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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민 미술평론가 |
거위는 경계심이 강하고 낯선 기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울음소리는 크고 날카로워 작은 움직임에도 쉽게 주변에 알린다. 이러한 생태적 특징은 조선 사회에서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거위가 귀신을 놀라게 하고 도둑과 뱀을 쫓는다는 기록이 전한다. 실제로 거위가 가진 예민한 감각과 큰 울음소리는 당시 사람들에게 집을 지키는 존재로 인식되는 배경이 되었다.
조선의 일반 가옥은 오늘날처럼 높은 담과 철문으로 외부와 완전히 분리된 공간이 아니었다. 마당과 대문을 중심으로 생활 공간이 이어졌고, 외부의 움직임을 빠르게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낯선 기척에 반응하는 거위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감시자의 역할을 했다.
거위의 인식은 생활 속 경험을 넘어 제도와 예술에서도 확인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관복의 흉배 문양이다. 1505년(연산군 11년), 조선 조정은 관복에 흉배를 붙이는 제도를 시행하고 품계에 따라 동물 문양을 사용하도록 했다. 이때 거위 문양 역시 관료의 품계를 나타내는 상징 가운데 하나로 활용되었다. 흉배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관료의 신분과 역할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였다. 거위가 그 문양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조선 사회에서 거위가 단순한 생활 동물을 넘어 일정한 상징성을 가진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거위는 국가 의례에서도 등장한다. 종묘 제향에 올리는 제물 가운데 거위가 포함되었다는 기록은, 거위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국가적 의례 속에서도 다루어진 동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조선 사람들은 동물을 단순히 이용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생활 속 경험과 자연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동물에게 다양한 의미를 부여했다.
기러기와 거위는 문헌과 도상에서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아 혼동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선 기록에서 '기러기(雁)'와 '거위(鵝)'가 구별되어 나타난다는 점은 당시 사람들이 두 동물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조선 후기 풍속화에서도 거위는 사람들의 일상 가까이에 자리한다. 김홍도의 『행려풍속도 8곡병』 중 <가두매점> 장면은 시장의 활기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화면 속 사람들은 장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물건을 사고판다. 그 주변의 물가 풍경과 거위의 모습은 당시 사람들이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채 살아갔음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 풍속화에서 동물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사람들과 함께 공간을 구성하는 생활의 일부였다. 시장 한편의 물가에 자리한 거위는 특별한 주인공처럼 등장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당시 사람들이 익숙하게 마주했던 일상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림 속 거위는 조선 사람들이 동물과 함께 살아가던 방식을 담아낸 작은 기록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거위는 점차 도시 일상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오늘날에는 식용이나 관상용 동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조선시대 사람들이 거위에게 부여했던 의미는 문헌과 그림 속에 남아 있다.
오늘날 경비 시스템과 반려동물이 집을 지키는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면, 조선 사람들은 생활 속 동물에게서 보호와 경계의 의미를 찾았다. 거위의 울음은 낯선 존재를 알리는 신호였고, 사람들에게 집을 지키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소리였다. 거위는 그렇게 조선의 문 앞에서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하고 있었다.
최정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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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화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