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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의 노동 현장에선 산재 사고가 비일비재하다. 이를 막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이 마련돼 있지만 이러한 법령이 무색하게 지난 20일 대한전선 당진공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공장에서 전기설비 제작 업무를 하던 40대가 떨어지는 철제 구조물에 깔려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불과 3주 전에는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김충현 씨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2018년 서부발전 김용균 씨가 사망한 후 노동계에서 발전소 현장의 하청구조, 1인 근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줄곧 외쳤지만 '2인 1조 원칙'은 이번에도 지켜지지 않았다. 기업이 위험성이 높은 업무를 하청업체나 계약직, 파견노동자에게 맡김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가 또다시 수면위에 올랐다.
고(故) 김충현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지난 2일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었다면, 비상정지 버튼을 눌러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지속한 '위험의 외주화'와 정비인력 축소가 또 다른 죽음을 불러왔다"고 밝혔다. 이어 "고인은 2차 하청업체 소속으로 최근 발전소 폐쇄 등의 이유로 심각한 인력 부족 속에서 일해왔다"고 전했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하청업체에도 안전관리 책임자가 있어야 하고 원청에서도 안전관리감독을 해야 하지만 현장에서 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 스스로 경영책임자를 중심으로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해 종사자를 보호'하고자 마련된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형식적 수준에 그친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더 구조적으로 들여다보면, 하청업체 노동자 즉 비정규직이라는 고용의 불안정성이 문제를 키웠다. 한국서부발전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5년까지 발생한 산재는 모두 39건이었는데, 서부발전 소속 직원이 피해를 본 경우는 12건, 협력사 직원은 27건이었다. 산재 피해의 69.2%가 협력사 직원에 집중된 것이다. 고(故) 김충현 씨도 한전KPS의 하청 노동자로 9년을 일하는 동안 사장이 여덟 번 바뀌었다. 이러한 다단계 고용구조라면 안전관리 책임 소재는 불분명해질 수밖에 없다. 노동계에서는 노동자를 직고용해 원청의 안전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구조로 개선해야만 안타까운 희생을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숱한 산재사고를 경험하고도 시간과 비용 절감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노동환경에선 또다시 값비싼 대가를 치를 것은 당연지사다. 안전을 소홀히 여기는 사회에서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순 없다. 대통령이 바뀌었고, 노동환경에 대한 개선 요구 목소리가 높다. '공정한 노동 환경과 안전한 일터' 조성을 강조한 이재명 정부가 김충현 씨 사고와 관련해 "이전 정부와 달리 이 정부에서만큼은 노동자가 더 눈물을 안 흘리도록 하겠다"한 약속을 지켜주기 바란다.
허정아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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