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토크]대나무숲의 임금님 귀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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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토크]대나무숲의 임금님 귀 현상

  • 승인 2013-02-15 20:07
  • 신문게재 2013-02-18 21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문제는 팩트가 틀려도 이미 수십 개의 매체에서 다 써버리면 그건 이미 사실과는 관계없이 기사가 돼버린다는 거죠. 틀린 걸 알면서도 가끔 받아야 하는데. 그땐 진짜 미친다는.”
― '신문사 옆 대나무숲'


벌거벗은 임금님이 안데르센 동화, 마이더스 임금님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온다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삼국유사에 나온다. 신라 경문왕의 큰 귀는 왕관을 만드는 복두장이만이 아는 비밀이었는데, 이 사실을 가슴에 묻고 냉가슴을 앓던 복두장이가 도림사 대나무숲에 대고 외쳤다는 이야기다. 옛 설화 속 대나무숲이 부활하고 있다.

그런데 그 무대가 좀 이색적이다. 저승사자와 처녀귀신이 출몰하는 납량축제 무대인 울산 태화강변 대나무숲도 아니다. 거제 맹종죽 테마파크나 4대강 사업에 발랑 속살 들춰진 담양 대나무숲과도 다르다. 김홍도의 부채 그림 '죽리탄금(竹裏彈琴)' 속 그윽한 대나무숲 탄금 독주 퍼포먼스는 더더욱 아니다.



바로 사이버상에 다투어 둥지를 튼 '~옆 대나무숲' 트위터. 반음반양의 대숲 그늘에 수백을 헤아리는 트위터가 비온 뒤 죽순처럼 생겨난다. 구덩이라도 파고 발설하고자 할 때 털어놓아도 얼굴과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다. 그 맛에 수다, 흉보기, 따돌림, 곱씹기, 비정한 뒷담화가 소통되는 공용 계정이다.

어찌 보니 건축가 훈데르트바서의 '창문권(窓門權)' 같은 안전지대다. 창문에서 팔을 뻗쳐 닿는 거리만큼은 내 것일 권리, 대숲에서만은 그럴 권리가 주어진다. 양철냄비 같거나, 잘 찌그러지고 펴지는 은그릇 같거나, 만져보지 않고는 뜨거움을 모를 놋쇠그릇 같은 사람, 속이 얼른 안 데워지는 합성냄비 같은 사람, 그 누구든 방문할 자유가 있다. 심지어 대숲 고사의 임금님인 뭔가 켕기는 사람도 누가 내 욕 안 하나 싶어 찾는다.

방문객들은 저마다 대나무숲에서 위약(僞藥) 효과를 구한다. 진짜약이라 믿는 한 효능감은 얕볼 수준 아니다. 출판사 옆 대나무숲은 물론 대형마트 옆, 이공계 옆, 부동산 옆, 신문사 옆, 방송사 옆, 그리고 술집 알바생 옆, 청춘 옆, 백수 옆 등 아픈 대나무숲도 있다. 약으로 치면 전문의약품이기보다 처방전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에 가깝다. “설날 출근하는 당신 딸은 불쌍하고 전날부터 음식 준비하느라 바쁜 며느리는 당연한 거고?!” 시월드(=시댁) 옆 대나무숲 하소연도 들린다. 시어머니의 '고(姑)는 이미 옛날[古]의 여자[女]라며 흉도 잡는다. 사연의 상당수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부족에 기인한다. 웰빙이 지고 힐링(치유)이 뜨는 이유를 알겠다.

옛날 영화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은 사랑은 미안하다 하지 않는 거라 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향긋한 말, 따뜻한 가슴이 그립다. 대숲에는 사철 스마트하고 청랑한 바람만 일렁이지는 않는다. 착시나 착음의 역기능이 있다. 그럼에도 진짜 힘든 사람, 목청 돋우면 비난이 따라붙는 마이너, 찍히면 못 벗어나는 사회적 육두품에게는 부당함과 분함, 억울함을 품앗이로 들어주는 살아 있는 연대가 될 수 있다.

이 숲의 장래를 지금 예단하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입방정, 오럴 해저드(언어 해이) 금지의 묵계만 지켜지면 경박한 B급 정서일망정 얼마간 마음테라피 기능은 할 것으로 본다. 설화 속 임금님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소리가 싫어 궁궐 옆 대숲을 다 베고 산수유를 심는다. 업데이트에 실패한 경문왕의 귀는 복스러운 귀는 아니었다. 그 점에서는 '더티'하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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