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홀로서기와 새로 시작하기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홀로서기와 새로 시작하기

양성광 혁신과경제연구소장

  • 승인 2021-05-31 08:19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양성광이사장
양성광 소장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와 퇴직으로 일상이 되어버린 ‘집콕’ 생활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다. 오늘도 리모컨과 휴대폰을 양손에 장착하고, 소파에 길게 누워서 TV 채널과 넷플릭스 영화, 인터넷 서핑을 넘나들며 시간을 죽이고 있다.

문득 30여 년 전 미국 유학 시절이 떠오른다. 바쁜 와중에도 주말에는 꼭 DVD 영화 한두 편은 봐야만 다음 한 주를 견뎌낼 수 있었다. 당시에 배우 로버트 드니로와 로빈 윌리엄스는 이들이 주연한 영화라면 따지지도 않고 볼 정도로 좋은 영화에 많이 출연했었다. 이제는 유튜브 등에 볼거리가 다양해졌고, 선택의 폭도 넓어졌지만, 여전히 그들의 영화는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

배우는 영화와 같은 삶을 산다고 했던가. 로빈 윌리엄스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처럼 사람들을 일깨우는 좋은 영화를 많이 남겼지만, 우울증과 치매로 고생하다가 영화 속 제자 닐처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반면에 로버트 드니로는 2020년도 오스카상을 놓고 기생충과 경쟁한 아이리시맨에 출연하는 등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드니로는 2015년 72세 나이에 출연한 영화 '인턴'에서의 멋진 주인공 벤이 정말 그의 삶인 것처럼 느껴지는 매력적인 배우다. 영화에서 70세 벤은 30세 여성 CEO 줄스가 운영하는 온라인 패션몰 회사의 시니어인턴 프로그램에 합격해서 줄스의 개인 인턴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줄스는 처음엔 벤을 탐탁지 않아 하지만, 벤의 연륜에서 나온 노하우와 지혜로 어려움을 여러 번 극복하면서 그와 절친이 되고, 남편의 외도와 회사의 위기를 극복한다.



어찌 보면 평범할 것 같은 스토리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한 줄스의 패션몰 회사 건물이 과거 벤이 부사장까지 오르며 40년간 근무했던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회사 건물이었다는 것이다.

나라면 젊은 시절의 애환이 깃든 그곳에서 사회 초년병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부담된다고 아무도 일을 주지 않는데,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할 수 있을까? 여러 면에서 영화 인턴은 커리어맨이 은퇴 후에 어떻게 살아야 꼰대 소리를 듣지 않고 의미 있게 살 수 있는지 교과서 같은 삶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람들은 은퇴하면 여행도 하고 취미 생활이나 하면서 편하게 지내지, 왜 힘들게 또 일하려 하냐고 묻기 쉽다. 그러다가 막상 이런 일이 나에게 닥치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온전히 은퇴 후 삶으로 모드를 전환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사람이니까 그렇지 않나 생각한다. 사람은 인생의 의미를 잃는 순간 존재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은퇴하면 새로운 일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 새로운 일에 적응하기 쉽지 않으니 익숙한 것을 쉽게 떠나보내지 못하고 집착하다가 어느 한순간에 무너지기 쉽다. 나도 모르게 발휘되던 내가 속한 조직이나 기관의 힘과 보호막은 퇴직과 동시에 사라진다. 더 크고 힘센 기관에 속해 있었을수록 더 큰 상실감을 느끼고, 혼자 서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은퇴 후 펼쳐질 인생 2막은 이처럼 그동안 축적한 경력자산과 기관의 보살핌으로부터 홀로서기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2막에서는 1막에서 이룬 것이 사라져버려 힘들 수도 있으나, 어찌 보면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고 새로 시작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인생 2막에서는 1막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에 충분한 새 도화지가 각자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자그마한 설렘을 다시 느낄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낙담하지 말고 흥분도 하지 말자. 눈을 감고 긴 호흡을 느껴보자. 흐르는 시간과 변하는 환경에 과거의 나를 흘려보내자.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읊조려 본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굴러간다. 그것도 잘.

지금부터는 내가 굴릴 세상, 내가 필요한 작은 세상을 찾아 나서야 한다. 혹시 그런 세상이 없어도 낙담할 필요는 없다. 내가 꿈꾸는 작은 세상을 내가 만들면 되니까. 황량한 들판에 이제 갓 던져진 나는 막 허물을 벗은 곤충처럼 연약하지만, 힘차게 날갯짓할 준비가 되어있다. 자 떠나자 내 마음의 동해바다로.

/양성광 혁신과경제연구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순천향대, 구미전자정보기술원 등과 'AI의료융합 산업 생태계 조성 업무 협약
  2. 아산축협-아산먹거리재단, "우리 지역 제철 농산물 싸게 사세요"
  3. 음봉면-주민자치회, 위기가구 발굴 업무협약 체결
  4. 노인들의 위험한 무단횡단
  5. 북적이는 워터파크와 한산한 도심
  1. [부고]마정미 한남대 교수 시모상
  2. 파주시, 국공립어린이집 3개소 8월 1일 개원
  3. 재전부여군민회에서 부여군에 수해복구 기부금 1000만 원 전달
  4. 2025 세계모유수유주간 슬로건 '모유수유를 최우선으로!'
  5. 기후위기 전문가 최준규 박사, 찾아가는 화학콘서트 무료 특강으로 재능 기부

헤드라인 뉴스


한 발짝 남은 본지정… 대전지역 글로컬 소외 없어야

한 발짝 남은 본지정… 대전지역 글로컬 소외 없어야

'글로컬대학 30 프로젝트' 마지막 본지정 도전에 나선 대전지역 예비지정 대학들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8월 11일까지 교육부에 실행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 가운데, 각 대학은 사업계획을 정비하며 막바지 총력전에 돌입했다. 올해 대전권 예비지정 대학은 충남대(국립공주대와 통합형), 한남대, 한밭대 등 3곳이다. 학령인구 감소와 재정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들은 글로컬사업 진입이 생존을 위한 절박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동안 대전에서는 본지정에 성공한 4년제 대학이 한 곳도 없었고, 대전충남세종지역 거점국립대인 충남대마..

李정부 국정과제에 대전 현안 사업 담길까 촉각
李정부 국정과제에 대전 현안 사업 담길까 촉각

대전 현안 사업들이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로 선정되며 동력을 얻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행정당국은 추진에 난항을 겪는 사업들이 새 정부 국정과제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전력을 쏟고 있는 만큼 어떤 현안이 얼마나 채택될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3일 국정기획위원회에 따르면 이달 중순 전략과제와 국정과제, 세부 실천 과제를 정리해 발표할 예정이다. 현재 예상되는 건 이재명 정부의 5개년 국정과제를 우선순위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전략과제 20개와 국정과제 120여 개를 선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 후보 시절 210조 원의 재원..

대전 소상공인·전통시장 경기체감 `뚝`
대전 소상공인·전통시장 경기체감 '뚝'

대전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상인들의 7월 체감 경기가 바닥으로 고꾸라진 것으로 집계됐다. 7월 말부터 소비쿠폰이 지급되며 현장에서 느끼는 소비 촉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8월 전망치도 소폭 반등하는 데 그치면서 어려운 경기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는 이들이 많았다. 3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발표한 '소상공인시장 경기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대전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상인들이 느끼는 7월 경기 체감 지수는 모두 주저앉았다. 경기 동향 조사는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사업체 운영자의 체감 경기 파악을 통해 경기 변화에 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북적이는 워터파크와 한산한 도심 북적이는 워터파크와 한산한 도심

  • 노인들의 위험한 무단횡단 노인들의 위험한 무단횡단

  • 대전 0시 축제 준비 완료…패밀리테마파크 축제 분위기 조성 대전 0시 축제 준비 완료…패밀리테마파크 축제 분위기 조성

  • 교제 범죄 발생한 대전 찾은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 교제 범죄 발생한 대전 찾은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