞은 18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선거운동원들이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성희 기자 token77@ |
충청인 기질이 속마음을 겉으로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지만, 선거 때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지적을 받는 각 정당 공약이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는 탓도 크다.
역대 정부에서 뚜렷한 진척 없이 공직선거 때마다 슬그머니 "세종 행정수도, 대전 과학수도를 만들겠다"라는 정치권 외침이 충청인들에게 피로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26일 오후 대전 서구 은하수네거리. 선거 유세차량 앞을 지나던 20대 직장인 윤모 씨는 "계엄 사태 이후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공약이나 TV토론을 볼수록 선택이 어려워진다"며 "뚜렷한 정당 선호가 없어 더 고민된다"고 말했다.
충청권 유권자들이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수년간 반복된 지역 공약에 대한 피로감이다.
과학수도, 행정수도 같은 대형 구호는 매 선거마다 어김없이 등장하지만, 실제 정책 실현으로 이어진 사례는 드물다는 점에서 유권자들의 체감도는 떨어진다.
서구에 거주하는 50대 자영업자 이모 씨는 "과학도시, 행정수도 이전 이야기는 수년째 듣고 있지만 그 공약들이 내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잘 모르겠다"며 "진짜 필요한 건 거창한 미래 비전이 아닌 당장 먹고사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충청권 수부도시로 단일 행정구역에서 가장 인구와 유권자가 많은 대전의 박탈감은 크다.
국가균형발전 백년대계인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 이슈가 워낙 정치권에서 휘발성 있는 이슈이다 보니 이번 대선에서도 충청권 전체보다는 세종 중심의 공약만 남발되고 있다는 볼멘소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각 당의 후보들이 충청 대표공약이 세종에 집중돼 대전은 대선정국에서 자칫 '행정수도 배후도시'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예술계에 종사하는 40대 정모 씨는 "모든 후보가 세종 표심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 같다"며 "충청권 공약이라면서도 세종만 내세우는데, 오히려 대전이 가려지고 소외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도 여야 주요 정당과 제3지대까지 내세운 충청권 공약은 과거와 큰 차이가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2년 16대 대선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행정수도 공약은 이후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에서도 반복 됐지만 아직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또다시 대선 구호로만 소환됐다.
대덕특구를 중심으로 한 과학수도 대전 구상 역시 지난 5년간 지방선거와 총선을 거쳐 끊임없이 언급 됐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대덕특구 내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본원 산하 조직을 타 지역에 신설하며 대전의 연구 기능과 상징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을 토로하고 있다.
IMF 때보다 어렵다는 서민들의 아우성을 경청해 민심을 챙기기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데 혈안이 된 정치인들에 대한 피로감 때문이다.
유성구에 거주하는 40대 주부 김모 씨는 "이번 선거에서는 공약보다 단일화 이야기에 더 집중된 것 같다"며 "결국 이번 대선도 정당 싸움으로만 흘러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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