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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과목을 맡으셨던 선생님은 작은 키에 하얗고 예쁜 얼굴이셨다. 또 글씨를 무척이나 잘 쓰셨다. 그 선생님을 많이 좋아해서 13살 어린 나이에 닮고 싶었던 것 같다. 선생님을 좋아하면 그 과목도 공부를 잘하게 된다고 하는데, 예쁜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영어단어·문장을 달달 외워가며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선생님이 아파서 입원하시면 친구들과 함께 병문안도 가고 방학이면 선생님과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작년에 이사 올 때 다 어디로 갔는지 그 편지들이 모두 다 사라져 많이 아쉽다.
나중에 선생님이 다니셨던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대전으로 와 다시 뵈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건강문제로 일찍 퇴직하시고 그림을 그리셨다고 했는데 그때 그리셨던 한 점을 결혼선물로 주신 것이다. 잊지 못할 최고의 선물이다. 선생님과 함께했던 학창시절은 즐거웠고 따뜻했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는 내 기억 속 모습과는 많이 다르게 다가온다. 올해 2월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돌봄교실을 마치고 귀가하는 1학년 학생에게 교사는 "책을 주겠다"며 시청각실로 유인한 뒤 천인공노할 일을 저질렀다. 범행 전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장소도 사전에 선택했을 정도로 계획성이 짙었다. 이 사건으로 온 나라가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해당 교사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이 판결에 대해 최근 항소장을 제출했다. 재판부가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음에도 그보다 낮은 '무기징역'이라는 판결이 나온 것에 불복한 것이다.
아이들이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교사가 학생을 살해하다니…. 과연 지금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어떤 존재일까. 학교는 아이에게 정말로 안전한 장소인가. 선생님은 학생들을 사랑해주고 보호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경계해야할 대상인가. 이 사건은 많은 질문과 불안을 던졌다.
매일 아침 두 아이를 깨워 학교에 보내는 엄마인 나는 세상 어느 곳도 안전하다고 느껴지지 않아 서글프다. 또 한편으론 이 사건으로 인해 교실에서 아이들과 부대끼고 교감하며, 아름다운 추억을 쌓고 있는 많은 선생님들에게도 아픈 상처가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추억할 수 있는 선생님이 있다는 것은 최고의 선물인데 말이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선생님을 꼭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똑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초등생 살해교사'에 대해 모두가 납득할 만한 판결이 내려져야 한다. 합당한 처벌이 없다면 비극은 또 일어날 수 있어서다. 등·하교 알림시스템 등 아동 안전망을 더 촘촘히 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해법이 필요하다. 나아가 교육현장에 있는 교사들의 마음건강을 지키는 제도적인 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 학교가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곳이 되기를 기대한다.
원영미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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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