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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노란 손수건 이야기의 빙고처럼 여러 날 마음이 들떴다. 새해 들어 더욱 그랬다.
캔버스에 물감이 번지듯 어떤 약속 하나가 일상의 말과 글과 행동을 하나씩 들춰내 돌아보게 만들었다. 약속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오래된 약속이었다. 정해진 날, 정한 시간에 대학 정문 앞에 서 있기로 한 약속이었다.
새벽부터 흰 눈이 가득 내렸다. 차량이 자기 속도를 내지 못하고 기어갔다. 시간에 쫓기던 성급한 차들끼리 부딪혀 다른 사람의 시간까지 지체시키는 일들이 시내 곳곳에서 벌어졌다.
사람이 오고가기 좋은 날씨가 아니었다. 기온도 뚝 떨어졌다.
전날 밤, 형제인 듯 지내 온 멀리 사는 동생의 어머니가 작고했다. 한달음에 가서 빈소를 지켜야 할 일이었다. 양해를 구하고 하루를 대전에 더 머물렀다.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십년 전 이맘 때 수업을 들었던 여남은 학생들과 저녁을 먹었다. 전공학생이 반, 복수전공을 하는 다른 학과 학생이 고루 섞였다.
영화를 제작하겠다, 사진을 찍겠다, 소설을 쓰겠다, 유학을 가겠다, 광고를 하겠다, 카피라이터가 되겠다, 기자가 되겠다, 방송작가가 되겠다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구체적으로 뭐가 되겠다는 말 대신 열심히 살겠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다가 누군가 "우리 열심히 살다가 십 년 후 날을 잡아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약속을 걸었다. 2018년 1월 8일 18시 교문 앞으로 정했다.
그 사이 우리는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고 국회의원 선거를 세 번 치렀다. 금융위기가 시장을 쓸었다. 영화와 사진과 광고와 방송과 신문이 경영상 이유로 새로 사람을 들이지 않으려 한 숨 막히는 시기였다.
청년들은 살아남았을까,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살아 왔을까, 일터에 발을 들여놓기나 했을까, 저녁 여섯 시에 교문에 올 수 있을까, 가슴이 먹먹해졌다.
약속한 날이 가까워오자 그런 걱정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마음을 흔들었다.
술 한 잔 곁들인 저녁 식사자리에서 만들어진 작은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까? 말하고 삼키기, 쓰고 지우기, 만들고 삭제하기가 번개보다 더 빠른 디지털 세상에서 오래된 참나무 가지마냥 늘어지고 울퉁불퉁한 약속은 버려도 무방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선생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언제 맺었건, 어디서 손가락을 걸었건 학생들과 맺은 약속의 무게와 크기가 다를 수 없었다. 어둡고 바람 찬 교문 벽에 혼자 기대어 민망하고 초조한 시간과 씨름하더라도 약속한 시간에 거기 서 있어야 했다.
약속은 절대였다. 여섯 시, 교문 수위실 앞에 섰다. 맞은편에서 청년들이 뛰어 왔다. 더러는 기차를 타고 멀리서 오는 중이라고 했다. 더러는 이메일과 SNS에다가 십 년 약속을 회상하면서 열심히 사는 중이라고 적었다.
내면이 강하고 성정이 고왔던 어떤 청년은 팍팍한 삶의 징검다리 건너기가 버거운 듯 했다. 학창시절부터 꿈꾸던 길을 한결같이 살아온 터였다. 그리운 전화가 연결되었으나 그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 것 같아 통화를 다음으로 미뤘다.
삼십대 초중반을 건너고 있는 청년들은 또 선생에게 스승이 돼 주었다. 선생에게 학생들의 말은 가볍지 않다.
학생에게 선생의 말이 가벼워서는 안 된다. 십 년 전 선생의 말 하나를 어제처럼 가슴에 담고 있지 아니한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학생들에게 안겨 준 무심한 말의 상처는 그 얼마나 깊을 것인가.
옳은 것을 바르게 전하는 말만 하여도 부족할 것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힘껏 격려하는 말들을 퍼부어주어도 부족할 것을, 공부가 게을러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그릇 인도하고 있지 않은지 두려워졌다.
가벼웠을 선생의 말을 약속으로 여겨서 선생이 기억하지 못하는 몹시 덥거나 아주 추운 날 어딘가에서 오래 기다리다가 실망스럽게 발길을 돌려야 했던 제자들은 혹시 없었을까? 오랜 듯 오래지 않은 단순한 진리를 되뇐다. 아이는 부모에게, 학생은 선생에게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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