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질문과 침묵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질문과 침묵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21-06-07 09:50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이승선 교수
이승선 교수
좋은 질문은 사람을 춤추게 한다. 질문하는 사람은 궁금증을 풀어서 좋다. 대답하는 사람도, 자신의 지식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어 좋다. 청중의 좋은 질문은, 강의자의 빛바랜 강연을 빛나게 할 수 있다. 질문하는 청중은 강의자의 지식이 정교해지도록 다듬어주는 길라잡이다. 질문이 곁들여진 강연은, 강의자와 청중이 합세해 만들어가는 한 편의 공연이다. 설령 청중이 침묵하더라도 강의자는 청중의 눈빛과 자세를 배운다. 청중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온라인 줌 강의에서는 더욱 그렇다. 며칠 전 영상기자들과 강의도 그랬다.

강의는 야밤에 있었다. 실시간 원격 강의였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눈이 감길 법한 시간대였다. 세 사람의 강사는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마흔 명의 영상기자 수강생들은 자신의 일터나 주거지에서 참여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이 있다. 그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해야 하는가. 정치인이 특혜분양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다. 그 정치인에게 분양권을 전매한 가난한 일반인을 방송에 노출할 수 있는가. 고위층이 누린 부당한 특혜를 조명하고자 궁색하게 살아가는 전매인의 집을 보여주어도 되는가. 학교 건설현장에서 노동자가 추락했다. 학교 담장을 넘어가 취재해도 되는가. 공인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아도 무방한가. 공인은 누구인가. 기자들은 묻고 또 물었다.



자유로운 취재가 보장되지 않으면, 보도의 자유는 제 기능을 다할 수 없다. 따라서 언론의 자유는 '취재보도의 자유'를 의미한다. 자유로운 취재와 자유로운 보도는 책임을 수반한다. 영상보도가 시민의 인격권을 침해할 때 지불해야 할 대가는 크다. 한국의 명예훼손법은 형사처벌의 강도에서 무섭기로 유명하다. 보도한 '내용'이 공적인 것이라서 면책되더라도 '취재'의 방법이 위법하여 책임을 지는 사례도 많다. 영상기자들은 법적인 책임 외에 윤리적 비난을 감당해야 할 때도 많다. 눈앞의 취재원 생명이 위태로운 듯하다. 계속 촬영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설령 별것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우선 취재원의 위험을 선행적으로 확인해야 하는가? 영상기자들은 자신에게도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학교는 그 기준과 사례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언론사도 기자의 교육이나 재교육에 인색하다. 반면 시민들의 권리의식은 크게 신장됐다. 언론의 취재가 위법하다면, 혹은 언론의 영상보도가 시민의 인격권을 침해할 경우 언론소송으로 응수하는 시민들이 크게 늘었다.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협회를 중심으로 지혜를 모아 나갔다. 현장의 영상기자들이 제기한 구체적인 질문들을 취합했다. 수백 개의 질문이 쏟아졌다. 여러 차례 시민단체와 검찰청, 경찰청, 언론 관련 기구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했다. 스스로 묻고 답하며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이었다. 취재보도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은 영상보도에 대해서는 이달의 기자상이나 올해의 영상기자상 수상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것도 유례없는 일이었다. 옷깃을 여미고 영상기자들에게 저널리즘의 원칙과 결기를 배웠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작년 가을부터 영상기자협회는 전국의 영상기자들을 대상으로 자체 교육을 시작했다. 하루 일과를 마친 야밤이나 주말 시간을 이용했다. 수백 명의 국내 언론사 영상기자들이 동참했다. 며칠 전 교육에는 외신기자들도 참여했다. 에이피, 로이터, ABC뉴스, NHK, 후지TV 등 유수한 글로벌 언론사 기자들이었다. 외신기자들 역시 매우 유익하고 좋은 질문을 공유해 주었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어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온라인 실시간 줌 교육화면에서, 그들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바른 자세로 카메라를, 교육에 참여한 동료 기자들의 얼굴을, 강사의 눈과 입을 초지일관 응시했다. 실시간으로 원격 영상강의가 가능한 시대에, 꼿꼿한 청중의 형형한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그들의 침묵에서도 배운다. 기자들은 영상을 통해 청중이 발현할 수 있는 힘의 크기를 스스로 구현했다. 깊은 경의를 표한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 쌍용동 아파트서 층간소음 문제로 살인사건 발생
  2. 교실 CCTV 설치 근거 생길까… 법사위 심의 앞두고 교원단체 반발
  3. [이차전지 선도도시 대전] ②민테크"배터리 건강검진은 우리가 최고"
  4. 어깨·허리 부상 잦은 소방공무원에게 물리치료사협회 '도움손'
  5. '대량 실직 위기'…KB국민카드 대전 신용상담센터 노동자 150여 명 불안 확산
  1. 대전교육청 공무직 4일 총파업… 94개 학교 급식 차질
  2. 동구 정다운어르신복지관, 2025년 '정담은 김장나눔'
  3. 대전시 2026년 정부예산 4조 8006억원 확보...전년대비 7.8% 증가
  4. 4일 밤사이 세종·충남 1~5㎝ 적설 예고
  5. 대덕구노인종합복지관, 김장김치 나눔 행사

헤드라인 뉴스


충남도, 당진에 2조원 규모 `AI데이터센터` 유치

충남도, 당진에 2조원 규모 'AI데이터센터' 유치

충남도가 2조 원 규모 AI데이터센터를 유치했다. 김태흠 지사는 4일 도청 대회의실에서 오성환 당진시장, 안병철 지엔씨에너지 대표이사, 정영훈 디씨코리아 대표이사와 당진 AI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르면, 지엔씨에너지는 당진 석문국가산업단지 내 3만 3673㎡(1만 평) 부지에 건축연면적 7만 2885㎡ 규모로 AI데이터센터를 건립한다. 이를 위해 지엔씨에너지는 디씨코리아 등과 특수목적법인(SPC)을 구성하고, 2031년까지 2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지엔씨에너지는 이와 함께 200여 명의 신규 고용..

꿈돌이 협업상품 6개월 만에 23억 매출 달성
꿈돌이 협업상품 6개월 만에 23억 매출 달성

대전시는 지역 대표 캐릭터 '꿈돌이'를 활용한 지역기업 협업 상품 7종이 출시 6개월 만에 2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4일 밝혔다. '꿈돌이 라면'과 '꿈돌이 컵라면'은 각각 6월과 9월 출시 이후 누적 110만 개가 판매되며 대표 인기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첫 협업 상품으로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11월 말 기준 '꿈돌이 막걸리'는 6만 병이 팔렸으며, '꿈돌이 호두과자'는 2억 11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며 청년일자리 창출과 사회적경제 조직 상생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이 밖에도 '꿈돌이 명품김', '꿈돌이 누룽지',..

2025년 세종시 `4기 성과` 토대, 행정수도 원년 간다
2025년 세종시 '4기 성과' 토대, 행정수도 원년 간다

2022년 7월 민선 4기 세종시 출범 이후 3년 5개월 간 어떤 성과가 수면 위에 올라왔을까. 최민호 세종시장이 4일 오전 10시 보람동 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수도를 넘어 미래수도로 나아가는 '시정 4기 성과'를 설명했다. 여기에 2026년 1조 7000억 원 규모로 확정된 정부 예산안 항목들도 함께 담았다. ▲2026년 행정수도 원년, 지난 4년간 어떤 흐름이 이어지고 있나=시정 4기 들어 행정수도는 2022년 국회 세종의사당 기본계획 확정 및 대통령 제2집무실 법안, 2023년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을 위한 국..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 ‘추울 땐 족욕이 딱’ ‘추울 땐 족욕이 딱’

  •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 급식 차질로 도시락 먹는 학생들 급식 차질로 도시락 먹는 학생들