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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충식 논설실장 |
조간신문을 덮었다. 어느 물리학자(니콜라스 하르트소커)가 기억난다. 정자 속에서 아주 작은 사람, 극미인(極微人)을 발견했다는 사람이다. 그럴 수 있겠다. 초등학교 시절, 고배율 현미경을 끼고 지내며 형형색색의 디자인과 동물 형상들은 나도 보았다. 허리 잘록한 여자도 보았다. 세월이 흐른 후에 '보았다'가 아니라 '본 듯하다', '보았다고 믿었다'고 표현해야 옳음을 또한 알았다.
보는 것에는 신념도 포함돼 있음을 인정하게 됐다. 그 신념이 때로는 거추장스럽다. 4년 가까이 민생과 남북관계를 들먹이며 “경제 블랙홀을 유발시킬 수 있다”, “블랙홀같이 모든 걸 빨아들인다”던 박근혜 대통령이 불쑥 개헌 추진을 공식화했을 때는 가벼운 전율을 느꼈고 '보았다.' 3분기 0.7% 등 0%대 성장에 갇혀 경제 비상등을 켜야 할 지금이 1987년생 헌법의 개정 적기(適期)라니….
아, 빅뱅은 특이점으로부터 시작된다던가.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의 쓰나미에 휩쓸린 이 판국에 4년 중임제니 분권형 대통령제, 의원내각제니 이원집정부제니 하는 권력구조를 거론한다는 자체가 “이상하자”라는 이상한 광고 문구처럼 이상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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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 위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헌법 개정도, 수도 이전론의 핵심 논거인 지역균형발전 가치도 그렇게 보이진 않을까. 하루 전 대낮에 마감시킨 사설을 그 이튿날 재독하면서 걱정했다. 반대론과 속도조절론을 걷어내도 간단치 않은 문제다. 2004년 헌재 판결을 거쳐 몸소 겪은 경험도 있다.
분명히 해두지만 눈앞의 국정 우선순위는 참담한 국정 붕괴사건의 진상 규명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이다'라든지 '대한민국의 수도는 세종특별시로 한다' 등 규범화의 중요도는 변하지 않았다. 집권 3년 8개월째 되던 날, 대통령이 사과하는 빅뱅 국면을 맞는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은 지방분권형 개헌이며 행정수도 이전의 당위성이다.
많은 고비가 기다린다는 것, 설령 말발굽 소리가 나더라도 그것을 얼룩말이라 예상하지 말라는 것을 충청인들은 똑똑히 알고 있다. 개헌을 펌질, 도둑질, 가두리양식질을 당했다고 믿는 야당도, 개헌을 항상 준비하고 있었다고 믿는 여당도 전적으로 믿지는 못한다. 수도권 등 어느 지역도 이유 없는 이타주의의 아량을 베풀지는 않을 터이다. 또 국회의원 수만큼 개헌안이 있을지도 모른다. 개헌의 프리즘은 다양하고 헌법 개정은 복잡하다.
가끔은 슬프기도 하다. 예전 유신헌법을 암송하면서 헌법은 한국인의 원죄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더군다나 자유롭지 않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 임기 초반과 2012년 대선 후보 시절에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시했었다. 이후로는 논의 자체를 기피했다. 그래서 국면 전환용으로 의심 사지만 개헌을 저 높은 정치담론의 높이에서 끌어내린 점만은 평가해야 한다. 이걸 인정해야 개헌 불씨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
전략상으로도 그게 유리하다. 어떤 영화 때문에 '어떠어떠하다고 보기 힘들다', '볼 수 있다', '매우 보여진다'와 같은 말꼬리가 가끔 신경 쓰인다. 영화 속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 분)는 안드로메다에서 온 사람처럼 낯설지만 느물거리는 대사 하나는 일품이다. 아니라고 보기 힘들다. 대통령발(發) 개헌이 하루 만에 박물관의 낡은 수레 신세가 됐는데 너무 보채면 버블에서 바람 새는 소리로 볼 수 있다. 개헌은 진상 규명 다음 순위로 밀렸다고 '매우 보여진다'. 우리가 구할 건 현미경 속 극미인이 아니니 괜찮다. 다들 숨고르기 할 때 사려 깊게 방법을 찾아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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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논설실장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 위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 위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http://dn.joongdo.co.kr/mnt/images/file/2016y/10m/26d/20161026000021151_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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