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줄서기를 강요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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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줄서기를 강요하는 사회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 승인 2020-08-10 08:09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양성광이사장
양성광 이사장
미·중의 갈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전략과 맞물려 경제·외교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 패권을 차지하려는 G2의 야욕은 주변 국가들에 자기편에 설 것을 강요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은 우리 수출국의 1, 2위를 차지하고 있어 둘의 충돌은 한국에 진퇴양난의 어려움을 주고 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외교 관계에서 이런 압박은 역사적으로 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 가상공간에서는 개인한테도 줄서기를 강요한다. 인터넷에는 자신과 다른 주장을 펼쳤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한 인신공격과 욕설을 서슴지 않는 이도 많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네티즌 수사대를 동원해 주변 사람들까지 찾아내 집단으로 린치를 가한다.

이런 문제는 SNS 등 가상공간이 늘어나며 생기는 폐해다. 인터넷에서는 익명의 장막에 숨어 지킬박사 대신 하이드가 활개 친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툭 던진 댓글 하나가 어떤 이에게는 육체적인 폭력보다 더 큰 고통이 된다. 때론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만든다.

정치를 다루는 SNS 또는 1인 미디어는 어느 한쪽 편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들려주며 ‘찐팬’을 늘린다. 정치인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그들을 비난함으로써 찐팬에게 통쾌감을 준다. 이런 자극에 취한 사람들은 사이트를 다시 방문해 더 거친 발언을 요구하고, 그것을 반복해 들으면서 행복해한다. 이들은 자기편만 옳다는 신념이 충만한 집단을 이루어 인터넷 공간에서 몰려다닌다.

이들은 모든 사람을 자기편과 상대편으로 나누고, 내 편은 무조건 옳고 네 편은 무조건 틀렸다는 이분법적 진영논리를 편다. 내 편 사람이라도 다른 의견을 내면 변절자로 치부하여 공격을 퍼붓는다. 진영과 소신이 다를 때 개인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침묵하는 것이다. 쉽게 상처받는 여린 사람들은 이편저편에 속하지도 못하고 겉돌며 ‘눈팅’만 하고 지낸다. 반면에 누가 뭐라던 신경 쓰지 않는 강심장은 진영의 보스처럼 제 하고 싶은 대로 사이다 발언을 하면서 팬심을 맘껏 즐긴다.

사실 내 편도, 네 편도 아닌 '말 없는 편'이 더 많을 텐데, 가상공간에서 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 신세다. 대신 가짜뉴스를 그럴듯한 이야기로 바꿔놓는 진영 논리만 가득하다. 듣고 싶은 것만 듣기를 원하는 자에게 진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홈페이지 마스터가 이끄는 대로 팬덤(열성 팬)을 형성해 자극적인 발언과 사진, 영상 등을 퍼 나르고 공유한다.

다양성이 경쟁력인 세상인데, 사회가 점점 둘로 갈라지고 있다. 다행히 아직 현실사회에서는 이성으로 작동되는 집단지성이 건전한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서 가상공간에서의 다양성을 확대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가 정말로 두 쪽 날 수도 있다.

지난 7월 발생한 오바마, 빌 게이츠 등 유명인의 트위터 계정 해킹에 대해 보안 전문가들은 돈의 목적보다는 개인정보를 탈취해 11월 미국 대선에 악용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플랫폼도 이처럼 보안에 취약한 상황이니 가상공간의 정보는 언제든지 허구일 수 있다. 사악한 무리가 나쁜 마음을 먹고 AI와 해킹으로 가상공간을 유린한다면 가상공간은 물론 현실사회까지 대립의 장으로 치닫게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오랜 갈등조정과 타협의 시기를 거쳐 오늘의 성숙한 사회가 형성되었듯이 품격 있는 인터넷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지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불법 유해정보의 유통규제강화 등 제도마련에 노력하고, 언론은 SNS의 주장에 대한 비판적 분석보도 등 공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민간에서는 네이버의 댓글실명제 같은 플랫폼의 자정기능을 강화하고, 선플달기 운동, 인터넷 윤리교육 등 노력을 확대해야 한다.

가상공간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고, 다양한 생각의 사람들이 객관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 사회를 기대해 본다.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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