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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
11월의 아무 날이나 들여다 볼일이다. 우린 삶이란 나뭇잎 무성하게 널려있는 숲길에서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검붉은 낙엽으로 길섶까지 다 덮어져 길이라 부를 만한 것이 사라지기 때문이리라. 그곳에선 길의 경계가 지워지고 방향감각마저 흐려지니 무슨 일이 생길까. 아무렇게나 걷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고 갈피없이 온전한 공간을 누리면서 생각의 산책길을 뚫어낼 수 있다.
지금은 길 잃은 숲속에서 잎을 다 떨구고 빈 가지만으로 마주 서 있는 나무 모양의 징검달 11월을 지나고 있다. 벌 나비처럼 '너'를 찾아 '나'를 잊는 치밀한 계획과 무모한 열망으로 채색된 초록의 봄을 맞이하고, '너와 내'가 손잡고 굶주린 짐승의 부르짖음인 듯 아쉽고 뜨거운 애씀과 과정 자체로 채워지는 여름을 지나다 보니, 다시 잊히지 않는 고통 속의 짧은 부끄러움과 홀로 익은 여린 영금의 가을을 겪어낸다, 그리고선 이제, '나와 네가 마침내 하나?' 되는 깨달음을 얻은 듯 침묵의 겨울이 되어, 또다시 만날 그리움의 묘약을 웅크려 궁리하고 있다.
11월의 일상은 빛바랜 쓸쓸한 숲이다. 그곳에서는 아주 다른 장소에서 서로를 모르고 살던 '일'과 '꿈'이란 마주 선 나무들이 뒤엉켜 삶을 꿰매며 자라고, 올해를 살아낸 일상의 낙엽들은 '일'이란 일상의 부대낌 속에서 벌어지는 위태로움과 '꿈'이 주는 떨림과 놓쳐버린 아픔에 대해서… 그렇게 삶의 '꿈'을 쫓는 '일'의 고단함과 일구어냄이란 '기다림'에 대해서… 더 나아가 일상의 높낮이와 깊이와 너비에 빛깔까지 드러내면서…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떨어진다.
쌀쌀한 아침 바람 속에 간결한 듯 엄격하게 흔들리는 '빈 나무들이 보내는 가을 편지', 낙엽. 그들은 낯설게 서로 닿아 흔들리고 영향을 주고받는 시·공간을 채우는 사유의 그물망이 된다. 그 상황의 결 속에서 일을 이루어내려는 부대낌의 연초록빛 숨결은 시작된다. 거친 숨으로 오르내린 꿈의 맥락 들은 진홍의 처연한 흔적 되어 삶을 어루만진 민낯으로 길바닥에 나뒹군다. 그러다가 다시 꿈이 되려고 발버둥 치다 흙 속에 묻힌다. 내일의 소생을 기다리면서….
이별의 향연을 알려주는 전령사, 낙엽은 일상에서 일을 하다 생겨난 '흠(欠)과 흉(凶)이란 상처의 품어 안음'이란 온기 되어 퍼져 나가고, 깊이가 만만치 않은 못(池)에서 어울림의 물안개 되어 피어오른다, 그렇게 내 탓 이오를 잊고 네 탓이오 만을 알고 있는 무명(無明)한 이들에게 온전한 깨우침의 실천적 자세가 개울물처럼 졸졸 흘러가게 한다, 지금도 열두 폭 붉은 치마 펼친 듯 낙엽들이 어딘가를 떠나오는 일과 누군가를 보내는 일의 미안한 마음을 서툴게 반복하면서 서쪽 하늘의 젖은 별빛 되어 울음 웃고 있다.
이렇게 이음-이어짐의 매개체, 낙엽은 난감한 한 해를 살아낸 나무가 가려운 자기 생을 긁어 털어 내듯,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의 초상이 자기 자리를 지켜 내려는 듯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는 삶의 종착을 암시하는 목소리가 된다. 지워지고 생겨나는 길, 채우려는 마음과 비우려는 마음, 다친 손과 열리는 손 잡음- 이 모든 상처 깊은 일상사는 끝남의 슬픔조차 아름다움으로 환하게 바뀌면서 시간의 지도리에 새겨진다.
좋은 아침이다. 일상의 마당에서 흠은 덮어주고 틈은 채워주는 신발 끈을 다시 동여매고 일터로 나선다. 우리가 내 딛는 한 걸음은 '나 지금 여기'의 문제를 어루만지면서 '나란히 나란히 11자로 보행하는 나무'되어 온 삶을 지킨다. 그 곁엔 농염하게 검붉어 진 소리 없는 아우성이 "당신의 한 해의 애씀과 수고로움"에 고개 숙이곤 청아한 햇살 속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 땀 한 땀을 이겨낸 열망과 덧없음을 덮어주는 꽃 이불이 떨어지는 11월. 아직 모든 것이 끝난 달이 아니다. 귀 기울이고 들어봐요, 낙엽 지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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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