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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충식 논설실장 |
찬부 양론을 떠나 언어의 정원에 핀 반어법의 꽃나무는 아니었다. 반대되는 말로 보수 정권의 실정을 비판했다는 문자적 의미를 얻지 못했다. 대신, 다른 대선 주자들로 하여금 칭찬인가, 찬사 형식의 모욕인가, 비난인가는 확실히 해둬야 한다는 교훈을 깨닫게 했다. 대연정은 중도 우클릭이 아니라고 한 말 역시 그럴 수 있다. 민주화 이후 여소야대로 분점정부(分占政府) 형태가 나타났고 선거 결과에 따른 대연정 선례는 독일 등 각국에 있었다. 과거 3당 합당으로 단점정부로 돌려놓은 우리 역사도 있다. 이런 사실들이 대연정을 전제로 헌법이 만들어졌다는 단정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 민주적 원리에 들어맞는지는 더 살펴봐야 한다.
‘선한 의지’ 발언도 비슷한 각도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표피적인 득실만 갖고 따진다면 문재인, 이재명, 안철수 등 야권 주자군의 2등 때리기 십자포화로 치솟은 주가를 실감하는 계기가 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안희정표 중도 노선이 본격 검증대에 섰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안희정 현상’이 기존 정치권을 향한 염증이라는 모범답안 비평은 아직은 완전한 신뢰감을 못 주고 있다. 그걸 먼저 보여줄 수단은 언어다. 말을 통해서다. 민주주의가 말을 먹고 사는 제도이지만 “분노를 조직화하지 않았다”거나 “정의의 마무리는 사랑”이라는 선한 말로 실언을 희석시킬 수는 없다.
중도 노선 그 자체가 비난받을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상황 인식 결여가 정체성 모호와 만나면 승부수는 무리수로 돌변한다. 위트 비슷한 이야기에 청중이 웃었다 해서 비유나 반어법이 되지 않는다.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진 시기일수록 발화자의 의지를 의심받지 않는 게 중요하다. 선의보다 중요한 것이 법과 제도라고 하려면 다른 식으로 말했어야 한다. 호의적인 사람들조차 “안희정 연설은 반어법 아닌데요”라고 들춰냈으니 문제다. 보수와 중도의 양 사이드를 의식해 전·현직 대통령을 두둔했다고 실제로 읽고 있다.
그리고 진짜 반어법은 쉽다. 지각한 초등학생에게 “너 참 빨리 온다”고 해도 그 본질을 알아챌 만큼 쉬워야 반어법이다. 진실이거나 전략이거나 반어법에 주석을 주렁주렁 달 이유는 없다. 양념도 적당히 쳐야 맛이 난다. 여하튼 이번 사안과 지지율의 상관관계가 관심사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지율은 옳고 그름의 척도가 아니니 더 길게 봐야 할 것 같다. 정의가 지지율 밑에 깔린다고 하지만 보다 분명한 철학과 비전으로 승부하길 권고한다.
안희정 지사가 꿈꾸는 청와대도 국회처럼 말에 의한, 말의 전당이다. 말과 관련한 대통령들의 특징이 대충 이렇게도 요약된다. ‘노무현은 혼자 얘기하고, 이명박은 하고 싶은 말만 골라 하고, 박근혜는 아무 말도 안 한다’는 식이다. 이 말은 곧 밖으로 표현하는 문제(explicit problem)와 속에 담고 있는 문제(implicit problem)가 상당히 다름을 나타내기도 한다. 고유의 형태, 색깔, 냄새가 있는 말의 어려움까지 보여준다. 이것은 안희정 지사에게도 향한다. 선악 가치판단이나 반어법이라는 수사법의 문제가 아니다. 100% 선거 전략이더라도 국민이 보는 안희정 자신의 선의에 대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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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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