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 칼럼]탄핵심판 선고와 거짓말

  • 오피니언
  • 최충식 칼럼

[최충식 칼럼]탄핵심판 선고와 거짓말

  • 승인 2017-03-08 11:33
  • 신문게재 2017-03-09 22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한 시점에 90일간의 특검 수사를 돌아본다. 요체는 '거짓말'이었다. 대통령 측은 삼성 합병과 관련해 “완전히 엮은 것”이고 “누굴 봐줄 생각이 없었다”고 했지만 잘 챙겨보라는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고 특검은 잡아냈다. “몰랐던 일”이라는 해명도 미르·K스포츠재단을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가 함께 운영한 것으로 뒤집었다. 대개 이런 패턴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어떤 측면에서 워터게이트 사건과 자주 겹쳐진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퇴진은 도청으로 촉발됐지만 수사 방해와 거짓말이 진짜 이유였다. 훗날 닉슨은 TV 회견에서 “위선은 정치의 일부”라며 자멸적인 거짓말 없애기에 나섰다. “대통령 후보자라면 위장할 필요가 있다”며 대놓고 거짓말을 옹호하기도 했다.

우리 대선 주자들이 잘못 들으면 펄쩍 뛰며 반길 소리다. 닉슨은 더 결정적인 훈수를 곁들인다. “일국의 대통령이 스스로 믿지 않는 바를 얘기하더라도 반드시 비도덕적 의미에서 거짓말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원하는 수준은 칸트의 엄격한 진실은 물론 아닐 것이다. 칸트 식으로는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도 잘못된 거짓말이다. 부하에게 가언 명령(假言命令)으로 행동을 강요한다고 봤기에 여지가 없다.

플라톤은 이와 달랐다. 국익을 위해 적이나 시민들에게 거짓말이 허용된다는 소크라테스를 동원해 통치자의 거짓말을 이상국가 실현의 덕목으로 쳐줬다. 통치자는 거짓말 면허증 소지자였다. 정의에 관한 국가 최선자라는 전제에서였다. 우리 경우에 적용한다면 정의에서 우러난 고상한 거짓말, 국가의 단일성을 좇는 거짓말이라는 믿음을 갖기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다.

내친김에 이보다 실용적인 마키아벨리의 거짓말 접근법까지 들여다본다. 피통치자는 사악하고 변덕스럽다. 여기에 맞설 무기로서 거짓말을 정당화한다. 백 걸음 양보해서 가장 모범적인 거짓말이 통치 능력이라 해도 현명함과 공익을 전제로 했다.

어느 단계까지는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안철수 현상'이나 '안희정 현상'처럼 한때 있었던 '박근혜 현상'도 그랬다. 동명의 책에서 '정치공학, 권력욕, 특권층'과 '거짓말'을 박근혜 진정성 정치의 대립물로 꼽은 적이 있다. 탄핵 정국에서 강경한 보수 정체성을 세워 정치 입문에 성공했다는 서술은 지금 읽으면 실소를 자아낸다. 어느 부분도 더 이상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자신이 보수 정체성을 철저히 망가뜨렸고 자신이 국정농단의 몸통임을 입증하는 세 트럭분 수사 자료에 대고 “음모이고 거짓말”이라며 거짓말 게임의 선두 역할을 탄핵 끝판까지 주도해 왔다. 개념 없고 품위 없는 거짓말에서 국민은 절망과 슬픔을 맛보았다. 이성이 완전히 문을 닫고 자기기만이 반복되면 정상이 비정상으로 보이는 법이다. 가슴 아프지만 여러 각도로 연구 자료가 될 것 같다.

실제로 대통령의 거짓말은 좋은 연구 대상이었다. 국내 출판 서적만 대충 봐도 '미국 대통령의 거짓말'(이시자와 야스하루), '왜 대통령들은 거짓말을 하는가'(하워드 진), '섹스, 거짓말, 그리고 대통령'(래리 플린트, 데이비드 아이젠바흐) 등이 있다. 선의나 악의를 가리지 않고 국민 개개인의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통령의 거짓말은 부작용이 치명적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거짓말이 보편적인 법칙일 수는 없다. '사실, 거의 사실, 사실과 거짓, 거의 거짓, 거짓' 중 오른쪽에 가깝다고 믿는 다수 국민에게 '거짓말 면허증'을 반납할 기회가 지금이다. 꽃샘추위 지나 봄이 시간의 속살을 드러내려는 이때, 불관용과 편협함의 옷을 훌훌 벗고 한 번이라도 진실의 속살을 보여준다면 좋겠다. 너무 늦었지만 그것이 그나마 최소한의 도리 아닐까 싶다.

최충식 논설실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학교급식종사자들 "교육청 임금체불" 노동청에 진정 신청
  2. [춘하추동]다문화 사회와 문화 정체성
  3. 자녀 둘 기혼 숨기고 이성에게 접근해 6천만원 가로챈 40대 '징역형'
  4. 유명 선글라스 신제품 모방한 상품 국내유통 30대 구속기소
  5. 지역의사제에 충청권 의대 판도 변화… 고교별 희비는 변수
  1. 스프링 피크, 자살 고위험 시기 집중 대응
  2. 신임경찰 경위·경감 임용식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내외
  3. 건양사이버대 26학번 단젤라샤넬, 한국대학골프대회 우승
  4. 생기원, 첨단 모빌리티 핵심 소재 '에코 알막' 원천기술 민간에 이전
  5. 금강유역환경청, 충남지역 초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행

헤드라인 뉴스


가뜩이나 좁은데 여기서 더?… 장태산 `버스 주차장` 반토막

가뜩이나 좁은데 여기서 더?… 장태산 '버스 주차장' 반토막

"주말만 되면 버스가 줄지어 들어오는데, 여기는 애초에 다 못 받는 구조예요. 그마저도 줄어들면 더 뻔한 거 아닌가요." 대전 서구 관광 명소인 장태산 자연휴양림의 고질적인 주차난이 인근 사회복지시설 이송로 확장 사업으로 심화될 우려가 크다. 도로 확보를 위해 대형버스 주차 면적을 절반으로 축소될 계획인데, 밀려나는 수요를 수용할 대안이 없어 도리어 도로 혼잡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17일 서구와 대전시에 따르면 응급차량 통행을 위한 장태산 진입도로 확장 공사가 추진된다. 이 과정에서 1주차장 일부가 도로와 보행로로 편입돼 대..

충청권 2월 취업자 수 1년 전보다 5만9300명 늘었다
충청권 2월 취업자 수 1년 전보다 5만9300명 늘었다

충청권 2월 취업자 수가 1년 전보다 5만 9300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주력 산업인 제조업과 건설업의 동반부진으로 고용의 질적 회복은 향후 풀어야 할 과제로 보인다. 18일 충청지방데이터청의 '2월 충청지역 고용동향'에 따르면, 충청권 4개 시·도의 취업자 수는 322만 8100명으로 지난해 316만 8800명과 비교해 5만 9300명 증가했다. 지역별 취업자 수는 대전만 감소했고 세종·충남·충북은 모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우선 대전의 경우 취업자 수는 79만 59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4800명(-0.6%)..

`정부부처·위원회`의 세종시 이전… 6.3 지방선거 분수령
'정부부처·위원회'의 세종시 이전… 6.3 지방선거 분수령

이재명 정부가 해양수산부 외 정부부처의 추가 이전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지만, 후속 과제에 대해선 명확한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작년 1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주도로 상정된 성평등가족부와 법무부 등 수도권 잔류 중앙행정기관의 정부세종청사 이전 표류가 대표적이다. 지방시대위원회를 필두로 업무 효율화와 연관성상 이전이 시급한 대통령 및 총리 직속위원회 이전도 수년째 메아리가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0회 국무회의에서 "(해양수산부에 이은) 추가 정부 부처 분산은 없다"고 못 박으면서, 전라와 경..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도심 유휴공간, ‘스마트팜으로 대변신’ 도심 유휴공간, ‘스마트팜으로 대변신’

  • 사이버 선거범죄 ‘꼼짝마’ 사이버 선거범죄 ‘꼼짝마’

  • 신임경찰 경위·경감 임용식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내외 신임경찰 경위·경감 임용식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내외

  • ‘반려견과 함께’ ‘반려견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