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부끄러움

  •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부끄러움

김지윤 정치행정부 기자

  • 승인 2025-06-10 16:49
  • 신문게재 2025-06-11 18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쥬니
김지윤 기자.
지난 6개월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지난해 12월 3일 10시를 넘긴 시간, 남편과 늦은 저녁을 먹고 고양이들과 놀며 시간을 보내던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러다 문뜩 핸드폰을 봤을 때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친한 기자들과 공무원들이 있는 단톡방에 한 후배가 '비상 계엄령 선포'라는 유튜브 생방송 링크를 보내왔다. 다들 "딥페이크 아니야? 말도 안 돼 ㅋㅋ"라며 비웃었지만 1분 만에 심각성을 인지하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이후 공표된 포고령을 보자 기자들 사이에선 "일자리를 잃게 생겼네"라며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말들이 흘러나왔다. 전국 입사 동기들이 있는 단톡방은 시끄러웠다.



국회에 나가 있는 동기들은 현장 상황을 바로 영상과 사진으로 찍어 지역에 있는 기자들에게 알렸고, 집에만 있어야 하는 나는 무서움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허탈감이 자리 잡았다.

2시간 만에 계엄령은 끝이 났지만, 여전히 남은 불안감에 결국 쉽게 잠들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계엄령은 공포와 충격을 안겨 주는 단어지만, 나에게도 그렇다. 내가 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니까.

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가 끝나고 도덕 선생님이 틀어주신 5·18 민주화 운동 다큐를 보고 처음 기자라는 꿈을 꿨다. 당시 아비규환이던 광주의 현장에 뛰어들어 이를 공론화하고 세상에 알린 독일 외신기자 힌츠페터를 알고 나서부터다.

나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독일 기자에 대한 막연한 존경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기자가 되고 나는 그와 같은 기자가 되지는 못한 것 같다.

지난해 선포된 계엄령 현장에서 탱크를 막고, 군인에게 울며 호소하고, 국회에 달려간 시민들이 오히려 그와 같지 않았나 싶다.

최근 유튜브를 보며 다시 한번 더 느꼈다.

서울로 진입하던 계엄군 군용차를 막던 청년들의 모습이었다. 두렵고, 무서웠을 수 있지만 한 청년은 어떠한 망설임조차 없이 군용차 앞에서 팔과 다리를 벌려 막았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도 같이 손을 잡고 군용차 앞을 가로막았다.

처음에는 감동이 이후에는 감사함이 마지막에는 창피함이 남았다.

위기의 순간, 어려운 상황에 시민들을 위한 기자를 보고 같은 사람이 되겠다 꿈꿨지만 나는 한 게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번 계엄령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6월 3일 제21대 대통령선거를 마치고 새롭게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란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특검법을 위한 남은 절차가 원활하게 진행된다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수사할 특검이 출범하게 된다.

다행히 내란에 대한 책임 요소와 처벌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 나는 기자로서의 모습을 반성하고자 이 글을 쓰게 됐다.

계엄이 종료되고, 대통령이 탄핵되고, 내란 특검 출범이 가능해진 건 무능한 내가 아닌 시민들 덕분이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서다.

김지윤 정치행정부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폭행·금품 갈취·강제추행… 청양 집단 학폭 고교생들 경찰 입건
  2. 충남도 '미래 모빌리티 거점지 도약' 초석 마련
  3. 김태흠 "천안, 인구 100만 대도시 발전 뒷받침"
  4. 충남대 제3후생관 화재…인명피해 없어
  5. 충남교육청, 전국 교육청 최초로 ISO 37001 인증 획득
  1. 현충일 보낸 대전현충원에 버려진 '플라스틱 조화 6톤'… "지속가능한 생화 사용을"
  2. 대전과학산업진흥원 한남대 이전 완료… 과기연구노조 "기관 정체성 훼손 우려"
  3. 경찰, 이진숙 방통위원장 법인카드 사적 사용 혐의 관련 압수수색
  4. 대전 유일 화훼단지 상인들 생존권 투쟁 예고…죽동2지구 6천세대 개발 시동
  5. 장마철 앞두고 하상주차장 폐쇄 안내

헤드라인 뉴스


위기의 ‘대전 유일 화훼단지’… 죽동2지구 대규모 도시개발 시동

위기의 ‘대전 유일 화훼단지’… 죽동2지구 대규모 도시개발 시동

대전에서 유일한 화훼단지로서 꽃과 조경수 도매를 담당한 죽동 일대에 도시개발을 예고하는 지장물 조사가 시작되면서 이곳에서 꽃과 나무를 키워 도매하는 농가와 상인들이 생존권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10일 죽동2지구 화훼단지 상인들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달 죽동2지구 공공주택지구 개발사업 관련 토지주 공청회를 개최했다. 국토교통부는 2021년 그린벨트인 죽동 일원(84만㎡)을 대도시권 주택공급 확대를 위한 3차 신규 공공택지로 선정했다. 주택 7000호와 생활 기반시설 등을 조성해 공급할 계획으로, 주거지역과 교육 그..

대전 대형마트 휴업일 현행 유지될 듯... 여권 대형마트 공휴일 휴업 재추진 움직임
대전 대형마트 휴업일 현행 유지될 듯... 여권 대형마트 공휴일 휴업 재추진 움직임

대전 대형마트 휴업일이 현행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여권이 지난 정부에서 폐지·축소한 대형마트 공휴일 휴업을 재추진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그간 의무 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려 했던 대전은 현재와 같이 둘째 주와 넷째 주 일요일에 문을 닫는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공휴일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강제하게 된다. 현재 국회 소위원회를 통과했으며 곧 본회를 통과해 공포·시행될 예정이다. 현재 유통법상 대형마트 휴무일은 자지단체..

앞으로 무주택자만 무순위 청약 `줍줍` 신청한다
앞으로 무주택자만 무순위 청약 '줍줍' 신청한다

앞으로 이른바 '줍줍'으로 불리는 무순위 청약에 무주택자만 신청할 수 있게 된다. 1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날부터 무순위 청약 신청 자격을 무주택자로 제한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안'이 시행된다. 무순위 청약은 합법적 청약 당첨자가 개인 사정으로 계약을 포기하거나, 청약 미달로 생긴 잔여 물량을 다시 공급하는 제도다. 그간 민간 주택의 경우 주택 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청약할 수 있었는데, 무주택자만 무순위 청약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만 청약하도록 하는 거주 요건도 추가할 수 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무더위 날리는 분수 무더위 날리는 분수

  • 고사리손으로 캔 감자 고사리손으로 캔 감자

  • 복지만두레협의회, 장담그기 및 숲속 힐링체험 복지만두레협의회, 장담그기 및 숲속 힐링체험

  • 전국 최초 캐릭터 라면, 대전 ‘꿈돌이 라면’ 출시 전국 최초 캐릭터 라면, 대전 ‘꿈돌이 라면’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