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직책과 직분의 자부심 '성세창 제시 미원계회도'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직책과 직분의 자부심 '성세창 제시 미원계회도'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0-09-2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바와 다르지 않다. 조선왕조실록 역시 연산군을 최악의 왕으로 기록하고 있다. 법을 함부로 고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국법 자체를 부정하고, 자신만의 향락 추구에 모든 역량을 동원한다. 본인 뜻에 어긋나면 모두 죄가 된다. 노래 부르는 데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국문하며, 심지어 효도가 지나쳐 괴이하다고 사형에 처하기도 한다. 억울하게 참살되고 옥살이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으랴. 그의 언행 하나하나가 참으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이에 문무백관이 거사를 일으킨 것이 중종반정이다.

역사는 중종반정이라 쓰고 있으나 중종은 즉위 시 한 일이 없다. 등 떠밀려 용상에 앉은 것이 전부다. 근정전에서 즉위, 백관의 하례를 받는다. 천인공노할 죄인이 아닌 사람은 모두 사면하고 풀어준다. 성균관을 바로잡고 삼사(三司 :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기능 복원으로 새 시대를 열고자 한다. 연산군 재위 시 뭉개지고 엉터리로 만들어진 잘못된 법을 바로잡는다.

삼사는 언론기관이다. 언론은 단순소통뿐 아니라, 이상 정치 구현을 위한 간쟁과 인사, 정치에 관여하는 참정기관으로 경연과 서연에 입시하거나 호종하는 시신(侍臣), 관원의 임명이나 입법 및 제도의 시행에 참여하고 서명하는 서경(署經), 임금의 교지로 법령을 집행하며 관리의 잘못을 규찰하는 법사(法司) 기능을 말한다. 감찰 기관으로 탄핵을 맡았던 곳이다. 왕권이나 신권의 독주를 막고 균형있는 정치가 되도록 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19살에 즉위한 중종은 반정 공신에 둘러싸여 아무 일도 소신 있게 할 수 없었다. 왕을 강제 이혼시키는 등 반정 공신의 횡포 또한, 만만치 않았다. 대부분 연산군 휘하에서 국록을 먹지 않았는가? 국정 혼란이 지속 되었다. 10여 년이 지나자 박원종, 유순정, 성희안 등이 죽어 겨우 숨이라도 편히 쉴 수 있었다. 누구라도 일을 잘 해보고 싶지 않겠는가? 이때 등장한 사람이 조광조(趙光祖, 1482 ~ 1519, 조선 문신)이다.



국가 조직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특정 세력에 좌우되는 난국에 삼사 또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국왕 심기를 살피느라 오히려 언론 탄압에 앞장선다. 조광조는 1515년 사간원 정언으로 제수 된다. 첫 출근과 함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간원과 사헌부 대간 전원을 파직하라는 상소를 올린다. 군주 포함 백관의 격론이 이어지나 결국, 양사 대간 모두가 파직된다.

조광조는 원래 탁월한 학문과 반듯한 행실로 주목받던 인물이다. 실력뿐만 아니라 청렴결백했다. 국왕과 왕실까지 바른 생활을 요구하며 도덕성 회복을 주장하는 한편, 거침없는 개혁으로 국정 중심에 선다. 출사 3년 만에 언관 최고 관직인 대사헌에 오른다.

너무 많은 중종반정 정국공신(靖國功臣)도 문제였다. 그중에는 아무런 공이 없는 가짜 공신도 부지기수였다. 조광조가 그냥 지나칠 리 없다. 1519년 정국공신 개정에 앞장선다. 117명 중 76명이 개정 대상이었다. 반발세력이 없을 수 있겠는가? 주초위왕(走肖爲王) 등 모함과 왜곡이 있었다. 중종은 개정 허락 이틀 만에 영을 거두고 붕당 죄로 조광조 일파를 잡아들인다. 이것이 기묘사화(己卯士禍)이다.

조광조는 왕도정치(王道政治) 실현으로 요순시대 같은 이상 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다. 물거품으로 끝났으나, 훗날 그의 도학정신과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기개는 선비와 관료의 길라잡이가 되었다.

중종은 성정이 몹시 우유부단했던 모양이다. 재위 시 조광조 제외, 대부분 기묘 사림이 복관 된다. 당시에도 언론 자유와 정론 위력이 세간에 깊이 인식되었다. 더구나 삼사의 대간은 임금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선배의 기개에 깊이 고무되었다. 그런 긍지와 자부심이 담겨있는 그림이 전한다.

그림
조선 1540년. 작자미상. 세로 93㎝ × 가로 61㎝. 1축. 비단에 수묵. 국유
전하는 계회도 중 필자가 본 가장 오래된 것은 1531년 작 미원계회도이다. 미원(薇垣)은 사간원의 별칭이다. 당시 계회는 자연에서 호연지기를 키우는 선비의 풍류였다. 계회도는 대부분 삼단으로 구성되어있다. 상단에 제목이 있고, 중간에 그림이 있으며, 하단에 참석자가 적힌 좌목(座目)이 있다.

보물 제868호로 1540년 작인 '성세창 제시 미원계회도(成世昌題詩薇垣契會圖)'를 보자. 상단에 전서체로 미원계회도(薇垣契會圖)라 쓰여있고, 그 아래 성세창 제시가 적혀 있다. 손상이 심해 판독이 난해하다. 시와 함께 그림이 있고, 그 아래 좌목이 있다. 이름만 쓴 것이 아니다. 직책이며 본관, 부친에 대한 사항까지 적어 놓았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함께했는지 한 번 볼래? 뭐 이런 식이다. 자기 직무에 대한 자부심 아닐까?

어느 법제고 완벽할 수 없다. 오남용이 나오고 허점이 있게 마련이다. "저는 그 어떤 역경 앞에서도 원칙을 지켜왔습니다"라고 항변을 들었다. 그럴지 모른다. 문제는 그 원칙의 기준이 서로 다르다는 데 있다. 말장난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진정한 자부심과 긍지로 살아남을 처신을 고민하는 것은 어떨까?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구도동 식품공장서 화재…통영대전고속도로 검은연기
  2. 유성복합터미널 공동운영사 막판 협상 단계…서남부터미널·금호고속 컨소시엄
  3. 11월 충청권 3000여 세대 아파트 분양 예정
  4. 대전권 대학 대다수 기숙사비 납부 '현금 일시불'만 가능…학부모 부담 커
  5. 김장 필수품, 배추와 무 가격 안정화... 대전 김장 담그기 비용 내려가나
  1. 대전교육청 교육부 시·도교육청 평가 '최우수'
  2.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전국 신청률 97.5%… 충청권 4개 시도 평균 웃돌아
  3. 대전대 박물관, 개교 45주년·박물관 개관 41주년 기념 전시회 개최
  4. ‘여섯 개의 점으로 세상을 비추다’…내일은 점자의 날
  5. 최고 1436% 이자 받아챙긴 40대 대부업자 실형

헤드라인 뉴스


CTX 민자적격성조사 통과… 충청 광역경제권 본격화

CTX 민자적격성조사 통과… 충청 광역경제권 본격화

대전과 세종, 충북을 통합 생활권으로 연결하는 대전~세종~충북 광역급행철도(CTX) 사업이 민자적격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 추진이 본격화 됐다. 4일 국토교통부와 대전시에 따르면 비수도권 최초의 광역급행철도인 대전~세종~충북 광역급행철도(CTX) 사업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민자적격성 조사를 통과했다. 민자적격성 조사는 정부가 해당 사업을 민간투자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절차다. 이번 통과는 CTX가 경제성과 정책성을 모두 충족했다는 의미로 정부가 민간 자본을 유치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

11월 13일 수능 당일 8시 10분까지 입실해야… 모바일 신분증 `불가`
11월 13일 수능 당일 8시 10분까지 입실해야… 모바일 신분증 '불가'

13일 열리는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당일 수험생은 8시 10분까지 시험실에 입실해야 하며 반드시 수험표와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단 모바일 신분증은 인정되지 않으니 주의가 요구된다. 교육부는 4일 이 같은 내용의 수험생 유의사항을 안내했다. 교육부는 수험생들을 향해 수능 하루 전인 12일 예비소집에 반드시 참여해 수험표를 수령하고 시험 유의사항을 안내받을 것을 당부했다. 수험표에 기재된 본인의 선택과목을 확인해야 하며 시험 당일 시험장을 잘못 찾아가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위치를 파악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 시험 당..

與野 대표 대전서 맞불…지방선거 앞 충청표심 잡기 사활
與野 대표 대전서 맞불…지방선거 앞 충청표심 잡기 사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약 7개월 앞두고 여야 지도부가 잇따라 대전을 찾아 충청 민심 다지기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4일 한남대에서 특강을 했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5일 대전시청에서 예산정책협의회를 주재하는 등 충청권에서 여야 대표가 맞불을 놓는 모양새다. 거대 양당 대표의 이같은 행보는 내년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금강벨트에서 기선을 잡기 위한 전략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5일 대전시청에서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를 열고 내년도 국비 확보 현황과 주요 현안을 점검한다. 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돌아온 산불조심기간 돌아온 산불조심기간

  • 전국 최고의 이용기술인은? 전국 최고의 이용기술인은?

  • 빨갛게 물들어가는 가을 빨갛게 물들어가는 가을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