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역사 속 권력과 민중의 상상력 '왕과 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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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역사 속 권력과 민중의 상상력 '왕과 사는 남자'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 승인 2026-03-05 16:46
  • 신문게재 2026-03-06 9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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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역사적 사실은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단명한 부왕을 이은 어린 임금은 숙부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유배되었다가 죽임을 당합니다. 그를 옹호하거나 복권을 꾀한 자들의 운명 역시 처참했습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은 그의 죽음을 목숨 걸고 수습한 이의 기록이 또한 남았습니다. 영화는 이 두 역사적 사실 사이의 공백을 상상력으로 메웁니다.

영화적 상상력은 현재의 것입니다. 권력을 힘입어 나은 삶을 누려보고자 하는 것은 고위층이나 산골 민초들이나 매한가지입니다. 고위층들은 역사 속 인물들이고, 그들에 대해서 영화는 비장하고 속도감 있게 다룹니다. 반면 민초들의 욕망과 인정 넘치는 삶은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그려냅니다. 그러므로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상상력이 주되게 작용합니다.

문제적 인물 두 사람 노산군 이홍위와 영월 땅 촌장 엄흥도가 중요합니다. 상상력은 단연코 엄흥도 쪽이 우세합니다. 그의 욕망과 인간미 사이의 갈등은 영화의 핵을 이룹니다.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김수영의 시 '풀'에서처럼 그는 흔들리지만 마침내 옳음을 선택합니다. 그의 옳음과 인간미가 이홍위를 살리고, 제대로 죽게 합니다. 이홍위는 백성들을 위한 왕으로 살고자 다시 일어섰고, 비열한 권력자의 손에 죽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 상상의 서사 안에는 민중을 위한 권력과 올바름을 욕망하는 현재적 감수성이 작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원로 정치학자의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10)가 생각납니다. 중앙과 지방의 권력을 선출하는 제도적 민주화는 이루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그 권력이 진정한 민의의 대리자로 작동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아끼는 자들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한 노산군이 비극적으로 죽어갈 때 온몸으로 아파하는 엄흥도와 산골 민초들의 마음은 단지 영화 속 그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천만 가까운 관객이 반응한 연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장항준 감독의 세련된 연출과 연기자들의 열연이 영화를 돋보이게 합니다. 모 평론가와의 대담에서 그는 엄흥도가 초반부 노루 잡다가 호랑이 만나는 대목을 웃음에 대한 강박이라 했지만 실은 작은 욕망을 좇다가 권력의 비극을 목도하게 되는 작품 전체의 복선이라 할 만합니다. 엄흥도 역의 유해진은 실로 인생 연기라 할 만큼 빼어납니다. 한명회 역의 유지태나 이홍위 역의 박지훈을 비롯 전미도, 박지환, 안재홍 등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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