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 칼럼]이명박(MB) 구속과 '카고 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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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칼럼]이명박(MB) 구속과 '카고 컬트'

  • 승인 2018-03-23 12:34
  • 신문게재 2018-03-23 21면
  • 최충식 기자최충식 기자
동부구치소
서울동부구치소 정문 전광판.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아이러니하다. SBB 화면 캡처
서울동부구치소에 구속 수감된 이명박(MB) 전 대통령을 보면서 곱씹어보는 심리학 용어가 '회상성 기억조작'이다. 자신에게 유리하고 필요한 방식으로 변형해 기억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것이 성립하려면 MB의 "새빨간 거짓말"주장이 무의식을 전제로 해야 한다. 거짓말이 의식적이었다는 점에서는 정확한 분석이 아닐 수도 있다.

그보다는 어느 유사종교를 떠올리는 게 좋겠다. 태평양 전쟁 때 격전지 섬들의 원주민들은 움막 앞에서 요상한 무기가 동원되는 전쟁을 구경했다. 그러다 정말 신비로운 체험을 한다. 거대한 회색 새들이 하늘을 날다가 너울거리는 천에 휩싼 카고(화물)를 땅에 내려뜨리는 광경은 외경심을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군들은 비행기에서 낙하산에 매달려 하강한 그 상자 속 통조림을 원주민들에게도 나눠줬다.



희한한 일은 종전 후에 일어났다. 사모아 제도에 천상의 먹거리를 기다리는 이상한 유사종교 바람이 불어닥친 것이다. 원주민들은 언덕바지에 활주로와 비행기 모형을 만들고 몸에는 문신 계급장을 새기며 장엄한 의식을 치렀건만 하늘에서 비처럼 음식을 내려주는 새가 출현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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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아 원주민들은 거대한 새(비행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하늘에서는 끝내 음식을 떨어뜨려 주지 않았다.
더 생각해보면 '카고 컬트'는 태평양 섬의 원주민만 빠져든 게 아니었다. 박정희 시대 향수로 귀환시킨 MB의 신화에 속아 징벌적 성격의 회고적 투표 행태도 원주민의 집단제의를 닮았을지 모른다. '경제에 실패한 대통령' 선거 프레임이 먹히던 17대 대선에서 포장된 샐러리맨 신화는 형형한 선거 전략일 수 있었다. 뭐든 노무현 탓, 올 벗(all but) 노무현 현상의 이항 대립이 지배했고 화물숭배 비슷한 것에 가려 이명박 특검법 같은 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때였다.



이제 조만간 영어(囹圄)의 몸이 될 MB를 보면서 내놓은 2007년 대통령 선거의 재해석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돈 욕심이 행동 동기인 물질주의자를 향한 숭배에 가까운 기대가 진짜를 보는 눈을 가려버린 사실만은 우리가 복기해둘 가치가 있다. MB는 '청렴이 대한민국을 바꾼다'는 표지석을 쓴 손으로 국가권력까지 동원해 사익을 챙겼다. 하찮고 소소한 오류만 건드렸던 검찰과 특검은 진정한 위험은 발견하지 못했거나 일부러 발견하지 않았다. 그때 놓쳐버린 기회 때문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불행을 1년 만에 또 겪게 되는 것이다.

MB 구속에는 이명박식 성공에 대한 포장된 신화, 왜곡된 언어의 감옥에서 우리가 탈출한다는 의미 부여도 할 수 있다. "여러분 이것 다 거짓말인 것 아시죠?" 거짓 유세에 BBK 주가조작 연루 등의 의혹이 수상쩍으면서도 한국 경제를 살린다는 말에 꽂혀 투표한 국민도 많았다. '다스가 MB 것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10년 전 수사 결과는 완전히 뒤집혔다. 끝까지 정치 보복으로 믿고 싶은 믿음에는 태평양 섬 원주민들의 허황된 화물의례, 카고 컬트와 닮은 구석도 있다. 더 이상은 기억과다, 기억착오, 기억상실, 그리고 기억조작 뒤로 숨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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