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우산 속에도 해 뜰 날은 있다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수필 톡] 우산 속에도 해 뜰 날은 있다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20-02-14 14:43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1146630327
비가 내리는 날이나 눈발이 날리는 날엔 어김없이 떠오르는 우산 하나가 있다.

그건 바로 1년 전 눈길 위에서 날 감동케 했던 서대전여고 학생의 박쥐우산이다.



도솔 체육관에서 새벽 운동을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추운 날씨에다가 눈발이 심히 날려 점퍼에 달린 털모자를 뒤집어쓰고 미끄러질까봐 조심스레 걸었다. 메고 있는 스포츠용 가방 속에는 물론 우산이 들어 있었지만 시답잖은 낭만의 감정에 빠져 눈을 맞아보려 우산을 쓰지 않았다.

갑자기 뒤에서 '할머니! 할머니!' 하는 소리에 돌아다보니 반응을 보일 사람은 나밖에 아무도 없었다. 헐레벌떡 다가온 여학생 하나가 내 모습이 안 돼 보였던지 쓰고 있던 우산을 내밀며 쓰라고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착한 마음씨에 따뜻한 가슴까지 천만 불짜리 선심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뒤집어쓴 털모자에 가린 얼굴이 분간이 안 되었던지 나를 할머니로 오인한 것 같았다.

희귀보석을 받은 듯한 뿌듯한 마음에, 고마움에, 학생의 인적 사항을 물어보았다.

서대전여고 조준희 학생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서대전여고 교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아침부터 훈훈한 이야기였던지 전화 받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어쩐지 들떠 있었다.

선행자 표창을 해달라는 부탁까지 쾌락(快諾)해 주어 기분 좋게 통화를 마쳤다.

우산 하면 이와 같이 비와 눈을 가려 주는 우산도 있지만 인생사 고난의 소낙비를 가려주는 우산도 있다. 가난 속의 우산, 역경 속의 우산, 사업 실패 속의 우산, 취업난에서의 우산, 각종 시험 낙방에서의 우산, 온갖 인생살이 시련에서 비를 긋게 해주는 우산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리라.

그래도 우산이 되어 줄 대상이 있어, 힘이 덜 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어떤 우산도 없이 인생사 천둥 벼락 치는 고난과 싸우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삶 자체가 지옥일 수도 있다.

또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역경의 파도에 묻혀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사람한테는 삶 자체가 절망이고 죽음일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쓰는 우산은 작을수록 좋다. 그래야 밀착이 되어 사랑의 온도를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세사에 지친 사람들한테 인생고라는 소낙비를 막아 줄 우산은 클수록 좋다.

그런데 인생사 모진 비바람과 눈보라에 시달리며 사는 우리 보통사람들에겐 우산이 있어도 삶의 무게가 버거워 절망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아예 쓸 만한 우산조차 없어 쓰나미 같은 시련의 파도 속에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사람들에겐 삶의 포기가 전부일 수도 있다.

부닥친 시련의 강도가 세고 클 때는 우산이 있어도 소용없을 때가 많다. 우산이 있어도 태풍이나 쓰나미 같은 역경과 시련 앞에선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성이라 하겠다.

불가에서 인생 자체의 삶을 고해(苦海)라 했듯이 우리 사람은 남녀노소 없이 연령 불문하고 고민 속에 갈등하고 발버둥 치며 살고 있다.

그러다가 그 고통이 감당하기 어렵고 힘겨울 때는 절망하고 포기하는 것이 일쑤다.

게다가 삶의 무게가 버겁다고 느끼는, 학생, 청년, 중·장년, 남녀노소는 그 누구랄 것도 없이 엉뚱한 자살 충동에 빠지는 것이 다반사(茶飯事)로 있는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사회적 기반을 잡고 한참 활동해야 할 시기가 30대 연령인데 우리 현실은 그렇지를 못하다. 취업난으로 여러 번 원서를 내고 시험을 봤다가도 낙방하여 좌절하고 고민하다 자살 충동에 빠지는 일도 종종 있다.

다른 연령대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해결책이 없는, 시련이란 비를 맞을 때는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까지 버리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인생사 하는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도 있겠지만, 안 되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전제로 산다면, 조금은 위안을 갖고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우리말에 춘화현상(春花現象)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저온(겨울 ; 시련)을 거쳐야만 꽃이 핀다는 의미의 전문용어인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춘화현상(春花現象)에 관련된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호주 시드니에 사는 교민 한 분이 고국에 왔다 가는 길에 개나리 한 가지를 꺾어다 자기 집 마당 화단에 꽂았다. 이듬해 봄이 되었다. 맑은 공기와 좋은 햇빛 때문인지 가지와 잎은 한국에서보다 더 무성했지만 꽃은 피지 않았다.

첫해라 그런가 보다 했지만 2년이 3년이 지나도 꽃은 피지 않았다. 고심 끝에 알아보았더니 한국처럼 추운 겨울이 없는 호주에서는 개나리꽃이 아예 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겨울(시련)을 거쳐야만 꽃이 피는 식물에는 튤립, 히아신스, 백합, 라일락, 철쭉, 진달래 등이 있다고 들었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춘화현상의 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눈부신 인생의 꽃(값진 성공, 행복)은 겨울(눈보라 비바람: 만고풍상의 시련 )을 거친 뒤에야 꽃망울(성공의 희열, 기쁨)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우산이 없어 시련이라는 소낙비를 맞고 발버둥치는 젊은이들이여!

아니, 우산이 있어도 형극(荊棘)의 쓰나미 같은 시련에 시달리는 모든 이들이여!

캄캄한 상황에 문 열릴 기미가 없어 보여도 소낙비와 겨울을 극복해야 한다.

겨울이 없는 봄은 없기 때문이다.

칠흑 같은 동굴에도, 터널에도, 새어드는 한 줄기 빛은 어디든 있게 마련.

우산 속에도 해 뜰 날은 있다.

아니, 우산 없이 태풍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도 봄은 있고 비춰 줄 태양은 있다.

우리는 고난의 장맛비 여름이나 혹한의 겨울을 우산이 없더라도 이겨내야 한다.

인생의 봄은 추운 겨울을 겪어내야 웃으며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사에 허덕이는 우리 모두의 사람들이여!

인내로 꿈을 가꾸어라, 문을 두드려라. 그대들 앞엔 내일이란 밝은 태양이 있다.

우산 속에도 해 뜰 날은 있다.

용기를 잃지 마라!

아니, 힘을 내어라!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해운대 겨울밤 별의 물결이 밀려오다 '해운대빛축제'
  2. 2026학년도 수능 이후 대입전략 “가채점 기반 정시 판단이 핵심”
  3. [2026 수능] 국어 '독서'·수학 '공통·선택' 어려워… 영어도 상위권 변별력 확보
  4. [2026 수능] 황금돼지띠 고3 수험생 몰려… 작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어려워
  5. [2026 수능] 분실한 수험표 찾아주고 시험장 긴급 수송…경찰도 '진땀'
  1. 더민주대전혁신회의 "검찰 집단항명, 수사 은폐 목적의 쿠데타적 행위"
  2. 이한영, 중앙로지하상가 집중점검… "실효성 있는 활성화 대책 필요"
  3. 대전경찰청, 14일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 경기 앞두고 안전 점검
  4. [2026 수능 스케치] "잘할 수 있어"… 부모·교사·후배들까지 모여 힘찬 응원
  5. ‘수능 끝, 해방이다’

헤드라인 뉴스


 ‘노잼도시’의 오명을 벗고 ‘꿀잼대전’으로

‘노잼도시’의 오명을 벗고 ‘꿀잼대전’으로

한때 '노잼도시'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대전이 전국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에는 볼거리나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 각종 조사에서 대전의 관광·여행 만족도와 소비지표가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도시의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과학도시의 정체성에 문화, 관광, 휴식의 기능이 더해지면서 대전은 지금 '머물고 싶은 도시', '다시 찾고 싶은 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가 실시한 '2025년 여름휴가 여행 만족도 조사'에서 대전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9위를 기록..

대흥동의 `애물단지` 메가시티 건물…인공지능 산업으로 부활하나
대흥동의 '애물단지' 메가시티 건물…인공지능 산업으로 부활하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설립을 앞둔 대전 중구 대흥동의 애물단지인 메가시티 건물이 기피시설이란 우려를 해소하고 새롭게 변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치권에서는 정부 부처 간 협력을 통해 미래 첨단 산업 및 도시재생과의 연계를 시도하는 모습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용갑 의원(대전 중구)은 국회의원회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 관계자를 만나 대전 중구 대흥동에 인공지능 산업 인프라를 조성하기 위한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요청했다고 14일 밝혔다. 대전 중구 대흥동에 위치한 메가시티 건물은 2008년 건설사의 부도로 공사가..

축구특별시 대전에서 2년 6개월만에 A매치 열린다
축구특별시 대전에서 2년 6개월만에 A매치 열린다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14일 오후 8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볼리비아의 친선경기가 개최된다. 13일 대전시에 따르면 이번 경기는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을 향한 준비 과정에서 열리는 중요한 평가전으로, 남미의 강호 볼리비아를 상대로 대표팀의 전력을 점검하는 무대다. 대전시는 이번 경기를 통해 '축구특별시 대전'의 명성을 전국에 다시 한번 각인시킨다는 계획이다. 대전에서 A매치가 열리는 것은 2년 5개월 만의 일이다. 2023년 6월 엘살바도르전에 3만9823명이 입장했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능 끝, 해방이다’ ‘수능 끝, 해방이다’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작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작

  • 시험장 확인과 유의사항도 꼼꼼히 체크 시험장 확인과 유의사항도 꼼꼼히 체크

  • ‘선배님들 수능 대박’ ‘선배님들 수능 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