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민의 입을 막으면 민주주의가 질식한다―침묵을 강요받는 사회에 보내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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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민의 입을 막으면 민주주의가 질식한다―침묵을 강요받는 사회에 보내는 경고

이인곤/전 호서대학교 법·경찰행정학과 교수·법학박사

  • 승인 2026-09-09 20:04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호서대
이인곤/전 호서대학교 법·경찰행정학과 교수·법학박사
민주주의가 무너질 때 언제나 총성이 먼저 울리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말을 꺼내기 전에 주위를 살피고, 옳다고 믿는 것을 말하기 전에 처벌과 불이익부터 떠올리게 만들면 된다. 어제까지 자유롭게 나누던 말이 오늘은 수사의 빌미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권력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냈다가 삶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이 일상에 스며들 때 민주주의는 소리 없이 질식하기 시작한다.

말할 자유는 목소리 큰 사람의 특권이 아니다. 시장에서 하루를 버티는 상인, 일자리를 걱정하는 청년, 자녀의 앞날을 염려하는 부모, 평생 나라를 위해 일한 노인이 "그것은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국민의 권리다. 헌법이 언론과 출판, 학문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 까닭도 권력이 듣기 좋은 말만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권력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까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남게 하려는 데 그 뜻이 있다.

표현의 자유에도 책임은 따른다. 거짓으로 타인의 명예를 짓밟거나 폭력과 범죄를 부추기는 행위까지 자유라는 이름으로 감쌀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의 말을 법으로 제한하려면 무엇이 금지되는지 누구나 미리 알 수 있어야 하며, 그 제한은 꼭 필요한 범위에 그쳐야 한다. 의미가 모호한 말로 처벌의 문을 넓히고, 불편한 비판까지 형벌의 그물로 끌어들이는 순간 법은 약자를 지키는 울타리가 아니라 국민을 침묵시키는 벽으로 변한다.

더 무서운 것은 실제 처벌보다 그 이전에 찾아오는 자기검열이다. "혹시 나도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공포가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 사람들은 스스로 입을 닫는다. 한 사람이 말을 삼키면 하나의 진실이 사라지고, 열 사람이 침묵하면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사라진다. 온 국민이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권력은 자신의 잘못을 비춰 볼 마지막 거울마저 잃는다. 그 사회는 겉으로 조용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평온이 아니라 질문이 묻히고 양심이 눌린 무거운 침묵일 뿐이다.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가졌다는 사실도 국민의 입을 닫게 할 권한까지 주지는 않는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의사결정 방식이지 국민의 기본권을 함부로 침해할 수 있는 허가증이 아니다. 오늘 상대편의 말을 막기 위해 만든 힘은 내일 나의 말을 막는 힘이 되어 돌아온다. 오늘 박수를 받으며 세운 침묵의 벽 앞에서 내일은 그 박수를 보낸 사람도 입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 권력이 강할수록 더욱 절제해야 하는 이유다. 법을 만드는 사람은 그 법이 언젠가 자신과 자신의 자녀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름 없는 수많은 시민이 말할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린 끝에 얻어낸 것이다. 그 희생 위에 세운 나라에서 국민이 말 한마디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음 세대의 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아이들에게 진실보다 눈치를 먼저 가르치는 나라, 자신의 양심보다 권력의 표정을 먼저 읽게 하는 나라를 물려줄 수는 없다.

권력에 요구한다. 국민의 질문을 적대행위로 여기지 말라. 비판을 불순함으로 몰지 말고, 듣기 불편한 목소리일수록 더 오래 들으라. 국민에게도 호소한다. 내가 찬성하는 말에만 자유를 허락하지 말자. 나와 다른 생각이 안전해야 나의 생각도 안전하다. 상대의 입을 막는 순간 나의 자유도 함께 무너지기 시작한다.

역사는 권력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침묵시켰는지가 아니라, 반대의 목소리 앞에서 얼마나 절제했는지를 기록한다. 민주주의는 거창한 구호 속에 사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국민 한 사람이 두려움 없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바로 그 순간에 살아 있다. 그 한마디마저 삼키게 하는 나라에서 먼저 질식하는 것은 국민의 목소리지만, 끝내 숨을 잃는 것은 민주주의 그 자체다.

이인곤/전 호서대학교 법·경찰행정학과 교수·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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