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기의 행복찾기] 정리하는 일

  • 오피니언
  • 여론광장

[박광기의 행복찾기] 정리하는 일

박광기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9-07-12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819935068
게티 이미지 뱅크
매일 아침 출근해서 연구실에 들어서면 늘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연구실에 쌓여 있는 각종의 서류와 학술잡지를 비롯해서 너무나 많은 잡동사니가 널려져 있어서 대대적인 정리를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매일 정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정리를 하지 못하고 지낸지가 수년은 된 것 같습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또 한 곳에 모아둘 것은 모아두어야 하는데, 그냥 여기저기 쌓여있고 흩어져 있으니 어수선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이미 어수선한 것에 매일 또 다른 서류와 서적과 잡동사니가 더해져 연구실은 거의 포화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원래 물건이나 서적 그리고 집동사니를 이렇게 치우거나 정리하지 않고 쌓아 놓는 습성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매일 새로운 일이 생기고 그 일을 하다보면 사실 정리하거나 치울 시간이 없어 물건이나 서적을 하나 둘씩 쌓아두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쌓아둘 곳조차 없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쌓이는 것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닙니다. 소중한 물건이나 취미로 모으는 어떤 물건이나 소장품들이 쌓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물건들이 쌓이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물이나 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지식이 쌓이는 것은 누구나가 바라는 일입니다. 물론 돈이나 재물 그리고 명예 등이 쌓이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식, 명예, 재물과 같은 가치 있는 것들을 쌓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어떤 분들은 이런 것들을 쌓아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기도 합니다. 그러나 연구실에 정리가 되지 않고 널려 있는 물건들이 쌓여 가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닙니다. 이런 물건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정리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보관해야 할 것들은 정돈해서 보관해야만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매일 아침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마주치는 버리고 정리해야 할 것들을 보면서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실행하기는 또한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를 해야 하는 것들이 연구실에 널려 있는 것들만이 아닙니다. 그 동안 살아 온 삶을 돌아보며 옳지 않은 것들은 물론이고 의미 없이 무심코 해 오던 나쁜 습성이나 악습도 정리하고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 학생들과 함께 한 수업내용이나 연구한 결과들도 정리해서 발표해야 하고,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면서 써 놓은 수많은 글들도 정리를 해야 합니다. 또 개인적으로 수년전부터 조금씩 준비했던 정년이후의 계획들을 실행하기 위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할 것들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버리고 정리할 것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정리를 시작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우선 먼저 연구실에 쌓여가는 물건이나 서적들을 정리하는 것조차도 막상 출근해서 해야 할 일들을 하다보면 시간을 놓치고 지나가 버리니 말입니다.

어찌 보면 '정리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용기와 결단이 없이는 정리해서 버릴 것을 골라내는 것조차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막상 정리를 하다보면, 정리하기 전에 버릴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아깝기도 하고 나중에 필요한 것 같아서 버리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후에 필요한 것 같아 모아 두어도 사실 그것을 다시 사용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나중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쓸모없는 그리고 다시는 쓰지 않는 물건들로 되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결국 쓸모없는 물건들만이 모인 박물관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버릴 것을 골라내서 버릴 수 있어야 하는데 버리지 못하는 것도 나쁜 습성입니다. 이런 습성부터 버려야 하는데 대부분 그 습성을 버릴 수 있는 용기나 결단이 없습니다.



버릴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나 결단은 다른 의미에서 보면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과도 같습니다. 비우고 버리고 정리하고 나면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버리지 못하고 비우지 못하고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정말 쓸모없고 하찮은 것들이 쌓여서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이나 여유, 그리고 용기와 결단이 생기지 않습니다. 버리지 못하고 비우지 못하고 정리되지 않은 과거가 현실을 뒤덮고 새로운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게 막아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새로운 것들이 반드시 좋고 올바른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과거에 쌓아 놓은 것들을 기초로 해서 더 튼튼한 미래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기초가 되는 과거의 것들이 부실하고 버려야 하는 쓸모없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면, 그 기초는 쉽게 무너져 버리게 될 것입니다.

요즘 '예전에는 이렇게 했는데……'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번 학기가 시작되면서 맡은 학내 보직을 수행하면서 제도적으로 그리고 행정적인 변화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과거에 해왔던 일들이 잘못되었거나 오류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고려하여 변화가 필요할 경우에는 과거의 관행적 행위들에 대해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할 것은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이런 변화에 대해서 적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변화 역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관행적인 행위로 되어서 또 다시 버려야 하고 정리해야할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버려야 하는 것이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 현재 버리고 정리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정리하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과거의 관행이라는 틀 속에 갇혀버릴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것을 찾고 효율적인 그리고 합리적인 생각과 일을 위해서는 과거의 관행적인 것들을 과감하게 버려야 하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정리를 해야 할 것은 정말 너무도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버릴 것을 버리고 정리해야 하는 것에는 용기와 결단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버리고 정리해야 할 것을 제때 하지 못하면 쌓이고 쌓여서 결국 버리지 못하고 정리하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것은 비우고 버리고 정리해서 여유와 공간이 마련되어야만 가능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 반드시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할 것은 정리를 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망각하곤 합니다. 정말 무엇을 버리고 정리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실천에 옮겨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주말에는 정말 정리를 시작해야겠습니다.

행복한 주말되시길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박광기교수-220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2026년 부동산 제도 달라지는 것은?
  2. 李대통령 대전충남 與의원 18일 만난다…통합 로드맵 나오나
  3. 대전에 고성능 AI GPU 거점센터 구축... 글로벌 AX 혁신도시 거듭
  4. "내년 대전교육감 선거 진보 단일후보 필요"… 대전 시민단체 한목소리
  5. "초고압 송전설로 신설 백지화를" 대전시민단체 기자회견서 요구
  1. 대전권 9개 대학 주최 공모전서 목원대 유학생들 수상 영예
  2. 박정현 "기존 특별법, 죽도 밥도 안돼"… 여권 주도 '충청통합' 추진 의지
  3. 충남개발공사 '고객만족경영시스템' 국제표준 인증 획득
  4. [부고]김창세 세무사 빙모상
  5. 대청호 조류경보 발생 139일만에 전부 해제

헤드라인 뉴스


李 "내년 지선 때 대전 충남 통합 단체장 뽑아야"

李 "내년 지선 때 대전 충남 통합 단체장 뽑아야"

이재명 대통령은 18일 대전 충남 통합과 관련 "다가오는 지방선거에 통합된 자치단체의 새로운 장을 뽑을 수 있게 중앙정부 차원에서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행정 조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더불어민주당 대전 충남 의원들과 가진 오찬에서 "수도권 과밀화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시·도간) 통합을 고려해 봐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에서 전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청권 최대 이슈로 떠오른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해 국정 최고책임자가 사실상 전폭 지원사격을 약속한..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 성료… 퀴즈왕 주인공은?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 성료… 퀴즈왕 주인공은?

청양 목면초등학교 4학년 김가율 학생이 2025 충남 재난 안전 퀴즈왕에 등극했다. 충청남도, 중도일보가 주최하고, 충남교육청, 충남경찰청이 후원한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이 18일 예산 윤봉길체육관에서 열렸다. 이번 골든벨은 충남 15개 시군 퀴즈왕에 등극한 학생 및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이 모여 충남 퀴즈왕에 도전하는 자리로, 272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행사엔 전형식 충남도 정무부지사, 남도현 충남교육청 기획국장, 김택중 예산부군수,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 최재헌 중도일보 내포본부장 등이 참석해 퀴즈왕..

충남 천안·보령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잇따라 발생
충남 천안·보령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잇따라 발생

충남 천안과 보령 소재 산란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H5형)가 잇따라 발생했다. 충남도에 따르면 17일 충남 보령시 청소면, 천안시 성환읍 소재 농장에서 폐사가 증가한다는 신고가 접수돼 동물위생시험소가 확인에 나섰다. 충남 동물위생시험소가 18일 확인한 결과, H5형이 검출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고병원성 여부 검사를 의뢰했다. 검사결과는 1~3일가량 소요될 예정이다. 성환읍 소재 농장은 과거 4차례 발생한 사례가 있고, 청소면 농장은 2022년 1차례 발생한 바 있다. 현재 성환읍 소재 농장에서 사육 중인 가금류 22..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