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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 이런 낭만적인 수식어가 붙은 건 이례적이다. 총선이지만 전두환 시절에 가장 추운 날씨를 골라 '동토선거'로 불린 적은 있다. 대통령 파면과 연관 짓지 않더라도 '장미대선'이라는 혼성어(blending)는 어휘의미적으로 참 잘 지어졌다. 넝쿨 많은 장미대선의 가지치기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남았다. 경선에서 졌지만 안희정 충남지사나 이재명 성남시장은 차차기를 위한 '꺾꽂이'감으로 예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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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충식 논설실장 |
그렇게 보니 '결백'이 꽃말인 흰 장미는 어울리지 않을 듯하다. 장미, 그 순수의 모순(릴케)과 견주기에는 더군다나 사치다. 증거의 수많은 넝쿨들을 부인한다고 혐의가 가려질까. 그것은 '누구도 믿지 않지만 남들은 모두 믿을 거라고 믿는' 거대한 착각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또 생각한다. 왕의 행차를 구경하던 어린 안데르센이 “왕도 똑같은 인간이네!” 했다가 어머니 걱정을 끼친 일을 회상하며 끼워 넣은 동화 말이다. 권력 앞에 진실을 말 못하는 '우(愚)'를 비서진과 각료들에서 발견한다. 그들이 벌거벗은 임금님을 만들었다. 변호인들의 잘못도 크다.
세상이 바뀌었다. 늘 바뀌고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장미목욕을 했지만 배고픈 민족에게 벼꽃, 보리꽃, 옥수수꽃에 비교할 깜냥도 안 되던 장미가 이젠 대세다. 꽃의 왕 모란(목단)과 복숭아꽃, 살구꽃, 오얏꽃, 배꽃, 철쭉꽃, 진달래의 인기를 밀어냈다. 국민 선호도 1위가 장미임은 여론조사로 밝혀진 사실이다. 세상에 나온 2만6000종의 장미는 다양성의 다른 이름이다. 꽃말이 '불가능'인 파랑 장미 역시나 다양성의 산물이다. 단일한 시각으로 배신자이며 무자격자라고 침 튀기는 홍준표와 유승민, 거품일지 모를 지지율에 핏대 올리는 문재인과 안철수 진영에 양비론(兩非論)을 적용하지 않을 수 없다. 장미를 보고 깨닫는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언제든 적이 된다. 보수 궤멸 상태에서의 진보 진영 싸움 배후에 양자 대결을 키우려는 고도의 정치 셈법이 함께 숨어 있다. 마지막 변수라는 '반문 연대'마저 분열을 노린 복잡한 장미처럼 비쳐진다. 선거는 어쩔 수 없이 자기 집단 결속력을 중시하는 집단 애착(in-group love)의 행사로 흐른다. 느긋하고 흥겨운 봄꽃잔치는 아닐 것 같다. 그것이 또한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의 속성이다.
보기 나름이지만 장미가 꽃봉오리 맺힐 때 더 예쁠 수는 있다. 지금 보이는 희망이 그렇다. 꽃이 져도 예쁘고 썩어도 예쁘다는 지독한 장미 애호가도 봤다. 정치는 다르다. 역사를 통틀어 썩은 정치가 향기를 풍긴 적은 없었다. 독한 가시를 품은 국정농단자들의 병든 장미가 아닌 한국 정치를 살리는 찬란한 부활의 장미꽃을 보고 싶다. 대진표가 완성된 장미대선 감상법에 이런 마음까지 곁들인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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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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