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태양을 움켜쥔 포항 영일만과 호미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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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태양을 움켜쥔 포항 영일만과 호미곶

일출 명소를 찾아온 이들이 묵은 해 보내며 새해 맞는 곳 일제 잔재를 지웠던 구룡포는 다시 그 흔적과 공존

  • 승인 2016-01-06 19:53
  • 신문게재 2016-01-08 9면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주말여행] 포항 영일만과 호미곶

▲ 포항 호미곶 상생의 손
▲ 포항 호미곶 상생의 손
여기만 아니면 어디든지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대로 집에 있다간 묵은해를 그대로 안고 이불 속을 영원히 뒹굴 것만 같았다. 새해 한달 전부터 인터넷에서는 해돋이 명소가 소개되고 있었다. 바다에 떠있는 손, 그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이 보이는 곳. 아마도 일출 사진으로는 정동진 다음쯤 유명한 사진이 된 곳이 있다. 태양을 움켜쥔 호미곶의 고장. 우리나라 육지 중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는 포항이다.

대한민국 동남쪽 끄트머리라고 생각하면 가지 못할 것 같이 멀게 느껴지지만 포항은 어릴 적부터 눈에 익은 곳이다.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일제가 심어놓은 대로 토끼 꼬리라고 배우고 고등학교 지리시간에는 호랑이 꼬리라고 배웠던 툭 튀어나온 곳이 호미곶이고, 꼬리를 만나기 전 움푹 들어간 곳이 영일만이다. 동해안 지도에서 제일 눈에 띄는 곳이 포항이었던 거다.

바다를 본다는 육지촌놈의 기대를 실어준 고속버스에서 내려 노래 한 곡 듣는 시간만큼 걸으니 죽도시장이 나왔다. 항구도시답게 시장엔 고기보다 수산물 파는 곳이 가득했다. 가판에 누운 건 올해 한 살 더 먹지 못하고 잡혀 온 생선들이다. 쉽게 죽기로 유명한 개복치도 있었다. 반 토막 낸 몸뚱아리가 사무실 책상만 했는데 사람들은 크기에 놀라 감탄하고 주인 아저씨의 얼굴은 뿌듯함으로 번들거렸다. 운 좋은 날에는 시장 입구에서 그 큰 놈을 해체하는 모습도 볼 수 있댄다.

▲ 영일대 누각
▲ 영일대 누각
시내버스를 타고 영일대 해수욕장을 찾았다. '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수평선까지 달려나가는/돛을 높이 올리자 거친 바다를/달려라 영일만 친구야.' 1979년 가수 최백호가 '영일만 친구'라는 곡으로 노래한 곳이다. 파도를 타기엔 약한 바람이 불고 할 일 없는 서핑보드가 몸을 뒤집고 누웠다. 겨울바다는 놀러온 사람보다 보러온 사람과 더 친했고 햇살은 펄떡이는 열기대신 걷고 싶게 하는 따뜻함으로 내려왔다. 해를 맞이한다는 뜻의 영일대 누각에 오를 무렵 해가 지기 시작했다. 3년 전만해도 북부해수욕장이었던 이 곳은 누각을 세우면서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올해 네 살이 된 누각은 이름 덕인지 이 바다의 주인공이 됐다. 가족들과 연인들은 누각 위에서 다정하게 사진을 찍고, 해변에선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누각을 담느라 분주했다. 새해소원을 몸에 적은 채 나부끼는 종이 위로 노을이 내려앉았다. 누각이 루미나리에처럼 빛을 발했고 그 너머로 알록달록한 포스코 야경이 보였다. 거칠고 단단한 제철소가 멀리서는 마냥 예쁘기만 하다니, 건너가지 못 할 유토피아를 보는 것 같았다.

▲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의 송덕비
▲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의 송덕비
영일만 아래를 빙 돌아 구룡포에 도착했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 이 곳은 근대문화역사거리와 과메기, 대게가 유명하다. 근대문화역사거리는 기모노를 입고 일본 다도를 체험하는 찻집과 옛날 과자를 파는 추억상회, 일본 가옥들이 모여 있는데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도 여기서 촬영했다. 일제시대에 일인들이 모여들며 여관, 병원, 음식점이 즐비했던 곳. 언덕 위로 오르면 아홉 마리 용 조각 작품과 일본인 도가와 야스브로 송덕비가 함께 있는데, 송덕비는 시멘트가 덕지덕지 발라져 아무것도 알아 볼 수 없다. 구룡포 방파제 축조와 도로개설에 기여했다며 일인들이 세운 비를, 패전 후 구룡포 주민들이 메워버렸기 때문이다. 뒤편에 있는 순국선열을 기리는 충혼탑도 1960년엔 돈이 부족해 일본인이 만든 구조물 위에 설치했다가 2007년에 국가보훈처 지원으로 새로 만든 것이다. 일본풍의 관광지인줄로만 알려진 거리에는 일제를 지웠던 과거와 그를 기록한 현재가 공존하고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은 상생의 손이 장식해 줬다. 보지 않고 가면 포항에 안 온 것 같을 만큼 지역대표 이미지가 된 손은 2000년에 한 개는 바다에, 또 다른 한 개는 육지에 세워 서로 마주보게 만들어졌다. 이왕이면 손가락 사이로 뜨는 해를 담고 싶고 더 바란다면 손가락 마다 갈매기가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을 찍고 싶어지는 곳. 그 희망을 품고 올해도 이곳에서 31만명이 해를 맞았고, 여행은 해안도로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노을에 감탄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매일 아무렇지 않게 맞이했던 새 해가, 새해라는 단어 하나에 뜨겁게 솟구쳤던 날. 욕심인지 희망인지 알 수 없는 다짐들로 1월이 달리고 있고, 지금 여기여도 좋은 새 해가 오늘도 떠올랐다.

▲가는길=작년 4월 서울에서 포항까지 가는 KTX가 개통해 대전에서 1시간 반이면 갈 수 있다. 버스로는 3시간 정도 소요된다.

▲ 물회
▲ 물회
▲먹거리=꽁치로 만든 과메기가 지금 제철이다. 대게는 2월에 살이 꽉 찬다는데 주문해서 포장해 가는 고객도 많다. 참가자미가 주재료인 물회<사진>는 새콤달콤 감칠맛이 일품이다.

글·사진=박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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