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AI '초가속' 시대, 느림의 미학을 품는 '보편적 이용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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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AI '초가속' 시대, 느림의 미학을 품는 '보편적 이용권'

  • 승인 2026-06-10 15:19
  • 신문게재 2026-06-11 18면
  • 우창희 기자우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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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희 부국장
미디어 현장의 최전선에서 디지털 변화를 꾸준히 지켜본 최근 3년은 과거 20년의 변화를 압도할 만큼 매섭고 폭발적이다. 그야말로 눈을 뜨면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는 '초가속' 시대다. 첨단 기술은 우리에게 전례 없는 편리함을 약속하고, 국가는 'AI 강국'이라는 기치를 내걸며 미래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하지만 그 찬란한 질주의 이면에는 기술의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지 못해 거대한 그림자 속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5년간(2021년~2026년 현재) 국내 주요 종합일간지에서 '디지털 소외'(또는 '디지털 격차')를 직접적으로 다룬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빅카인즈) 기준으로 연간 약 1500건 안팎, 5년 누적으로는 7000건 이상 게재된 것으로 추산된다. '디지털 소외'를 다루는 심층 기사 빈도는 5년간 약 3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분석(Google Gemini)됐다. 초기에는 식당이나 카페에 도입된 '키오스크(무인단말기)' 앞에서 진땀을 빼는 어르신들의 문제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 양상은 훨씬 깊고 치명적으로 변모했음을 시사한다. 행정, 금융, 의료, 교통 등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사회 인프라 전체가 AI 기반의 비대면 서비스로 급격히 전환되면서, 기술 소외는 이제 단순한 '불편'을 넘어 생존의 위협이자 기본권의 박탈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실물 카드를 스마트폰에 집어넣었던 '디지털 페이' 시대를 넘어, 얼굴 인식만으로 모든 결제가 이루어지는 '페이스 페이(Face Pay)'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생체 정보가 곧 신분증이자 지갑이 되는 놀라운 세계다. 하지만 모두가 이 첨단의 물결에 열광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효율성과 속도만이 절대적인 미덕으로 추앙받는 사회 속에서도,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디지털 기기의 알림음에서 벗어나 조용한 사색을 즐기고 싶은 이들,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보다 사람과 눈을 맞추고 온기를 나누는 아날로그적 삶의 방식을, 즉 '슬로우 라이프(Slow Life)'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현 시대의 시스템은 너무나 가혹하다. 단지 최신 기술에 열광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햄버거 하나를 제값 주고 사 먹지 못하거나, 은행 창구에서 더 높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이른바 '디지털 페널티'를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물론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 국내 전체 시스템을 AI 중심으로 개혁하고 진정한 AI 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은 국가적 명운이 걸린 중대한 과제다. 반도체, 플랫폼, 데이터 생태계를 아우르는 전면적인 시스템 혁신은 멈출 수 없다. 그러나 국가 시스템의 개혁과 함께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최우선 과제가 바로 소외계층을 위한 '보편적 이용권'의 법제화와 실천이다. AI 보편적 이용권이란,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술의 장벽 없이 필수적인 사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하는 권리를 뜻한다.

우리가 이 문제를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는 명백하다. 한국은 지금 일본의 인구 통계학적 사회 현상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며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의 늪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5년, 10년 뒤의 대한민국 거리를 상상해 보라. 노년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정해진 미래가 이미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는 곧 첨단 기술에 취약한 디지털 소외계층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임을 의미한다.

AI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인류의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그 혁신의 칼날이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곳을 찌르지 않도록 보호하는 튼튼한 방패가 필요하다. 다가올 거대한 노년의 미래, 그리고 고요한 느림을 선택할 당연한 자유를 위해 이제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가 인공지능에 대한 '보편적 이용권' 확립에 사활을 걸어야 할 때다. 기술의 진정한 위대함은 그 기술이 얼마나 빠르고 똑똑한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을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창희 뉴스디지털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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