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 변호사는 강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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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인칼럼] 변호사는 강사가 아니다

  • 승인 2025-09-14 12:10
  • 신문게재 2025-09-15 18면
  • 박병주 기자박병주 기자
변호사김이지사진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요즘 들어 자주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나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사건 기록을 읽으며 밤을 지새우고, 의뢰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서면을 쓰고 고치는 일은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그 속에서 문득, '변호사'라는 직업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내가 쓴 서면 한 장이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예전의 변호사는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법률 서비스를 받는 일은 드물었고, '변호사를 선임한다'는 말에는 어딘가 절박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변호사의 수는 많아졌고, 인터넷에는 온갖 법률 정보가 넘쳐난다. 의뢰인들도 이제는 단순히 "알아서 잘 해주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왜 이렇게 쓰셨나요?", "이건 다른 주장도 가능한가요?"처럼 적극적으로 판단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해가 된다. 소송은 인생이 걸린 문제이고, 그만큼 불안하고 초조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뢰인은 밤새 판례를 검색해 정리해서 보내오고, 어떤 분은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도표로 만들어 오시기도 한다. 그 모습은 때로 감동스럽지만, 가끔은 혼란스럽기도 하다. 내가 변호사인지, 교수인지, 법률 강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지 불안하고 궁금한 의뢰인들을 위해 소송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절차와 법리를 반복해 안내하면서 '이것이 과연 변호사의 본질적 역할인가'라는 의문이 스친다.

변호사는 법률상 '대리인'이다. 재판에 출석하고, 서면을 제출하고, 의뢰인을 대신해 소송행위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하지만 그 '대리'라는 말에는 분명한 전제가 있다. 모든 결정은 결국 의뢰인의 몫이라는 것이다. 변호사는 대신 싸워줄 수는 있지만,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그래서 진짜 중요한 일은, 의뢰인이 스스로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요즘처럼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는 변호사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법률지식을 가지고 누군가의 법률사무를 처리해주던 사람에서, 복잡한 내용을 정리해 설명해주고 의뢰인의 선택을 돕는 사람으로 변하고 있다. 때로는 감정까지 살펴야 하고, 두려움 속에서 망설이는 마음을 다독여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변호사는 강사가 아니다. 법률 서비스는 교육 서비스가 아니다. 의뢰인에게 소송의 모든 것을 미리 공부하고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의뢰인에게 솟아나는 모든 질문에 끝없이 답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사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는 오히려 좋은 판단, 좋은 선택을 하지 못하게 방해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정보를 골라내고, 불필요한 걱정은 덜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보를 얼마나 아는가'보다 '어떤 정보를 어떻게 건네는가'가 더 중요해진 시대다. 좋은 결정을 할 수 있게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변호사는 법을 다루는 전문가인 동시에 사람을 대하는 업을 한다. 만일 단순히 법률 지식을 제공하는 일이라면, 그 지식은 수십 년 전에 가졌던 높은 가치에서 지금은 AI에게 물어만 봐도 알 수 있는 보급형 지식의 가치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변호사업의 가치는 법적 불안에 놓인 사람을 전문가인 사람이 응대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된다. 단순히 화면 속에 뜨는 글자들이 알려주는 정보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그 어떤 것을 제공하는 것.

그래서 사람을 대하는 소송은 기술이 아니라 인생이다. 그 안에는 감정도 있고 상처도 있다. 그 이야기를 함께 짊어지고 걸어가는 사람. 그것이 바로 변호사가 가져야 할 자격이며, 오늘 내가 다시 정의해보는 '대리인'이라는 이름의 의미다.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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