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소통의 첫 번째 수단이다. 언어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눈과 손, 몸 등 다양한 방법의 소통 수단이 있다. 좁게는 대립하는 서로의 철학적, 지적 입장을 신중하고 조직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대화술에서는 이기는 대화를 강조하기도 하지만, 대화의 궁극적 목적은 교감과 합의에 있다. 서로 이해하기위한 것이지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일반 대화에서 토의는 거의 없다. 결과 도출이나 대안 마련, 아이디어 창출이나 의견을 한 데 모으기 위해 대화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의견교환이나 공유, 소통이 주다. 토론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설득하는 노력도 할 수 있다. 그렇다 하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화낼 일도 아니요, 받아들인다고 기뻐할 것도 없다. 대화는 대화일 뿐이다.
대화가 종내 싸움이 되는 것은 근저에 부정확한 정보, 가치판단의 혼동이 있기 때문이다. 거짓이나 왜곡된 정보에 놀아나거나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는 논리를 내세운다. 소신 없이 그저 시류에 따라가기도 한다.
부정확한 정보에는 의도적인 거짓이나 왜곡된 내용이 포함된다. 정가에는 비일비재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종의 전략전술이기 때문이다. 병법 <삼십육계>의 33번째가 반간계(反間計)이다. 적의 첩자를 역이용하는 것이다. 인구에 많이 회자되는 이간계(離間計)와 유사하다. 요즘 말로, 정보매체를 회유하거나 거짓정보를 흘리는 등 허위사실 유포로 속이고 이간질 하여 서로 반목하게 만드는 것이다. 적전분열이나 적의 동맹을 깨트린다. 나아가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기도 한다(以夷制夷).
중국은 엄청난 땅덩어리 때문에 주변국가가 많다. 사방팔방에서 중원을 노리고 있다. 정치가 불안해지면 어디선가 치고 들어온다. 실제로 선진시대와 진한시대, 수당시대, 명나라를 제외하고 중국대륙은 분열돼있거나 거란족, 여진족, 몽골족 등 변방의 소수민족이 통치한다. 이에 변방의 이민족을 견제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략이 이이제이다.
어리석게, 오늘날 같은 정보시대에도 이러한 전략에 쉽게 놀아난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하는 거짓말에 곧잘 속아 넘어간다. 물론,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진위 판단이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러나 주의를 조금만 기울이면 판별이 가능하다. 참과 거짓 가르는 일이 대단히 중요해졌다.
다음은 가치판단의 기준이다. 논쟁하다보면 그 기준이 사라진다. 무엇 때문에 논쟁하는지도 모른다. 피아구분도 없다. 상처만 남는다. 자유민주주의 수호가 가치이면 그에 반하는 것과 싸워야 한다. 정의가 최고 가치면 모든 판단의 기준이 정의여야 한다. 불의와 싸워야 한다. 한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자신의 당 대통령이 탄핵되는데 이이제이에 넘어가 동의 한다. 탄핵되자 당이 궤멸수준에 이른다. 탄핵됨으로서 벌어진 상황을 잊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또 다시 자당 대통령을 탄핵한다. 두 번 모두 탄핵 저지선 이상의 의석이 있었다. 소수당인 것은 맞지만 탄핵이나 개헌을 저지하라는 것 또한 국민의 뜻이다. 게다가 탄핵한 것도 모자라 자중지란이다. 공격 상대가 누구인지도 잊는다. 남의 눈에 티끌이 커 보이는 일반 행태와는 정반대다. 남 눈의 들보가 전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 당 지지자 역시 동일하게 따라한다. 침 튀기며 비판하고 나물하는 것이 지지정당 사람이다.
대화에 대해 이야기 하려던 것이 옆길로 샌 감이 있다. 어떤 경우든 멋진 대화를 위해, 먼저 상호 존중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은 경청이다. 더해서 공감과 적절한 맞장구가 필요하다. 올바른 질문과 소통, 긍정적 언어와 태도로 생각을 명확하면서도 부드럽게 표현한다. 격한 말, 침묵, 다른 것과 비교 및 비유, 방어 및 공격적인 말, 감정이 섞인 것, 많은 말은 피해야 한다. 과장되거나 과격한 행동 같은 비언어적 표현까지 관리하면 더욱 좋다. 좋은 대화가 서로의 인생을 바꾼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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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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