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눈과 귀만을 믿어서야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수필 톡] 눈과 귀만을 믿어서야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20-06-0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갈마동 사는 개구쟁이 꼬마 보식이와 그 친구 철민이가 놀다가 싸움을 했다.

보식이는 욕심 많은 심술쟁이였지만 힘이 약한 어린이였다.

철민이는 평소 말이 적은 편이었지만 의리도 있고 힘도 있는 같은 또래였다.

보식이는 옆집 보미의 손에 쥐어 있는 복숭아가 먹고 싶어 슬금슬금 접근을 했다.



갖은 유혹을 해 보았지만 보미는 주지 않았다. 궁리 끝에 보식이는, 보미가 한눈파는 사이에 복숭아를 낚아채 달아났다. 보미가 울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의리의 사나이 철민이가 쫓아가서 복숭아를 빼앗아 보미에게 주었다.

씩씩거리기만 하던 보식이가 철민이에게 대들었다.

철민이는 주먹으로 보식이를 한 번 쳤다. 보식이 눈두덩 위가 퍼렇게 멍들었다.

보식이가 엄마한테 달려가 일렀다. 보식이는 거짓말을 했다. 철민이가 이유도 없이 보식이 복숭아를 빼앗아 갔고,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고 울면서 소리까지 질렀다.

아들 눈두덩 위 퍼런 멍을 본 엄마는 화가 났다. 엄마는 보식이 말만 듣고 철민이만 일방적으로 혼내고 있었다. 철민이는 분하여 울고 있었다. 슈퍼마켓에서 나오던 철민이 엄마가 그걸 보았다. 동시에 두 엄마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 것이었다.

싸우게 된 동기는 보식이의 눈두덩 위 퍼런 멍이었다. 아들 말만 듣고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보식이 엄마 때문이었다.

보고 들은 것만 가지고 진위를 가리는, 아니, 시비를 가리는 싸움이 된 것이었다.

보고 들은 것만 가지고 따지는 두 엄마 싸움을 보고 '키몬과 페로'라는 미술 작품이 떠올랐다. 지금부터 '키몬과 페로' 작품 이야기를 통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립미술관 입구에는 벗다시피 한 노인이, 노출된 젊은 여인의 젖가슴을 빨고 있는 그림이 걸려 있다.

이 그림은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의 작품으로, 제목은 키몬과 페로(cimon and pero)이다.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그린 세계적인 명작으로 평을 받고 있다.

미술관에 들어서다가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개가 당혹스러워한다.

실화 내용을 제대로 모르고 감상하는 사람들은, 딸 같은 여자(페로)와 놀아나는 노인(키몬)의 부적절한 애정행각을 그린 작품이라며 불쾌한 감정을 표출하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포르노 같은 그림이 국립미술관의 벽면을 장식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실화 내용을 알고 있는 그 나라 국민들은 이 그림 앞에서 숙연해진다.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커다란 젖가슴을 고스란히 드러내놓고 있는 그 여인은 노인의 딸이다.

검은 수의를 입은 노인은 젊은 여인의 아버지이다. 그림의 주인공인 키몬은 푸예르토리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애국자였다.

그는 노인이었지만 나라 사랑의 마음으로 의미 있는 운동에 참여했다가 국왕의 노여움을 사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국왕은 그를 교수형에 명하고 교수형이 집행될 때까지 아무런 음식도 갖다 주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음식물 투입금지로 노인은 감옥에서 서서히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은 딸은 해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감옥으로 갔다. 아버지의 임종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아버지를 바라본 순간. 물 한 모금도 못 먹고 퀭한 눈의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아버지의 가련한 모습을 바라보는 딸의 눈에는 핏발이 서는 것이었다.

굶어서 돌아가시는,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아버지 앞에서 무엇이 부끄러웠겠는가.

여인(딸)은 아버지를 위해 가슴을 풀었다. 그리고 불은 젖을 아버지 입에 물렸다.

이 노인과 여인의 그림은 부녀간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애국심이 담긴 숭고한 작품이었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이 그림을 민족혼이 담긴 '최고의 예술품'으로 자랑하고 있다.

하나의 그림을 놓고 어떤 사람은 '포르노'라 비하하기도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성화'라고 격찬하기도 한다. 같은 작품을 놓고 지옥과 천국을 말하는 평 같아서 안타깝기만 하다.

'노인과 여인'에 관한 실질 상황을 모르고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은 본질을 알지 못하는 데서 폄하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그림 속에 담긴 본질을 알게 되면 눈물을 글썽이는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

어쩌면 우리 사람들은 진실을 알지 못하는 현상적인 눈과 귀로, 보이고 들리는 것만으로 판단을 내릴 지도 모른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려 놓는 격이 되는 것이다.

감상자의 무지의 소치로 호랑이 그림을, 고양이 그림이라 하는 식이어서야 되겠는가!

귀와 눈만을 믿어서야!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니다.

사실과 진실이 등식 관계가 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실과 진실은 상수관계도, 함수관계도 아닌, 비밀스런 본질로 숨 쉬며 그 존재 가치를 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남에게 속고 사기당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무지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사실도 알아야겠다.

진실을 알면 눈에 보이는 대상이 제대로 보인다. 세상을 바로 보는 안목도 생긴다.

우리는 보고 듣는 것에 너무 의존하여 눈과 귀에 속는 둔치는 되지 말아야겠다.

호랑이의 그림을, 고양이 그림으로 보는 식의 무지의 소치를 범하지는 말아야겠다.

그림감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눈과 귀만을 믿어서야 !

보식이, 철민이 엄마가 얼굴 위 퍼런 멍만 보고, 애들 말만 듣고 싸운 것도 눈과 귀만을 믿은 것이었다.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니다.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KINS 기밀 유출 있었나… 보안문서 수만 건 다운로드 정황에 수사 의뢰
  2. 이진숙 교육장관 후보자 첫 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립대·지방대와 동반성장"
  3. '개원 53년' 조강희 충남대병원장 "암 중심의 현대화 병원 준비할 것"
  4. [춘하추동]새로운 시작을 향해, 반전하는 생활 습관
  5. 수도권 뒤덮은 러브버그…충청권도 확산될까?
  1. 법원, '초등생 살인' 명재완 정신감정 신청 인용…"신중한 심리 필요"
  2. 3대 특검에 검사 줄줄이 파견 지역 민생사건 '적체'…대전·천안검찰 4명 공백
  3. 33도 폭염에 논산서 60대 길 걷다 쓰러져…연일 온열질환 '주의'
  4. aT, 여름철 배추 수급 안정 위해 총력 대응
  5. 세종시 이응패스 가입률 주춤...'1만 패스' 나오나

헤드라인 뉴스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이재명 정부가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보수야권을 중심으로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충청권에서만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행정수도 완성 역행과 공론화 과정 없는 일방통행식 추진되는 해수부 이전에 대해 비(非) 충청권에서도 불가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원내 2당인 국민의힘이 이 같은 이유로 전재수 장관 후보자 청문회와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등 향후 정치 일정에서 해수부 이전에 제동을 걸고 나설 경우 이번 논란이 중대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전북 익산 출신 국민의힘 조배숙..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이재명 정부가 민생 회복을 위해 지급키로 한 소비쿠폰이 전액 국비로 지원된다. 이로써 충청권 시도의 지방비 매칭 부담이 사라지면서 행정당국의 열악한 재정 여건이 다소 숨통을 틀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일 전체회의를 열어 13조2000억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관련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행안위는 이날 2조9143억550만원을 증액한 2025년도 행정안전부 추경안을 처리했다. 행안위는 소비쿠폰 발행 예산에서 중앙정부가 10조3000억원, 지방정부가 2조9000억원을 부담하도록 한 정부 원안에서 지방정..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과 충남의 스타트업들이 정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대거 선정되며, 딥테크 기술창업 거점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1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2025년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전국 197개 기업 중 대전·충남에선 33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는 전체의 16.8%에 달하는 수치로, 6곳 중 1곳이 대전·충남에서 배출된 셈이다. 특히 대전지역에서는 27개 기업이 선정되며, 서울·경기에 이어 비수도권 중 최다를 기록했다. 대전은 2023년 해당 프로젝트 시행 이래 누적 선정 기업 수 기준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