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의 지역 프리즘] 미스 페레그린과 노인들

  • 오피니언
  • 최충식 칼럼

[최충식의 지역 프리즘] 미스 페레그린과 노인들

  • 승인 2016-10-05 12:26
  • 신문게재 2016-10-06 22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가족 앞에서만 가끔 튀어나오는 쓸데없고 실없는 농담이 있다. 딱 이 상태로 나이를 안 먹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안 늙고 살다가 무슨 꼴 당할지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노벨 물리학상에 빛나는 아인슈타인도 애당초 터무니없는 발상에는 희망이 없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10월 3일, 결혼기념일 뒤풀이로 본 영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는 내가 말하는 세상이 음산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미리 말하면 영원히 반복되는 기괴한 시간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팀 버튼 감독과 원작자 랜섬 릭스의 천재성에 2시간 7분 동안 '순간 멈춤'을 하듯 몰입한 걸로 만족한다. 그날따라 나이(노인) 이슈를 사설로 막 다루고 나와서 그런지 실감이 더했다. 드러난 학대 신고만 5년 사이에 5만 건을 넘고 노인인구 34만여명인 충남도는 같은 기간에 75%나 폭증했다는 따위의 어두운 이야기의 나열이었다.

이 국정감사 자료를 봤을 때, 죽기는 섧지 않으나 늙기는 섧다는 말의 비장함이 떠올랐다. 노후는 게다가 '랜덤'이라 언제 어찌 될지 모른다. 폴 매카트니(비틀즈)의 '내가 예순네 살이 된다면'(When I am Sixty-four)에서 “늙고 병들어도 나를 원하고 챙겨줄 거냐”라는 발랄한 가사가 유명해진 계기는 폴이 64세에 휘말린 재혼한 부인과의 이혼 소송 때문이었다. 풋풋할 때 그린 장밋빛 노후가 얼마나 멋대로 닥치는지를 표본으로 보여준다. 하물며 아들(40%), 배우자(14%), 딸(12%), 손자 등 직계가족, 혈족에게 학대받는 여생은 어떠하겠는가. 예전에는 나라 상감님도 대접한다던 노인이었다.

더 기막힌 사실은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학대 행위자의 43%가 60대 이상이란 점이다. 같이 늙어가는 자식 등에 의한 노-노(-)학대와 방임, 홀로 사는 노인의 자기방임도 늘고 있다. 가족에 관한 최소한의 문화인류학적 정의가 '불(火)의 공유'인데, 그걸 나눌 가족 구성원이 있더라도 신체 구타 및 심리적 가해와 착취가 행해진다는 게 사안의 심각성이다. 미국 인구조사국이 한국 노인인구 비율 세계 2위로 점친 2050년쯤, 우리나라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러그내그 나라처럼 된다는 끔찍한 가정을 해본다. 스트럴드브러그처럼 늙기는 하고 죽지 않는 존재가 되면 그 또한 불행이다.

오래 살기를 갈망하나 늙고 싶지 않은 이놈의 모순. 이 때문에 피터팬의 네버랜드가 탄생됐는지 모른다. 일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소피는 마녀의 저주로 노인이 되고 보니 잃을 게 적고 어지간하면 놀라지 않는 것이 장점이라 했다. 실제로도 그럴까? 가족의 부양 의사가 없어 사망 처리를 바로잡지 않는다는 70대 노숙인의 기구한 사연이 중도일보에 실린 적이 있다. 현실의 어르신들은 이처럼 인간의 존엄마저 잃고 혈육의 반인륜에 기함을 하며 산다. 노인인구가 14%(고령사회)에 근접하면서 가족이 고령친화국가, 고령친화도시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슬픈 일이다.

그 배후에 자리한 핵심이 또한 경제적 문제다. 늙으면 박사 위에 '밥사'와 '술사'란다. 돈 떨어지면 경로당에서도 하찮게 대하고 업신여긴다. 질병, 빈곤, 고독 등 3고의 치유책은 학대방지의 날 지정과 할매·할배의 날 행사, '불효방지법' 제정 따위가 아니다. 든든한 국가 복지정책-지역사회 안전망-가족 사랑의 삼위일체여야 한다. 미스 페레그린의 아이들같이 웨일스 외딴 섬의 루프 속에서 무한 재생되는 하루를 영생한다 해도 사랑 없으면 거기가 지옥이다. 그러고 보니 하루 세끼 차려준 밥을 먹는 '삼식(三食) 새끼'는 복에 겨운 눈칫밥이었다. 완전히 늙기 전에 깨우쳐 다행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학교급식종사자들 "교육청 임금체불" 노동청에 진정 신청
  2. [춘하추동]다문화 사회와 문화 정체성
  3. 자녀 둘 기혼 숨기고 이성에게 접근해 6천만원 가로챈 40대 '징역형'
  4. 유명 선글라스 신제품 모방한 상품 국내유통 30대 구속기소
  5. 지역의사제에 충청권 의대 판도 변화… 고교별 희비는 변수
  1. 스프링 피크, 자살 고위험 시기 집중 대응
  2. 신임경찰 경위·경감 임용식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내외
  3. 건양사이버대 26학번 단젤라샤넬, 한국대학골프대회 우승
  4. 생기원, 첨단 모빌리티 핵심 소재 '에코 알막' 원천기술 민간에 이전
  5. 금강유역환경청, 충남지역 초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행

헤드라인 뉴스


가뜩이나 좁은데 여기서 더?… 장태산 `버스 주차장` 반토막

가뜩이나 좁은데 여기서 더?… 장태산 '버스 주차장' 반토막

"주말만 되면 버스가 줄지어 들어오는데, 여기는 애초에 다 못 받는 구조예요. 그마저도 줄어들면 더 뻔한 거 아닌가요." 대전 서구 관광 명소인 장태산 자연휴양림의 고질적인 주차난이 인근 사회복지시설 이송로 확장 사업으로 심화될 우려가 크다. 도로 확보를 위해 대형버스 주차 면적을 절반으로 축소될 계획인데, 밀려나는 수요를 수용할 대안이 없어 도리어 도로 혼잡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17일 서구와 대전시에 따르면 응급차량 통행을 위한 장태산 진입도로 확장 공사가 추진된다. 이 과정에서 1주차장 일부가 도로와 보행로로 편입돼 대..

충청권 2월 취업자 수 1년 전보다 5만9300명 늘었다
충청권 2월 취업자 수 1년 전보다 5만9300명 늘었다

충청권 2월 취업자 수가 1년 전보다 5만 9300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주력 산업인 제조업과 건설업의 동반부진으로 고용의 질적 회복은 향후 풀어야 할 과제로 보인다. 18일 충청지방데이터청의 '2월 충청지역 고용동향'에 따르면, 충청권 4개 시·도의 취업자 수는 322만 8100명으로 지난해 316만 8800명과 비교해 5만 9300명 증가했다. 지역별 취업자 수는 대전만 감소했고 세종·충남·충북은 모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우선 대전의 경우 취업자 수는 79만 59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4800명(-0.6%)..

`정부부처·위원회`의 세종시 이전… 6.3 지방선거 분수령
'정부부처·위원회'의 세종시 이전… 6.3 지방선거 분수령

이재명 정부가 해양수산부 외 정부부처의 추가 이전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지만, 후속 과제에 대해선 명확한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작년 1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주도로 상정된 성평등가족부와 법무부 등 수도권 잔류 중앙행정기관의 정부세종청사 이전 표류가 대표적이다. 지방시대위원회를 필두로 업무 효율화와 연관성상 이전이 시급한 대통령 및 총리 직속위원회 이전도 수년째 메아리가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0회 국무회의에서 "(해양수산부에 이은) 추가 정부 부처 분산은 없다"고 못 박으면서, 전라와 경..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도심 유휴공간, ‘스마트팜으로 대변신’ 도심 유휴공간, ‘스마트팜으로 대변신’

  • 사이버 선거범죄 ‘꼼짝마’ 사이버 선거범죄 ‘꼼짝마’

  • 신임경찰 경위·경감 임용식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내외 신임경찰 경위·경감 임용식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내외

  • ‘반려견과 함께’ ‘반려견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