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용찬 정읍문화유산지킴이 대표 |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실록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순간에 책임을 선택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의 정읍 내장산 이안과 수호의 역사'는 바로 그 선택의 주체가 누구였는 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책이다.
이 책을 편찬한 이용찬 정읍 문화유산 지킴이 대표는 임진왜란 당시 전주 경기 전에 보관되던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이 누구에 의해, 어떤 경로로, 어떻게 내장산으로 옮겨져 지켜졌는지를 오랜 기록 검증과 연구를 통해 다시 묻고자 했다.
그동안 학계의 정설은 1799년 호남절의록과 1829년 이재유고를 중심으로 실록 이안의 공을 관 주도, 특히 경기 전 참봉 오희길에게 돌려왔다.그러나 이 기록들은 전란 이후 수십, 수백 년이 지나 정리된 후대의 문헌이었다.
이용찬 대표가 주목한 것은 임진왜란이 진행 중이던 바로 그 시기에 쓰인 동시대 기록, 정읍(당시 태인)의 선비 안의(1529-1596)와 손홍록(1537-1610)이 남긴 임계기사였다.기록은 있었으나, 역사는 외면했다.
임계기사에는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직후, 전라감사와 주요 관원이 부재한 상황에서 안의와 손홍록이 중심이 되어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을 내장산으로 이안하고 1년 이상 교대로 수직 하며 지켜낸 과정이 날짜별로 상세히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 기록은 일제강점기 일본 학계에 먼저 소개되었을 뿐, 국내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사료적 가치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용찬 대표는 2001년 임계기사 복사본을 처음 접한 이후 호남절의록, 이재유고, 호남지, 완산지,2008~2009년 국역된 경기전의궤와 완산지 등을 하나하나 대조하며 조선왕조실록 내장산 이안의 실체를 퍼즐처럼 맞춰 나갔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기존 정설을 뒤흔드는 연구였기에 의심과 냉대, 때로는 "학위도 없는 사람이 역사를 사기친다"는 비난까지 감내해야 했다.
선비정신의 길, 그러나 누군가는 가야 했다.
이용찬 대표는 이 연구를 개인의 명예나 성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이를 선비정신의 현대적 실천으로 받아들였다. 임진왜란 당시 안의와 손홍록이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고 자비를 들여 실록과 어진을 지켜냈듯, 오늘날 문화유산 지킴이의 길 역시 편한 길이 아닌, 외롭고 지난 한 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신념이 그를 끝까지 버티게 했다.
이 연구는 2011년 전국 향토사 공모전 대상 수상으로 이어졌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검증을 통과했으며, 이후 서울대 규장각 교수진으로부터도 "임계기사가 가장 역사적 진실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인의 헌신을 넘어, 행정의 책임으로 그러나 이용찬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말한다."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은 개인의 사명만으로는 지속 될 수 없다. "조선 왕조실록이 오늘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두 선비의 결단 덕분이었지만, 그 가치를 계승하고 사회적 의미로 확장하는 일은 오늘의 행정이 반드시 책임져야 할 영역이다.
문화유산은 민간의 열정에만 맡겨둘 문제가 아니라, 행정이 관심을 갖고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할 공공의 자산이다. 역사 연구를 행정이 뒷받침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 공공이 책임지며 선양사업을 일회성 행사가 아닌 지속 가능한 정책으로 이어갈 때 비로소 문화유산은 지역의 과거가 아닌 미래의 자산이 된다.
기록에서 실천으로, 그리고 공동의 과제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이용찬 대표는 정읍 문화유산 지킴이로서 '전국 문화유산 지킴이의 날' 제정, 정읍 내장산 기념행사, 안의·손홍록 선양사업과 표준영정 봉안, 흉상 건립 등 연구를 넘어 실천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왔다.그 길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어렵지만, 누군가는 가야 할 길이다. 그리고 이제는 행정이 함께 가야 할 길이다."
조선왕조실록의 정읍 내장산 이안과 수호의 역사는 과거의 기록을 정리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오늘 우리가 문화유산을 어떻게 대하고 누가 책임져야 하며 어떤 자세로 계승해야 하는지를 묻는 기록이다.
안의와 손홍록이 지켜낸 실록처럼 그 정신 역시 흔들림 없이 계승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헌신을 넘어 행정과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선비정신을 오늘의 시대정신으로 되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정읍=전경열 기자 jgy367122@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전경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