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셋으로도 안 되니 난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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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셋으로도 안 되니 난 어떡해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18-10-1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뵈오려 안 뵈는 임 눈감으니 보이시네.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되어 지이다.』



요즈음은 노산 이은상님의 양장시조가 머릿속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내 머릿속을 영주 안식처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가난한 남자한테 시집와서 심신 편할 날 없어도 그 착하고 다소곳한 얼굴엔 모나리자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아내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그 흔한 집 한 칸 없이 살아 여름날 방 비워 달라는 집주인의 말에 이삿짐을 싸느라 땀 뻘뻘 흘리던 아내의 또 다른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주민등초본을 떼보면 두 장 반 정도의 이사 경력이 집 없이 살았던 고생한 아내를 떠올리게 하여 가슴을 미어지게 하고 있다. 7남매 중 장남의 아내로서,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애들 남매의 엄마로서, 7남매의 형수·올케로서 1인 4,5 역 어려운 일 거뜬히 해내면서도 투정 한 마디 없었던 아내의 장한 모습에 고개가 숙여진다. 남편이라는 못난이는 고3 담임을 한답시고 학교와 학생밖엔 몰랐으니 4, 5인 역 그 숱한 일을 혼자 해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스러웠을까!



추석명절 대청소를 하다가 신발장 속을 들여다보았다. 등산할 때 사 준 별로 좋지도 않았던 아내의 등산화가 아직도 풀이 죽은 모습으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세상 다하는 날까지 기다려도 소용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날 울리고 있다. 이웃집 가사도우미도 다 가진 핸드폰 사 주니까 살림하는 가정주부가 뭐 필요하냐며 반품하던 알뜰쟁이의 인기척이 날 힘들게 하고 있다. 머리 아플 때면 이마라도 짚어주고, 지친 몸엔 십전대보탕이 좋다며 한약재 구해다가 달여 주던 아내가 눈앞에 얼씬거린다.

학생들 앞에 서는 선생님은 좋은 구두 신어야 한다며 내 구두는 메이커 제품 사다 놓고,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에겐 굽 없는 신발이 제격이라며 이름도 없는 싸구려신발만 신고 살았던 아내가 가슴 뻐근하게 하고 있다.

그 바쁜 시간 짬을 내서 한식요리 양식요리 다 배워 요리사 자격증까지 받았던 요리사 아내가 눈에 보인다. 팔보채며 궁중전골에 맛깔 나는 음식으로 구미를 돋워주던 아내의 자랑스러운 손놀림이 보인다. 한학에 능통한 팔순 할아버지 찾아다니며 천자문 명심보감 소학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사서삼경에 미쳐 있었던 아내의 책장 넘기는 소리가 또 들려오고 있다. 한문 좀 한다는 사람도 어려워하는 한자 1급 자격증까지 받았던 팔방미인 아내의 얼굴이 보인다. 붓글씨 쓰던 아내의 모습이 또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자신이 건강해야 가족들 잘 돌볼 수 있다며 짬 내어 요가 학원 다니던 억척스런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거기다 중국어회화 배우러 학원에 다니던 아내의 모습까지 숨었다가 나타난다. 독서하는 시간이 유일한 휴식시간이라며 주당 4권 안팎의 책을 필독도서처럼 읽던 아내의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리고 또 들려오고 있다. 이런 저런 아내의 모습이 눈에 삼삼하게 밟힌다. 둥그런 한가위 보름달만큼이나 클로즈업되어 나타난다. 무너져 멍든 가슴을 짓이긴 심술로 도리깨질한다.

숱한 고생 속에서도 온화한 모나리자 미소를 자신의 전유물로 살았던 그 얼굴을 못 본 지 어언 일곱 해를 뒤로했다. 시간 지나면 무뎌지겠지 했던 얼룩진 마음은 한으로 보고픔으로 도배질돼 가고 있다. 장님의 눈으로 사는 간절함에 하늘로 발걸음을 해 봐야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임은 세상 제일 먼 곳에 있지만 그림자처럼 함께했던 산책길에서도, 막히는 명절 귀향찻길에서도, 보신탕 좋아하시는 머리 허연 장모님 뵈러 갈 때에도 소경의 눈이 된 내 마음 다 앗아갔다.

어른거리는 임의 모습 꿈이라도 좋으련만 해도 해도 너무 한다. 매정한 모습으로 일관한다.

달랠 길 없는 마음에 TJB 교육대상 수상 때의 DVD영상자료를 재생시켰다. 아내의 영상과 육성은 다행히 그 속에 살고 있었다. 마이크 잡은 생생한 모습과 수상자 아내의 인사말에 눈시울은 벌써 기능을 잃었다. 무너진 가슴 또 찢어지고 있다.

응어리진 맘 달랠 길 없어 인터넷 내 블로그에 들어갔다. 아내의 흔적을 뒤적여 찾아냈다. 학생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위로가 됐던 아내의 편지 한 장이 나왔다.

「이제 여름이 시작인가 했는데 벌써 더위가 기승을 부리네요.

목요일까지만 덥다가 비가 오면 덜 더울 거예요. 세월이 하~~ 빠르니까 이 여름도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거 구만요. 당신 입맛이 없더라도 몸 생각해서 잘 드셔야 이 여름을 무사히 잘 보내지요.

요즈음 당신 머리 아픈 학생일로 무척 힘들어하고 고민도 많이 해서 보기에도 안타깝고 속이 상했는데, 해결이 잘 되었다니 참으로 다행이어요. 이제 더 이상 속 썩지 말고 편한 마음 가지세요.

당신 곁에는 언제나 우리가 있잖아요. 당신이 건강해야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할 수 있어요. 저는 당신이 내 남편이라는 사실이 행운이며 축복으로 생각합니다.

항상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내 곁엔 항상 감사한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늘 건강 하세요. 7월 8일 정오, 사랑하는 당신께

당신의 아내 성필모 드림.」

글을 보는 순간 때를 찾지 못하던 눈시울의 액체가 왈칵 쏟아졌다. 감당하기 어려웠던 감정이 때를 만난 것처럼 응원하며 발산했다. 흑흑 소리가, 눈에서 나오는 액체와 합세를 했다. 북받치는 감정엔 나이도 체면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시원하게 울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보고픔과 허전감을 달래볼 궁리를 했다. 그것은 바로 아내의 친구를 만나보는 걸로 대리만족을 하려는 것이었다.

아내는 초등학교 죽마고우 셋이 있는데 하나는 대전, 둘은 서울서 사는 것을 생각해냈다. 마침 폰에 번호가 입력돼 있었다. 연락해 보았다.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맞는 번호가 하나도 없었다. 딸애한테 말하여 도움을 받았다. 마침 꼼꼼한 딸이, 저의 엄마 친구 집전화 번호를 입력한 것이 있어 전화를 했다. 천우신조였을까, 집 전화번호는 변동이 없었다. 전화로 아내친구들에게 간절한 마음을 사심 없이 털어놓았다. 세 분 모두가 마음을 열어주어 고마웠다. 8월 3일 한정식 집에서 만나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 자리에 딸과 사위, 외손녀 다인이도 데리고 갔다.

근황 얘기와 지난 이야기에 취해서 모두들 눈시울이 붉어졌다. 보고팠던 아내의 얼굴을, 아내가 좋아했던 아내의 친구 얼굴들에서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세 얼굴 누구의 것에도 아내는 없었다. 세 얼굴에서 아내의 체취라도 느껴보려 했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대리만족이란 단어가 무용지물로 느껴졌다. 액체로 젖어드는 동자를 자리매김하기가 어려웠다. 사방에서 보내는 안타까움의 눈초리로 위로 받는 것이 부끄러웠다.

식탁 주변에서 일제히 보내는 안타까움의 그렁그렁한 눈초리가 어루만짐으로 오는 것 같았다. 내 동자는 어디로 피신해야할지 향방을 못 찾고 있었다.

아내의 특별한 마음을 담아 <한살림>의 아카시아 꿀 한 병씩으로 귀한 세 분께 고마움을 표했다. 잠시 후에 롯데시네마에 가서 <인천상륙작전> 영화관람권 세 장으로 하늘의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라고 했다.

기대에 부풀었던 대리만족은 모두 허사가 되었다.

'셋으로도 안 되니 난 어떡해!'

이젠, 임 보내고 하루도 쉬지 않은 매일새벽 기도와 연도로써 못 다한 마음을 달래야겠다.

「있을 때 잘해!」라는 평범한 한 마디가 세인들의 마음에 촌철살인의 경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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