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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포스터. |
영화는 조현병의 원인을 밝히거나, 조현병에 대해 알리려는 목적이 아니라고 서두에 밝힙니다. 영화는 오히려 환자인 딸이자 누나인 마사코가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가족의 실패에 대해 말합니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라는 과거형 질문은 오랜 세월 고집스러웠고, 폐쇄적이었으며,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각자의 입장에 매여 온전히 돌보지 못한 자신들에 대한 반성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다가 마사코는 50살의 나이에 3개월 간 병원에 입원해 약물 치료를 받은 뒤 놀랍게 호전됩니다. 가벼운 장보기도 하고, 가족들과 대화도 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뇌경색으로 불편해진 90세 노인 아버지를 돌보기도 합니다. 지난 25년 간의 세월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가족 중 누구도 비난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관객인 우리는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아프게 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증세를 보이게 했는지 짐작할 뿐입니다.
이 영화에 대하여 어떤 평론가는 감독에게 왜 카메라 뒤에만 숨어 어머니, 아버지, 누나를 방치했는지 묻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랬다면 영화로서의 이 작품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실상 이 영화가 보여주듯 누구에게도 온전히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여덟 살이나 어린 동생이 성인이 되기까지 누나는 오래도록 앓았고, 부모님들은 아직도 현역 의사였으니까요. 그들의 주도적인 태도, 전문가적 고집을 쉬이 꺾기 어려웠을 겁니다.
사적 다큐멘터리인 이 영화가 넓은 공감과 인식의 지평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시간을 직면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직함과 용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실한 기록과 공유를 통해 관객들은 자신들을 성찰할 기회를 얻습니다. 얼마나 무지할 수 있고, 고집스러울 수 있는가. 타인의 시선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 특유의 폐쇄적인 태도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시간일 것입니다. 그 무지와 고집, 폐쇄성을 견디며 오래도록 촬영한 것은 피사체인 누나에 대한 애정의 발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본질을 봅니다. 피사체에 대한 정직한 애정. 비록 카메라 앞으로 나가서 문제를 직접 처치하지 못했다 해도 영화는 귀한 가치와 의미를 획득하고 있습니다.
영화 말미에 이르러 감독이자 마사코의 동생인 토모아키가 카메라 앞으로 나옵니다. 폐암으로 죽은 누나의 장례를 마치고 96세 노인 아버지와 마주 앉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 누나의 삶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영화의 제목처럼 어떻게 해야 했을까 하고 말입니다. 뚜렷한 답은 없지만 그래도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나누는 것이 큰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보게 합니다. 세상사 누구도 완전한 답을 갖지 못하는 문제가 당연히 존재합니다. 어쩌면 관계된 모든 이들의 의견과 지혜를 모아도 온전한 답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생각과 고집에 갇혀 세월만 보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한 가정만의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고, 나아가 세계 전체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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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화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