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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은 일생을 죽장망혜(竹杖芒鞋: 대나무 지팡이와 미투리: 망혜는 마혜(麻鞋)의 잘못)로 세상을 유람하다가 단천(端川) 고을에서 결혼을 한 일이 있었다.
젊은 청춘 남녀의 신혼 밤은 시간 시간마다 천금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불이 꺼지고 천재 시인과 미인이 함께 어우러졌으니 어찌 즐거움이야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뜨거운 시간에 취해 있었던 김삿갓이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 쓴 사람처럼 불이 나케 일어나 불을 켜더니 실망의 표정을 지으면서 벼루에 먹을 갈고 그 좋은 명필로 일필휘지하니…
모심내활(毛深內闊) 필과타인(必過他人)
(털이 깊고 안이 넓어 허전하니 필시 타인이 지나간 자취로다)
이렇게 써 놓고 여전히 입맛만 다시면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신랑의 그러한 행동에 신부가 의아해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실랑이 일어나는 바람에 원앙금침에 홀로 남아 부끄러움에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고 김삿갓이 써 놓은 화선지를 살펴보곤 고운 이마를 살짝 찌푸리듯 하더니 이불에 감싼 몸을 그대로 일으켜 세워 백옥 같은 팔을 뻗어 붓을 잡더니 그대로 다음과 같이 내려쓰기 시작했다.
후원황률불봉탁(後園黃栗不蜂坼)
계변양유불우장(溪邊楊柳不雨長)
(후원의 익은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저절로 벌어지고
시냇가의 수양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니라)
글을 마친 신부는 방긋 웃더니 제 자리로 돌아가 눈을 사르르 감고 누웠다. 신부가 써 놓은 글을 본 김삿갓은 잠시 풀렸던 흥이 다시 샘솟으며 심부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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