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고수들이 나섰다, 제주마들의 치열한 접전 코-코-코차 (5월 10일 제주4경주)
문화재청이 혈통과 종 보존을 위해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제주마는 예로부터 장수를 태우고 전쟁터를 누비거나 농경, 수레 끌기 등 강인한 체력과 척박한 환경도 이겨내는 면역력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부대에서 활약하며 탄약 등의 물자는 물론 부상병을 실어 나르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미 대통령 표창을 받고 해병대 하사로 은퇴한 명마 '레클리스' 또한 제주마 출신이다.
다만 전통적으로 경마에 출전하는 경주마는 17세기 영국에서 유래한 더러브렛종(Thorough bred)만을 활용하는데, 제주특별자치도에 위치한 렛츠런파크 제주에서는 제주마 보호 및 육성을 목적으로 오로지 제주마로만 경마를 시행한다.
발굽에서 등성마루까지의 높이를 재는 체고가 더러브렛은 160~170cm인데 비해, 제주마는 120~130cm 정도이기 때문에 경주 장면을 보면 다소 "올망졸망"하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숨막히는 한판 승부를 펼친다.
그 치열함을 여실히 보여준 경주가 이달 10일 펼쳐진 제주 4경주다. '탐라후예', '무림태자', '천지여왕' 그리고 '원평천하'까지. 무림고수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이름을 지닌 제주마들이 박빙의 접전을 펼친 가운데 4두가 코-코-코차로 들어오는 진기한 장면이 연출됐다. 1위는 단승 배당률 43.4배의 다크호스이자 9세의 노익장 '탐라후예'가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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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 가장 먼저 닿아 1위를 차지한 6번 탐라후예 경주마. |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속 아리아 '네순 도르마'의 마지막 가사인 '빈체로'는 이탈리아어로 '승리'를 의미한다. 말이라는 뜻을 가진 '카발로'와 더해지며 승리하는 말이라는 웅장한 마명을 지니게 된 서울경마장 소속의 '빈체로카발로'(한국, 수, 4세, 밤색, 마주 : 김인규, 조교사 : 서인석)
김인규 마주가 공들여 지은 이름에 걸맞게 역대 최초로 스프린터 시리즈 삼관을 달성한 '빈체로카발로'는 3월 부산일보배, 4월 SBS 스포츠 스프린트를 연거푸 제패한 후 대망의 마지막 관문인 서울마주협회장배까지 우승하며 단거리 최강자로 등극했다.
경주마의 일반적인 출전주기가 약 4~5주인 것을 감안할 때 대상(大賞)경주에 세 번 연속 출전하는 것 자체가 강행군을 소화해 내는 체력과 지구력을 증명해 보이는 일이다. 게다가 삼관을 달성한다는 것은 적수가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저렴한 3000만 원이라는 가격에 낙찰 되었던 작은 체구의 경주마는 제19대 KBS 사장을 역임한 마주 김인규씨로부터 '빈체로카발로'라는 이름을 얻은 후 33조 서인석 조교사의 트레이닝과 보살핌 속에서 성장을 거듭했고 올해 드디어 응축해온 잠재력을 터트리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오랜 기간 함께해 온 조재로 기수와 빈체로카발로의 찰떡궁합은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어느덧 2400전을 넘게 치른 11년차 베테랑 기수지만 "삼관의 마지막 관문인 서울마주협회장배 경주 전날만큼은 밤잠에 쉽게 들지 못할 정도로 긴장했다"고 언급했는데, 환상적인 호흡으로 중압감을 이겨내고 당당히 삼관의 영예를 안았다.
조 기수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는 빈체로카발로를 두고 내가 이 말을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한 적도 있다"며 "말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특히 어느 한순간조차 의심하지 않고 말을 믿고 경주를 전개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겸손한 소회를 전한 바 있다.
한편, 9월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펼쳐질 '코리아스프린트(G1)'를 통해 국내를 넘어 해외로 이름을 알릴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갈 '빈체로카발로' 등 해외 명마들과의 대결에서도 그 이름 그대로 '승리하는 말'로 거듭날 수 있기를 희망하는 팬들의 응원이 모아지고 있다.
과천=김삼철 기자 news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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