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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은 기사내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 사진=연합 DB |
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첫 저서의 출간관계로 서울에 다녀오던 중이었다. 열차에서도 흡연을 금지하는 터여서 대전역을 빠져 나오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였다. 흡연자를 마치 범죄시하는 듯한 분위기가 팽배한, 그래서 자린고비처럼 야박하기 짝이 없는 서울(역)이었다.
그와 달리 대전은 그래도 넉넉한 인심이 여전한 ‘충청도 양반’의 도시였다. 흡연을 허용하는 구역에서 쓰레기통을 마주하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비로소 10%의 희망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래, 잘 될 거야! 출판계약을 성공적으로 맺은 출판사의 사장님 말씀대로 앞으로 남은 건 책의 발간과 아울러 그 즉시 베스트셀러로의 진입이야.’ 커트라인을 상실한 그 같은 착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노숙자로 보이는 이가 다가왔다.
그러더니 쓰레기통에 가득한 담배꽁초를 줍는 것이 아닌가. 순간 담뱃값의 가파른 인상이 불러온 필연적 현상, 예컨대 돈이 없는 흡연자는 주워서라도 피워야만 하는 현실의 적나라함이 아픈 바늘 끝이 되어 폐부를 찔렀다. 과부 설움은 홀아비가 안다고 했다.
그래서 남은 담배를 그 사람에게 다 건넸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그 이가 내 마음을 더욱 후벼 팠다. ‘에이그, 댁이나 나나 담배를 어서 끊어야만 할 텐데 하지만 맘대로 안 되니 걱정이구려.’
지난해 담뱃세 인상 과정에서 외국계 담배 제조사 2곳이 세금 2083억 원을 탈루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뉴스를 보았다. 감사원이 9월 22일 공개한 ‘담뱃세 등 인상 관련 재고차익 관리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말버러 담배를 생산하는 필립모리스코리아는 2013년 말 재고량이 445만 갑 수준이었는데 담뱃세 인상 전인 2014년 말에는 전년도 동기 대비 24배에 달하는 1억623만 갑으로 재고를 늘렸다고 한다.
던힐 담배를 생산하는 BAT코리아도 2013년 말엔 재고가 전혀 없었지만 2014년 말에는 2,463만 갑의 재고를 보유했다고 했다. 이어 두 회사는 일종의 보관 창고에 해당하는 제조장에서 담배를 반출한 것처럼 관련 서류와 전산망까지 조작했단다.
담뱃세는 제조장에서 유통망으로 담배를 반출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한다. 이를 악용해 미리 담배를 빼돌려 담뱃세 인상 전의 낮은 세율을 적용받은 것이라고 감사원은 밝혔다.
이런 수법으로 필립모리스코리아가 탈루한 세액이 1691억 원, BAT코리아가 탈루한 세액은 392억 원으로 총 탈루액이 2,083억 원에 이른다고 했다. 상식이겠지만 무언가 가격이 오른다고 하면 사재기 내지 인상 전에 미리 재고를 잔뜩 비축하는 것이 천민자본주의의 전형적 수법이다.
감사원은 이러한 사례를 발표하면서 허위로 반출 재고를 조성한 두 회사에 탈루 세금 및 과소신고 가산세를 더해 총 2,921억 원을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등에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두 회사는 반발하면서 적극 소명하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지만 이를 보는 소비자의 마음은 “이러자고 담뱃값 올렸나?” 라는 쪽으로 마음의 저울이 기우는 걸 제어하기 어려웠다. 한편 정부는 지난 2014년 9월 담뱃세 인상을 위한 개별소비세법 등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담뱃세 인상에 따른 차익을 국고로 귀속시킬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이는 명백한 고리정분(藁履丁粉)이 되는 셈이다. ‘짚신에 분을 바르는 것처럼 일이 격식에 맞지 않음’을 일컫는 이 사자성어는 담배의 갑 당 2천 원 인상이란 강수(強手)의 ‘후유증’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담뱃값의 인상 후 과거완 사뭇 달리 이젠 애고 어른이고 구별 없이 맞담배질을 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이는 담배가격을 올림과 병행하여 흡연자들의 공간인 흡연구역마저 마구 없앤 때문이다.
겨우 있는 흡연구역은 따라서 사탕을 던져놓으면 금세 꼬이는 개미들처럼 남녀노소를 불문한 연령타파의 어떤 해방구로 변질되고 말았다.
올해 40억 갑의 반출(소비)이 예상되는 담배의 세수(稅收)가 사상 최고인 13조 원에 달할 것이란 보도가 있었다. 국가재정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있는 흡연자들이거늘 정부는 여전히 그들을 토끼몰이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담배가 몸에 안 좋다는 건 흡연자들도 다 아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쉬 끊을 수 없는 건 강한 중독성 때문이다. 고로 '담뱃값을 올리면 알아서 끊겠지'라는 정부의 강압적 인상은 결과적으로 ‘고리정분’의 무리수였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고리정분의 사례는 더욱 늘어난다. 한국전력이 임직원 1인당 평균 2000만 원에 육박하는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것 또한 국민들에게 ‘전기료 폭탄’을 터뜨리고 가져가는 윽박의 모양새다. 기상청의 지진 대응 매뉴얼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야간 지진 발생 시 밤에는 장관을 깨우지 말아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가 하면 기상청장과 차장에게는 지진 탐지 후 15분 내, 상급기관인 환경부 장·차관에게는 15분이 지난 뒤에 보고하도록 돼있다고 하여 국민들을 그야말로 ‘멘붕’에 빠지게 했다.
그렇다면 현 정부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소위 골든타임의 상실은 물론이요 촌각을 다투는 지진피해의 특성 상 ‘상황 종료’ 후에야 정부의 책임자들이 그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단 얘기 아닌가? 잘못된 건 고쳐야 한다. 정부의 국민을 상대로 한 각종의 가렴주구에 국민들은 뿔이 날대로 나 있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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