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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학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장 |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는 우리의 국가 운영 방식과 행정 시스템은 여전히 중앙집중적 관리와 규제 중심의 과거 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뼈아픈 현실이다. 최근 대전과 충남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행정통합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시급한 것은 통합의 속도나 찬반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통합은 왜 필요한가, 무엇을 바꾸기 위한 선택인가." 통합이 단순히 행정구역의 물리적 크기를 키우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집중과 형식의 반복에 불과하다. 진정한 통합은 외형적 '합병'이 아니라, 기능과 권한을 혁신하는 '시스템의 전환'이어야 한다.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지방은 여전히 충분한 권한과 재정 분권 없이 중앙의 결정에 의존하고 있다.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이라는 절벽 앞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책임은 지방에 있으나 결정권은 중앙에 머무는 구조 속에서 자치의 역동성과 창의적 발전전략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지방은 활력을 잃고 인구는 빠져나가는 반면, 수도권은 과밀과 비효율이라는 과부하에 직면해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과거의 논의 속에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필요가 있다. 2008년부터 시작된 '향부숙'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이 공유한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국가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지역이 부유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형식적 자치가 아닌 실질적 자치가 구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전제 조건으로 지역 스스로를 일으키는 '자강(自强)의 역량'이 강조된다. 강형기 교수가 주창한 '향부론'은 지역을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니라, 스스로 기획하고 책임지는 주체로 바라본다. 중앙의 지시를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세계의 도시들과 직접 경쟁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지방정부를 만드는 것이 곧 국가 경쟁력의 출발점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다양성과 분권이 핵심 가치가 되는 AI 시대의 도시 경쟁력 논의와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동양 고전의 통치 철학과도 연결된다. 공자는 '논어'에서 정치의 요체를 강제적 통제보다는 각자가 맡은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데서 찾았다. 군자가 바르게 서면 백성이 스스로 따른다는 인식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자율과 책임의 거버넌스, 실질적 자치의 철학적 배경으로 충분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문명의 대전환을 몰고 온 AI 시대에 지방을 낡은 제도와 행정구역이라는 틀에 가두는 전략으로는 더 이상 세계와 경쟁할 수 없다. 이제는 지방에 실질적인 권한을 이양하고, 자율적 재정 기반과 자치 역량을 강화하는 '창조적 혁신과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 아울러 지역의 고유한 특성과 정체성을 살리기 위한 전략과 시대 변화에 부합하는 지역 공간의 재구조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한 가지는, 지역 주민들의 의지와 판단이 반영되는 충분한 합의 절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중앙과 지방은 수직적 관계를 넘어 동반자로서 손을 맞잡고, 세계를 무대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통합 논의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서 다뤄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새해를 다시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엄숙히 물어야 한다. "무엇을 합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권한과 재정, 그리고 창의적 결정권이 이전되지 않는 통합은 이름만 바꾼 형식이자 허울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국가와 지방 간 제로섬 게임을 넘어, 물리적 결합을 초월한 창조적 시스템 전환이다.
이은학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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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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