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공주, 역사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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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공주, 역사의 발자취

스러진 혁명을 보듬고 지금 여기, 강물이 흐른다

  • 승인 2015-12-24 13:52
  • 신문게재 2015-12-25 9면
  • 우난순 교열팀장우난순 교열팀장


동학혁명군이 스러졌던 1894년 우금티고개
무령왕릉·송산리 고분은 경외감으로 빛나지만
위령탑은 쓸쓸히 서 있어
승리한 자의 기록과 잊혀진 구국의 외침
지금을 있게 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4,50년 전만 해도 땅을 파면 탄환이 나오고 그랬어. 지금은 안 나와.” 공주 우금티고개로 향하던 중 금학도장골에서 만난 마을 어르신이 해준 말이다. 올들어 가장 추운 강추위를 가르며 찾아간 '동학혁명군위령탑'은 초라했다. 헐벗은 나무들 사이로 전날 내린 눈을 밟으며 조심스레 위령탑을 둘러봤다. 돌에 새겨진 글귀를 보니 1973년에 세워졌다. 그런데 짓이겨진 글자가 있어 자세히 보니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5.16혁명이래의 신생 조국이 새삼 동학혁명의 순국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면서….' 자신의 군사쿠데타를 성스러운 동학농민혁명에 비유하다니. 야트막한 우금티고개는 언제 생겼는지 터널이 뚫려 공주와 부여를 오가는 차소리가 쉴새없이 들린다. 이 고개를 학창시절 매일 버스를 타고 지나다녔지만 그때는 몰랐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이 일본군·관군과 맞서 싸우다 패한 통한의 공주전투의 역사적 전적지라는 걸.

1894년 꼭 이맘때였다. '보국안민 척양척왜'를 외치며 서울로 진군하던 동학농민군은 우금티에서 처절하게 쓰러졌다. 그날의 고갯마루에서 지금 나는 서성이고 있다. 두겹으로 낀 장갑과 입을 가린 마스크를 벗자 에일듯한 찬바람에 금세 손이 얼어붙는 듯하고 콧물이 흘러내렸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가 동학군의 울부짖음 같아 모골이 송연해진다. 한자씩 쌓인 '삼남에 내리는 눈' 속에서 동학군은 행군했고 해어진 짚신을 신고 눈구덩을 누볐다. 한손으로는 주먹밥을 입에 쑤셔 넣고 다른 손으로는 조총이나 죽창을 들고 내달렸다. 그러나 신무기로 중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이 버티고 있는 우금고개에서 동학군은 추풍낙엽이었다. 동학군의 시체가 산을 가득 메웠고 개울에는 피가 가득 고였다. 오죽하면 논배미속의 송장이 하도 많아 지금도 그 논을 두고 '송장배미'라 부를까.

해가 머리 꼭대기에서 비추고 있었다. 눈이 묻은 운동화를 탈탈 털고 공주여고 쪽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우금티고개 바로 아래에 있는 공주여고는 내가 30년전에 졸업한 학교다. 상전벽해라더니, 인근지역이 몰라보게 변했다. 학교앞 뽕밭도 없어졌고 대학생이던 언니와 자취하던 집도 온데간데 없어졌다. 공주교대도 몰라보게 커졌고 그 옆엔 시청이 떡하니 서 있는게 아닌가.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가고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교정의 늙은 벚나무와 은행나무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데. 고 3때 연정을 품었던 국어선생님 시간이 되면 선생님을 똑바로 볼 수 없어 고통스런 환희에 젖어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배곤 했던 게 생각난다. 그때의 순수함이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을까.

제민천을 따라 공주시내를 가로질러 무령왕릉으로 걸어갈 참이다. 옛날엔 지저분한 개천이었는데 말끔하게 조성된 제민천 산책로를 걸으며 옛 추억에 잠겼다. 지금은 없어진 중동에 있었던 분식집 '풍미당'은 만남의 장소였다. 음식 종류가 없는게 없는 싸고 맛있는 집으로 유명했다. 여고 졸업후 10년만에 다시 찾은 공주에서 친구와 목욕을 하고 1차로 떡볶이, 쫄면, 칼국수를 먹었던가? 그리고 2차로 왕만두 두 개를 시키니까 주방장의 눈이 왕방울만해져 우리는 황당해서 왜그러냐고 물었다. 계산을 하고 나가는 우리에게 90도 각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던 주방장에게 묻고 싶다. '우리가 그렇게 많이 먹었나요?'

공주와 인연이 깊은데도 여인의 젖무덤같이 탐스런 송산리 고분군은 처음 와보는 곳이다. 1971년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무령왕릉은 영구적인 보존을 위해 내부관람이 금지돼 아쉬움이 컸다. 무령왕릉모형전시관에서 만난 일본여자가 인상적이었다. 짙은 눈썹에 화장기 없는 말간 얼굴로 수첩에 열심히 메모하며 왔다갔다 하길래 직원인줄 알았다. 궁금한 게 있어 말을 걸었는데 일본인 역사학도였다. 한국에 온지 8년 됐다는데 우리말을 아주 잘했다. 하루동안 공주의 역사적 발자취를 밟으면서 느닷없는 일본인 역사학도와의 조우는 당혹스러웠다. 동학혁명 등 과거에서 현재까지 역사적으로 우리는 일본과의 질긴 악연이 있잖나.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 했다. 권력자의 역사는 유구하고 실패한 자의 역사는 잊혀지고 있었다. 박물관에 고이 모셔진 무령왕릉비의 새끼 손톱만한 사랑니 앞에서 관람객은 경외감을 갖게 된다. 갑오년 동짓달 곰나루를 건너지 못한 전봉준은 결국 다리가 부러진 채 들것에 실려 저 금강물을 건너간 사실을 후세 사람들은 알기나 할까. 공산성에서 석양에 물든 봉황산을 바라보며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푸른 금강이 감싸안은 백제의 고도 웅진에서, 동학혁명군의 구국을 위한 외침에서, 그리고 그것들을 자양분 삼아 내 존재의 근원을 다져줬던 바로 여기, 공주가 아닐까.

▲가는길=대전에서 승용차로 30분 걸리고 버스로 갈 경우 구 터미널 가는 걸 타야 수월하다.

▲먹거리=금강변 공산성 앞 식당가엔 맛집이 많다. 유명한 이학식당도 있고 맛있는 육회 비빔밥집도 있다.

글·사진=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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