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얼마 만에 느껴보는 청량감의 환희인가! 전 국민을 긴장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던 태풍 '솔릭'이 별 탈 없이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 덕분에 이번 태풍은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불어오는 바람에서 가을의 선선함이 선뜻 묻어나는 때문이다. 솔릭은 저만치서 폭염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던 가을을 한반도로 끌고 왔다. 이제 가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지독하게 국민 모두를 괴롭혔던 무더위도 앞으론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도 삐뚤어진다"는 속담처럼 힘을 못 쓸 것이라 생각된다.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대전시 서구문화원 1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제20회 문화학교 작품전>을 구경했다.
지난 8월21일에 시작하여 27일까지 진행되는 이 작품전에는 한국화와 수채화, 유화와 서예 등의 작품 외에도 부채 등의 소품까지 아기자기해서 눈길을 끌고 있었다. 이 전시회의 모토는 공자(孔子)의 사상이랄 수 있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였다.
그에 걸맞게 무엇이든 열심히만 한다면 반드시 그 결실은 있음을 이 전시회를 보면서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평소 부러운 대상이 그림을 잘 그리는 분(화가)과, 낚시를 하는 사람(강태공)이다.
강태공(姜太公)은 주(周)나라 초기의 정치가이자 공신이다.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하였으며 제(齊)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본명인 강상(姜尙)이었던 그는 동해(東海)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집안을 돌보지 않아 그의 아내는 가출했다고 한다.
하루는 어떤 호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인재를 찾아 떠돌던 주나라 서백(주나라 문왕이 됨)을 만난다. 서백은 노인의 범상치 않는 모습을 보고 그와 문답을 통해 인물됨을 알아본다. 이어 주나라 재상으로 천거하여 등용되었다고 하는데 이를 보자면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과거에 근무하던 직장에서 사장님이 낚싯대를 선물로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낚시를 도통 할 줄 몰라 흥미를 느낄 수 없어 지인에게 주었다. 아무튼 문화학교 작품전을 구경하노라니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시가 떠올랐다.
그래, 이 청량한 가을바람을 위해 무더위는 그렇게 지독스레 까탈을 부렸나 보다. 가을 아욱국은 사위만 준다는 속담이 있다. 시장에 나가봐도 아직 아욱은 눈에 띄지 않는다. 지독한 가뭄 탓이다.
그러나 효자 태풍이 적당량의 비까지 선물로 뿌리고 갔으니 다음 주 쯤이면 아욱도 시장에 나올 듯 싶다. 가을은 이래저래 참 좋다. 박강수의 '가을은 참 예쁘다'를 듣고 싶다.
#2.
8월 24일 자 모 신문에서 흐뭇한 기사를 읽었다. '저는 미혼모의 아들, 기초수급자였습니다'라는 제목이었는데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과 다르다는 사실이 늘 저를 괴롭혔습니다. (전략) 오는 29일 서울대 후기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단상에 오르는 서울대 경제학부 박성태(25)씨는 사회과학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다.
(전략) 박 씨의 대학 생활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근로장학생으로 일했지만 생활비는 부족했다. (전략) "겨울에는 수도가 얼어 물도 안 나오는 단칸방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며 "내 현실은 암울해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씨는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복학 후 학교 심리상담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으며 달라졌다"고 했다. "익명 상담이라 제게 도움을 주신 선생님을 알 수 없지만 너무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팔불출 딸바보의 딸 자랑이랄 수 있겠지만 '팩트'의 강조 차원에서 글을 이어나간다. 딸이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건 지난 2010년 2월 26일이다. 8년이 지났으되 당시의 기억이 또렷한 건 그만큼 기쁨이 컸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감의 정서와 어떤 동병상련(同病相憐)이 교차했기에 이 기사를 눈 여겨 보게 되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박성태 씨와 나는 힘없는 을(乙) 군(群)에 속한 국민이(었)다. 때문에 그가 토로했듯 때론 죽고 싶었다는 고백 역시 허투루 들리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극단적 선택을 한 적도 실재한다. 그럼에도 지금껏 생존하는 까닭은 아들과 딸이 너무도 훌륭히 자라준 덕분이다. 나는 지금도 '내 삶은 보너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박 씨가 졸업도 하기 전 삼성전자 입사에 합격한 것 또한 평소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이 부분 역시 공감대가 형성되긴 하지만 생략키로 한다.
"배운다는 것은 물살을 거슬러 노를 젓는 것과 같다. 중지하면 뒤로 밀려난다." 영국의 작곡가였던 벤자민 브리튼 (Benjamin Britten)이 남긴 명언이다.
박봉과 격무임에도 늘 그렇게 을(乙)의 빈곤과 직장에서의 삼엄한 '시어머니들(잔소리 심한 직장 상사가 너무 많음을 이렇게 비유했다)' 거미줄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경비원의 딸로 태어났지만 딸은 결코 이를 부끄러워하거나 소위 '쫄지'도 않았다.
벤자민 브리튼의 주장처럼 늘 그렇게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 더불어 '책은 인생이라는 험한 바다를 항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남들이 마련해 준 나침반이요 망원경이다'는 철학 역시 신앙과 실천으로 삼았던 것이었다. 박성태 씨가 앞으론 '불행 끝 행복 시작'만 계속되길 응원한다.
#3.
대한민국의 고용상황 악화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이로 말미암아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와의 불화설까지 불거졌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며 선을 긋고 나섰지만 국민적 의구심은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야당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비판하면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외 청와대 수석과 현직 장관 등의 경질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고용상황 악화'라는 메가톤급 악재는 최저시급(임금)의 인상에서부터 이미 예견된 시한폭탄이었다.
설상가상 여기에 정부 주도의 주52시간 근무제 '강행'은 가뜩이나 힘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을 그야말로 벼랑 끝까지 몰아가는 단초로 작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가격이 껑충 뛴 식당과 술집엔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
편의점에선 알바 학생을 내보내고 주인과 그 가족들이 대신 일하는 풍경으로 자연스럽게 치환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문재인 정부의 어떤 경제적 불협화음을 보면서 만약에 지금 아들과 딸이 대학생이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서 알바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봉착했더라면 과연 어떤 현상이 빚어졌을까? 연상인 아들이 먼저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곤 공부와 병행하여 알바를 시작했다. 처음엔 고루하게(?) 식당 등지에서 서빙을 했으나 벌이가 시원찮음을 곧 발견했다.
그래서 이후론 비교적 시급이 센 택배 관련 일과 공사장의 야근경비까지 했다. 그렇게 고생을 한 덕분인지 아들은 지금도 생활력이 무척이나 강하다. 아들의 뒤를 이어 대학생이 된 딸은 하지만 알바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적극 막은 때문이다. "아빠, 저도 알바 할까 봐요." "왜? 용돈이 부족해서?" 그 즈음 대학교 새내기가 된 딸은 상경해서 서울대 기숙사에 있었다. 내가 매달 용돈을 보내준다고는 했으되 그 액수가 변변치 않았다.
따라서 딸은 아마도 그처럼 알바에 욕심을 부렸지 싶었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말끝을 흐리는 딸에게 나는 쐐기를 박았다. "너는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하고 있으니 굳이 알바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만약에 알바를 하다가 성적이 떨어지면 장학금도 날아가는 거야. 알았지?"
그랬다. 딸은 이후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도 장학금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대신에 나는 매달 용돈을 보내느라 적잖이 힘이 들었지만. '만약에'라는 가설(假說)이 전제되긴 하지만 딸이 알바를 했더라면 서울대를 수석으로 졸업하는 기쁨은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알바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대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장하성 실장이 살고 있는 서울의 어떤 아파트조차 경비원 감축 논의에 들어갔다고 한다. 일자리 창출은 고사하고 기존의 직장마저 잃게 되는 일은 결단코 없길 희망한다.
더욱이 경비원은 세상이 다 인정하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던가! 대학생에겐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가 통용될지 몰라도 경비원에겐 어림도 없는 일인 때문이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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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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