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사자성어] 79. 인향만리(人香萬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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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사자성어] 79. 인향만리(人香萬里)

처서(處暑)와 처자(處子) 단상

  • 승인 2016-08-23 01:00
  • 홍경석홍경석
▲ 코스모스 꽃 위로 날아든 호랑나비 한마리가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한다./사진=연합 DB
▲ 코스모스 꽃 위로 날아든 호랑나비 한마리가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한다./사진=연합 DB


올해는 예년 여름에 비해 삼계탕을 많이 사먹었다. 이는 날씨가 그만큼 무더웠다는 방증이다. 녹두를 함께 넣어 삼계탕을 잘 하는 집이 단골이다. 그래서 쉬는 날의 점심에 아내와 자주 찾았다.

하루는 그 식당에 들어서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들께서 가득 앉아 계셨다. 예약을 하지 않고 가면 최소한 30분은 기다려야 하는 집인 터여서 분명 예약을 하고 오셨겠지 싶었다. 잠시 후 펄펄 끓는 삼계탕이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다.

젊은 부부가 주인인데 꽤 친절하고 싹싹하다. “오래들 기다리셨지요? 정성껏 끓였으니 맛나게 드세요.” 치아가 부실한 어르신들이었음에도 별 거부감 없이 그럭저럭 잘 드시는 모습을 뵈니 요양원에 계시는 장인어르신 생각에 마음이 시려왔다.

우리가 예약한 삼계탕도 나와서 반쯤 먹을 무렵 한 젊은이가 식당에 들어서서 셈을 치렀다. “할아버지 할머니들 ~ 맛나게들 드셨슈?” 그러자 일제히 이구동성의 만족감이 식당 안을 덮었다. “야(예), 아주 잘 먹었슈! 고마워유~”

묻지 않아서 적확하진 않았지만 아마도 그 남자의 신분은 어떤 봉사단체의 직원이지 싶었다. 매달 죽마고우들과의 모임이 넷째 주 일요일에 있다. 그날 근무와 맞물리면 갈 수 없으나 그렇지 아니하면 최대한 참석하는 터다.

한데 그날이 되면 꼭 어르신들께 봉사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목도하게 된다. 장소는 천안시 성정동인데 천막까지 길게 쳐놓고 어르신들께 음식을 정성껏 대접한다. 그 모습을 보자면 ‘화향백리 주향천리 인향만리(花香百里 酒香千里 人香萬里)’라는 생각에 흐뭇함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나곤 한다.

이는 꽃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술 향기는 천 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무려(!) 만 리를 간다는 뜻이다. 초등학교 동창 중에도 그러한 선행을 펼치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얼마 전 동창들의 모임에서는 어떤 뒤풀이의 일환으로 여러 친구들 주도 하에 어르신들을 모신 장소로 이동했다. 이어 맛난 음식의 제공과 약주(술)까지 따라 드리는 등 느닷없는 ‘봉사’까지 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나로선 졸지에 그 장소까지 ‘묻어가서’ 그야말로 ‘사이비’로 착한 일을 잠시 한 것뿐이기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올 여름은 지독스레 더웠다. 냉방비를 아껴야 하는 가난한 독거노인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조차 없었다.

다행히 마침내 처서(處暑)가 찾아왔다. 처서는 여름의 더위를 가셔내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의 좋은 날이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속담이 있지만 올 여름엔 너무 덥고 가뭄까지 겹쳐 모기들의 준동이 그다지 심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는 속담도 있다. 이는 처서가 지나가면 모든 식물은 생육이 정지되어 시들기 시작한다는 데서 유래한 속담이다. 마치 생로병사의 우리네 인생사를 의미하는 듯 하여 자못 의미심장하다.

어쨌거나 처서(處暑)라고 하니 그 어떤 예쁜 처자(處子)보다도 반갑다는 느낌이다. 처서가 지나면 가을을 찬미하는 국화와 코스모스 등의 가을꽃들이 지천에 만화방창(萬化方暢)으로 흐드러질 것이리라.

그러나 제 아무리 고혹스런 꽃일 망정 그 향기의 반경은 고작 백리뿐이다. 반면 사람의 향기는 천리를 간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는 맞는 얘기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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